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안세영 교수(경희대 한의대 신계내과학) '성학'<10>
재미도 없고 지독하고 매정한 사람들을 빗대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라든지 ‘무미건조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별다른 고민 없이 내뱉는 이런 말도 한 번만 더 생각하면 무척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피가 됐든, 물이 됐든, 좀 더 유식한 말로 체액이 됐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액체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비유할 때 쓰기 때문이다. 가뭄에 대지가 목이 타는 것도 비라는 액체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계가 삐걱거리며 잘 돌아가지 않는 것도 대부분 윤활유라는 액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아서 몰인정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는 것도 눈물이라는 액체를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액체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 또한 체적(體績)은 있으나 일정한 형상은 없어 유동성을 갖춘 액체의 성질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된다. 느낌은 대개 액체의 점도(粘度)에 따라 다르니, 가령 점도가 낮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의 투명성을 갖추면 맑고 깨끗한 느낌이 들고, 점도가 높고 혼탁하면 왠지 지저분한 느낌이 든다.
성과 관련된 표현도 액체에 근거한 것들이 많다. 가령 야한 농담을 빗대어 ‘질펀하다’고 표현하고, 추잡한 성욕을 ‘끈끈한 음욕’이라 말하며 ‘음탕(淫蕩)’이라는 한자(漢字)도 물 수(水) 변을 지니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이 액체의 활동이 무척 활발하다. 그 증거로 한 달에 한 번씩 이뤄지는 월경도 성분이 피라는 액체이고, 아기도시락에 비유되는 유방에서도 젖이라는 액체가 분비되며, 액성(液性)의 화장품 또한 여기저기 몇 겹으로 찍어 바르지 않는가? 간혹 남성에게는 여성에게서 관찰할 수 없는 사정(射精)이라는 액체반응이 있지 않느냐며 이런 주장을 반박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반론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주장이 무식(?)의 소치임을 깨닫고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왜 이렇게 단언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40∼50년 전만 해도 여자에게는 성적 욕구도, 또 쾌감도 없어서 성행위는 오직 남자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킨제이(Kinsey) 등 선구적인 성의학자들이 수백, 수천의 남녀를 대상으로 한 면담과 생체실험(?)을 통해 성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긴 후, 그때까지의 믿음은 산산조각 깨져 버렸다. 특히 이전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여자의 성반응은 매스터즈(Masters) 등의 연구로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다. 도대체 어떤 것들이 밝혀졌을까?
우선 남자도 여자도 동등한 인격체라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하자. 이렇게 동일한 출발점에 서면 성행위에 의해 남자 홀로 기분이 ‘나이스(nice)’해지지는 않을 것이란 가정도 가능하다. 또 여자에게 성행위가 정말로 하기 싫은 짓이고 고통만 수반되는 행위라면, 결혼이라는 합법적 성관계 계약을 친척이나 친지들이 축복하는 관행은 아예 없었을 것이다. 발정기가 따로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분야의 고수(高手)임을 암시하는 여자의 성에 관한 문제들이, 20세기 초까지 암흑 속에 감춰졌던 이유는 순전히 성을 드러내놓고 말하기 꺼렸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자세한 연구 결과 여자도 남자처럼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물론, 요철(凹凸)에 비유되는 성기를 제외하면 성반응에 따른 전신적 변화 역시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는 게 밝혀졌다. 즉 신체의 표층부와 심층부에서 나타나는 광범위한 혈관충혈과 근육 긴장은 큰 차이가 없다. 또 발한반응이나 심계항진, 혈압상승과 심박수 증가도 역시 비슷하다. 그러나 성적 홍조는 남자보다 현저해 약 75%에서 나타나며, 때론 홍역상(紅疫狀)의 구진이 돋기도 한다.
