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도종환 지음·한겨레출판 펴냄)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꽃들이 그러하듯 흔들리면서 꽃을 피우는 겁니다. 흔들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꽃 한 송이를 피우듯 그렇게 살았습니다.” (7쪽)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시인 도종환(57)씨가 자전 에세이집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를 펴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선생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날들, 교육운동을 하다 감옥에 간 이야기, 아파서 숲에 들어가 혼자 보내야 했던 시간 등이 절절하게 담겼다.
화가를 꿈꾸던 도씨는 대학 갈 형편이 되지 못해 국가에서 등록금 전액을 대주는 국립사범대를 선택했다. 학과도 돈이 적게 들어 보이는 과를 골랐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는 충북 옥천군 청산면 청산고등학교로 발령 받았다. 그러나 당시 시국 문제에 앞장서던 천주교 신부와 친하게 지내다 시골 학교로 좌천당한다.
군 전역 후인 1980년대 초반, 정기간행물이 모두 폐간돼 글을 발표할 매체가 없던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분단 시대’라는 모임을 만들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교사와 시인으로서 삶을 병행하던 도씨에게 어느날 날벼락이 떨어진다. 아내가 암으로 태어난 지 넉 달 된 딸아이와 세 살 된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접시꽃 당신’이 탄생한 일화도 소개한다.
도씨는 다시 발령받아 올라온 청주에서 충북교사협의회를 만들고 형사들에게 잡혀 가는 시련도 겪는다. 학교에서 쫓겨난 뒤에는 해직된 교사들끼리 함께 모여 지낸다.
그러다 아내와 사별 6년 만에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신문과 잡지를 통해 소식이 퍼지면서 순정을 대변하던 ‘접시꽃 당신’이 이 헌책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온갖 실망의 말과 비난, 욕을 들어야만 했다.
해직 10년 만에 학교로 돌아갔지만 자신의 수업이 먹혀들지 않았고 아이들과 만나는 방식도 겉돌고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에는 이상까지 와서 휴직을 거듭하다 결국 퇴직하게 된다.
도씨는 “살면서 수많은 벽을 만났다. 어떤 벽도 나보다 강하지 않은 벽은 없었다”며 “그러나 벽에서 살게 됐다는 걸 받아들였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잎을 찾아가 손을 잡고 연대하고 협력하여 마침내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는 담쟁이처럼 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염무웅(70)씨는 “도종환의 인생 역정은 시련과 상처의 연속”이라며 “놀라운 것은 도종환이 이 모든 곤경을 딛고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시를 쓰는 일과 깨달음을 구하는 일이 근본에 있어서 하나라는 것을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 증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종환의 이 자전적 에세이는 문학과 종교를 넘나드는 드문 감동의 기록”이라고 읽었다.
[email protected]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꽃들이 그러하듯 흔들리면서 꽃을 피우는 겁니다. 흔들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꽃 한 송이를 피우듯 그렇게 살았습니다.” (7쪽)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시인 도종환(57)씨가 자전 에세이집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를 펴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선생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날들, 교육운동을 하다 감옥에 간 이야기, 아파서 숲에 들어가 혼자 보내야 했던 시간 등이 절절하게 담겼다.
화가를 꿈꾸던 도씨는 대학 갈 형편이 되지 못해 국가에서 등록금 전액을 대주는 국립사범대를 선택했다. 학과도 돈이 적게 들어 보이는 과를 골랐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는 충북 옥천군 청산면 청산고등학교로 발령 받았다. 그러나 당시 시국 문제에 앞장서던 천주교 신부와 친하게 지내다 시골 학교로 좌천당한다.
군 전역 후인 1980년대 초반, 정기간행물이 모두 폐간돼 글을 발표할 매체가 없던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분단 시대’라는 모임을 만들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교사와 시인으로서 삶을 병행하던 도씨에게 어느날 날벼락이 떨어진다. 아내가 암으로 태어난 지 넉 달 된 딸아이와 세 살 된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접시꽃 당신’이 탄생한 일화도 소개한다.
도씨는 다시 발령받아 올라온 청주에서 충북교사협의회를 만들고 형사들에게 잡혀 가는 시련도 겪는다. 학교에서 쫓겨난 뒤에는 해직된 교사들끼리 함께 모여 지낸다.
그러다 아내와 사별 6년 만에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신문과 잡지를 통해 소식이 퍼지면서 순정을 대변하던 ‘접시꽃 당신’이 이 헌책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온갖 실망의 말과 비난, 욕을 들어야만 했다.
해직 10년 만에 학교로 돌아갔지만 자신의 수업이 먹혀들지 않았고 아이들과 만나는 방식도 겉돌고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에는 이상까지 와서 휴직을 거듭하다 결국 퇴직하게 된다.
도씨는 “살면서 수많은 벽을 만났다. 어떤 벽도 나보다 강하지 않은 벽은 없었다”며 “그러나 벽에서 살게 됐다는 걸 받아들였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잎을 찾아가 손을 잡고 연대하고 협력하여 마침내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는 담쟁이처럼 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염무웅(70)씨는 “도종환의 인생 역정은 시련과 상처의 연속”이라며 “놀라운 것은 도종환이 이 모든 곤경을 딛고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시를 쓰는 일과 깨달음을 구하는 일이 근본에 있어서 하나라는 것을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 증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종환의 이 자전적 에세이는 문학과 종교를 넘나드는 드문 감동의 기록”이라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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