[초점]박병선, 행동하는 학자의 삶 1923~2011

기사등록 2011/11/23 15:38:36

최종수정 2016/12/27 23:05:14

【서울=뉴시스】유상우 기자 = 22일 밤 10시40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잔 가르니에 병원에서 타계한 박병선(88) 박사는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를 최초로 발견, 세상에 알리는 데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다.

 국내 여성유학비자 1호로 프랑스로 유학한 고인은 역사학 박사(프랑스 파리 제7대)가 됐고, 1967~198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발견했다.

 당시 직지심체요절이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직접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세계 최고본으로 인정받던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이라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이를 위해 중국과 일본의 인쇄술관련서를 섭렵하고 프랑스 내 대장간을 돌며 금속활자 인쇄술을 연구를 했다. 감자와 지우개 등 각종 재료를 사용해 금속활자와 목판 인쇄술의 차이점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세 번의 화재까지 겪었다. 연구비용 조달을 위해 자신의 골동품까지 팔았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유네스코가 정한 1972년 '세계도서의 해'에 프랑스국립도서관 주최 '북스(BOOKS)' 전시회와 유럽 내 '동양학 학자대회'에서 발표돼 인정받았다.

 유네스코는 직지가 해당 국가에 있지 않은데도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책이라는 이유로 소재에 대해서는 문제시하지 않고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했다. 금속활자의 발명은 1999년 미국의 유력 시사지 '라이프'가 조사한 인류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준 100대 사건 중 1위를 기록할 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고인은 결혼도 포기하고 30여년의 세월 동안 홀로 외규장각 의궤목록과 요약본을 불어로 정리하고 '병인년, 조선을 침노하다'라는 한국어·프랑스어 서적을 발간해 세계에 배포하며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렸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냉대도 견뎠다. 도서관은 비밀을 외부에 누설시켰다는 이유로 박 박사를 반역자 취급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도 했다. 결국, 한국에 외규장각을 알렸다는 이유로 질책을 받아 사실상 해고 당했다.

 도서관 측의 강제적인 의궤도서 대출금지 조치에도 매일 출근투쟁으로 하루 한 권씩 과장 허가를 받아 대출했다. 대신, 무슨 내용을 본 것인지를 보고해야 했다. 국립도서관은 평소 우애가 두터웠던 고인의 도서관 동료에게도 도움을 주지 말라고 조치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반환문제가 대두하면서 처음에는 도서카드도 없던 파지 상태에서 중요도서로 격상되는 등 프랑스 정부차원의 강력한 대응조치를 가져오기도 했다.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은 단순한 문화재 반환이 아니다. 조선이라는 국가 공식문서의 반환이라는 역사적 명분을 지녔다. 앞으로 우리나라와 프랑스 등 선진국간의 미래를 위한 신국제 관계 형성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고인은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당시 독립을 호소한 김규식 박사 일행이 파리 9구 샤토덩 거리 38번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차리고 조국의 독립 승인을 위한 외교활동에 심혈을 기울인 장소를 발견하기도 했다. 집주인의 반대에도 대사관과 협력해 한불수교 120주년인 2006년에 현판을 걸었다.

 2008년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Ⅰ'을 출간한 고인은 김규식 박사 일행의 파리 독립운동 활동상을 기념하는 파리독립기념관 건립을 소원하며 연구하던 중 별세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인이 국가 사회에 현저한 공헌을 한 업적을 기리고자 유족의 뜻을 들어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키로 하고 국가보훈처 국립묘지안장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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