한편 겉으로 드러나는 대음순·소음순·음핵·유방 등의 외성기는 ‘대동소이’라는 한자성어의 ‘소이(小異)’ 부분을 차지한다. ‘나바론 절벽의 건포도’라 불리는 빈약한 가슴의 여자들이라도 성적 흥분이 진행돼 기분이 고조되면 유방은 팽륭(膨隆)되고, 언저리의 피부도 홍조를 띤다. 또한 젖꽃판도 약간 커지고, 유두 역시 발기한다.
성적 흥분이 진행된 대음순의 경우, 미산부(未産婦)는 그저 평탄한 모습을 취할 뿐이지만 경산부(經産婦)는 급격히 충혈되는 탓에 평상시의 2∼3배로 커져 마치 두꺼운 자줏빛 커튼을 매달아 놓은 듯한 형태를 띤다. 소음순은, 미산부에서는 핑크빛을, 경산부에서는 붉은빛을 띠는데 극치감을 느낄 때는 아랫부분의 1/3이 오히려 축소된다. 음핵은 너무나도 작고 짧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흥분 시 ‘콜포스코프(colposcope: 질 확대경)’로 자세히 관찰하면 한때는 진짜 물건이 될 수 있었다는 듯 음핵 귀두부분의 종장(腫張)이 확인된다. 한동안은 음핵이 성적 흥분 시 음핵포피로부터 노출된다고 생각했으나 ‘매스터즈’ 등의 실로 섬세한(?) 연구 결과 도리어 후퇴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또 모든 남자들이 동경하는 동굴 앞부분의 ‘바르톨린 선’은 성적 흥분이 지속되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끈적끈적한 분비물을 한 두 방울 적선할 뿐이라는 사실도 이들 선구적인 성의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밝혀졌다. 따라서 한 때 음경의 질 내 삽입을 원활하게 만드는 분비물을 내뿜는다는 명성이 자자했던 ‘바르톨린 선’도 그 바통을 어두컴컴한 동굴 질에게 넘겨줘야 했다.
어린 시절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서 큰 감명을 받았었다. 살아 움직이는 온갖 곤충들의 생태를 관찰·기록한 이 책에서 특히 쇠똥구리인가 말똥구리인가가 자기 체구보다도 큰 동물의 배설물을 굴려대는 대목은 여태껏 기억이 생생하다. 뛰어노는 것도 재미있고, 만화나 TV 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지적(知的)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책을 읽는 것도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성에 눈뜨는 사춘기가 지나고부터는 또 다른 호기심이 발동한다. 바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다.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분화구 투성이 때의 머스마들은 관심이 온통 유방을 포함한 여성의 성기에 쏠려 있다. 그 중에서도 엄청난 신축성을 자랑하는 질(膣)은 상상을 불허하는 ‘미스터리(mystery)’ 그 자체였다. 20세기 성과학상 최대의 성과를 올린 사람들로 평가받는 매스터즈와 존슨도 사실은 성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누구나 가졌을 성에 대한 지적 호기심에서…. 물론 매스터즈 등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많은 성과학자들의 연구가 있었다. 그들은 꽤 짓궂은 여러 가지 것들을 실험이란 미명하에 스스럼없이 실시했으니, 어떤 이는 질액(膣液)의 산도(酸度: pH)를 월경 전후에 측정했고, 어떤 이는 콘돔을 착용한 성교가 질액의 pH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봤다. 또 어떤 사람들은 평상시와 성적 흥분 시에 달라지는 질의 전위차(電位差)를 기록했고, 한편으로 여성의 극치감 때 질액 속에서 나트륨·칼륨·염소 등 소위 전해질(電解質)의 변화는 어떠한지 알아봤다. 문명의 이기(利器)를 활용해서 질벽(膣壁)의 혈류량(血流量)과 질벽맥관혈압(膣壁脈管血壓)을 측정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성적 흥분 시 혈류량 증가와 혈압의 주기적 변화를 자랑스레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질에 관한 연구의 으뜸은 매스터즈와 존슨에 의한 것이다. 그들의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질강(膣腔) 전체의 확대와 신전(伸展)이다. 이는 그때까지의 믿음을 한꺼번에 뒤엎는 내용이었다. 미산부와 경산부 사이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성교 시 여성의 질은 확대(擴大)되고 신장(伸張)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특히 질의 윗부분 2/3는 확대와 신장이 일어나고 아랫부분의 1/3은 부풀어 올라 이른바 ‘오르가즘 융기(orgasmic platform)’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전까지만 해도 성교 시 질의 수축은 질벽 전체에 걸쳐 고리모양으로 수축해서 속칭 ‘긴자꾸’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로 질이 수축하기는커녕 도리어 확대되고, 조여지는 느낌이 드는 까닭은 질 입구 부분이 부풀어 올라 융기를 형성하기 때문이라는 게 밝혀졌다. 질이 이렇게 입구 부분은 좁아지고 안쪽 부분은 넓어지는 현상을 ‘정액 풀(pool)’, 혹은 ‘텐트(tent) 형성’이라 하는데, 이런 변화는 모두 정액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여겨진다.
한편 촉촉한 여자로 만드는 질의 윤활화(潤滑化: lubrication) 현상도 발견했다. 이는 성적 흥분 시 질벽 전체를 통해 혈관으로부터 걸러져 나온 여출액(濾出液)이 마치 땀방울이 뚝뚝 흐르듯 분비되는 현상으로, 질을 매끄럽게 해서 남성의 성기를 받아들이기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이전까지 질의 윤활화는 바르톨린 선이 연출한다고 잘못 알았으니 이 또한 큰 발견이었다. 아울러 자궁의 변화까지 설명했다. 흥분 시 자궁이 하강하리란 생각을 180도 뒤집어 성적 흥분 시에는 자궁이 상승한다는 사실이다. ‘뉴튼(Newton)’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사과가 나무에서 왜 떨어지는 걸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됐고, 성과학상 한 획을 그은 매스터즈와 존슨의 업적도 성반응에 대한 호기심의 산물이다. 따라서 인간사 제 분야 발전의 중대한 밑거름은 다름 아닌 호기심이다. 본능적일 만큼 모든 사람들이 지닌 이 호기심을, 이왕이면 좋은 방향으로 발휘하도록 노력할지어다.
지상사 02-3453-6111 www.jisangsa.kr
재미도 없고 지독하고 매정한 사람들을 빗대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라든지 ‘무미건조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별다른 고민 없이 내뱉는 이런 말도 한 번만 더 생각하면 무척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피가 됐든, 물이 됐든, 좀 더 유식한 말로 체액이 됐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액체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비유할 때 쓰기 때문이다. 가뭄에 대지가 목이 타는 것도 비라는 액체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계가 삐걱거리며 잘 돌아가지 않는 것도 대부분 윤활유라는 액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아서 몰인정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는 것도 눈물이라는 액체를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액체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 또한 체적(體績)은 있으나 일정한 형상은 없어 유동성을 갖춘 액체의 성질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된다. 느낌은 대개 액체의 점도(粘度)에 따라 다르니, 가령 점도가 낮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의 투명성을 갖추면 맑고 깨끗한 느낌이 들고, 점도가 높고 혼탁하면 왠지 지저분한 느낌이 든다.
성과 관련된 표현도 액체에 근거한 것들이 많다. 가령 야한 농담을 빗대어 ‘질펀하다’고 표현하고, 추잡한 성욕을 ‘끈끈한 음욕’이라 말하며 ‘음탕(淫蕩)’이라는 한자(漢字)도 물 수(水) 변을 지니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이 액체의 활동이 무척 활발하다. 그 증거로 한 달에 한 번씩 이뤄지는 월경도 성분이 피라는 액체이고, 아기도시락에 비유되는 유방에서도 젖이라는 액체가 분비되며, 액성(液性)의 화장품 또한 여기저기 몇 겹으로 찍어 바르지 않는가? 간혹 남성에게는 여성에게서 관찰할 수 없는 사정(射精)이라는 액체반응이 있지 않느냐며 이런 주장을 반박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반론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주장이 무식(?)의 소치임을 깨닫고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왜 이렇게 단언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40∼50년 전만 해도 여자에게는 성적 욕구도, 또 쾌감도 없어서 성행위는 오직 남자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킨제이(Kinsey) 등 선구적인 성의학자들이 수백, 수천의 남녀를 대상으로 한 면담과 생체실험(?)을 통해 성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긴 후, 그때까지의 믿음은 산산조각 깨져 버렸다. 특히 이전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여자의 성반응은 매스터즈(Masters) 등의 연구로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다. 도대체 어떤 것들이 밝혀졌을까?
우선 남자도 여자도 동등한 인격체라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하자. 이렇게 동일한 출발점에 서면 성행위에 의해 남자 홀로 기분이 ‘나이스(nice)’해지지는 않을 것이란 가정도 가능하다. 또 여자에게 성행위가 정말로 하기 싫은 짓이고 고통만 수반되는 행위라면, 결혼이라는 합법적 성관계 계약을 친척이나 친지들이 축복하는 관행은 아예 없었을 것이다. 발정기가 따로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분야의 고수(高手)임을 암시하는 여자의 성에 관한 문제들이, 20세기 초까지 암흑 속에 감춰졌던 이유는 순전히 성을 드러내놓고 말하기 꺼렸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자세한 연구 결과 여자도 남자처럼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물론, 요철(凹凸)에 비유되는 성기를 제외하면 성반응에 따른 전신적 변화 역시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는 게 밝혀졌다. 즉 신체의 표층부와 심층부에서 나타나는 광범위한 혈관충혈과 근육 긴장은 큰 차이가 없다. 또 발한반응이나 심계항진, 혈압상승과 심박수 증가도 역시 비슷하다. 그러나 성적 홍조는 남자보다 현저해 약 75%에서 나타나며, 때론 홍역상(紅疫狀)의 구진이 돋기도 한다.
한편 겉으로 드러나는 대음순·소음순·음핵·유방 등의 외성기는 ‘대동소이’라는 한자성어의 ‘소이(小異)’ 부분을 차지한다. ‘나바론 절벽의 건포도’라 불리는 빈약한 가슴의 여자들이라도 성적 흥분이 진행돼 기분이 고조되면 유방은 팽륭(膨隆)되고, 언저리의 피부도 홍조를 띤다. 또한 젖꽃판도 약간 커지고, 유두 역시 발기한다.
성적 흥분이 진행된 대음순의 경우, 미산부(未産婦)는 그저 평탄한 모습을 취할 뿐이지만 경산부(經産婦)는 급격히 충혈되는 탓에 평상시의 2∼3배로 커져 마치 두꺼운 자줏빛 커튼을 매달아 놓은 듯한 형태를 띤다. 소음순은, 미산부에서는 핑크빛을, 경산부에서는 붉은빛을 띠는데 극치감을 느낄 때는 아랫부분의 1/3이 오히려 축소된다. 음핵은 너무나도 작고 짧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흥분 시 ‘콜포스코프(colposcope: 질 확대경)’로 자세히 관찰하면 한때는 진짜 물건이 될 수 있었다는 듯 음핵 귀두부분의 종장(腫張)이 확인된다. 한동안은 음핵이 성적 흥분 시 음핵포피로부터 노출된다고 생각했으나 ‘매스터즈’ 등의 실로 섬세한(?) 연구 결과 도리어 후퇴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또 모든 남자들이 동경하는 동굴 앞부분의 ‘바르톨린 선’은 성적 흥분이 지속되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끈적끈적한 분비물을 한 두 방울 적선할 뿐이라는 사실도 이들 선구적인 성의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밝혀졌다. 따라서 한 때 음경의 질 내 삽입을 원활하게 만드는 분비물을 내뿜는다는 명성이 자자했던 ‘바르톨린 선’도 그 바통을 어두컴컴한 동굴 질에게 넘겨줘야 했다.
어린 시절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서 큰 감명을 받았었다. 살아 움직이는 온갖 곤충들의 생태를 관찰·기록한 이 책에서 특히 쇠똥구리인가 말똥구리인가가 자기 체구보다도 큰 동물의 배설물을 굴려대는 대목은 여태껏 기억이 생생하다. 뛰어노는 것도 재미있고, 만화나 TV 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지적(知的)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책을 읽는 것도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성에 눈뜨는 사춘기가 지나고부터는 또 다른 호기심이 발동한다. 바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다.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분화구 투성이 때의 머스마들은 관심이 온통 유방을 포함한 여성의 성기에 쏠려 있다. 그 중에서도 엄청난 신축성을 자랑하는 질(膣)은 상상을 불허하는 ‘미스터리(mystery)’ 그 자체였다. 20세기 성과학상 최대의 성과를 올린 사람들로 평가받는 매스터즈와 존슨도 사실은 성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누구나 가졌을 성에 대한 지적 호기심에서…. 물론 매스터즈 등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많은 성과학자들의 연구가 있었다. 그들은 꽤 짓궂은 여러 가지 것들을 실험이란 미명하에 스스럼없이 실시했으니, 어떤 이는 질액(膣液)의 산도(酸度: pH)를 월경 전후에 측정했고, 어떤 이는 콘돔을 착용한 성교가 질액의 pH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봤다. 또 어떤 사람들은 평상시와 성적 흥분 시에 달라지는 질의 전위차(電位差)를 기록했고, 한편으로 여성의 극치감 때 질액 속에서 나트륨·칼륨·염소 등 소위 전해질(電解質)의 변화는 어떠한지 알아봤다. 문명의 이기(利器)를 활용해서 질벽(膣壁)의 혈류량(血流量)과 질벽맥관혈압(膣壁脈管血壓)을 측정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성적 흥분 시 혈류량 증가와 혈압의 주기적 변화를 자랑스레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질에 관한 연구의 으뜸은 매스터즈와 존슨에 의한 것이다. 그들의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질강(膣腔) 전체의 확대와 신전(伸展)이다. 이는 그때까지의 믿음을 한꺼번에 뒤엎는 내용이었다. 미산부와 경산부 사이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성교 시 여성의 질은 확대(擴大)되고 신장(伸張)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특히 질의 윗부분 2/3는 확대와 신장이 일어나고 아랫부분의 1/3은 부풀어 올라 이른바 ‘오르가즘 융기(orgasmic platform)’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전까지만 해도 성교 시 질의 수축은 질벽 전체에 걸쳐 고리모양으로 수축해서 속칭 ‘긴자꾸’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로 질이 수축하기는커녕 도리어 확대되고, 조여지는 느낌이 드는 까닭은 질 입구 부분이 부풀어 올라 융기를 형성하기 때문이라는 게 밝혀졌다. 질이 이렇게 입구 부분은 좁아지고 안쪽 부분은 넓어지는 현상을 ‘정액 풀(pool)’, 혹은 ‘텐트(tent) 형성’이라 하는데, 이런 변화는 모두 정액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여겨진다.
한편 촉촉한 여자로 만드는 질의 윤활화(潤滑化: lubrication) 현상도 발견했다. 이는 성적 흥분 시 질벽 전체를 통해 혈관으로부터 걸러져 나온 여출액(濾出液)이 마치 땀방울이 뚝뚝 흐르듯 분비되는 현상으로, 질을 매끄럽게 해서 남성의 성기를 받아들이기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이전까지 질의 윤활화는 바르톨린 선이 연출한다고 잘못 알았으니 이 또한 큰 발견이었다. 아울러 자궁의 변화까지 설명했다. 흥분 시 자궁이 하강하리란 생각을 180도 뒤집어 성적 흥분 시에는 자궁이 상승한다는 사실이다. ‘뉴튼(Newton)’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사과가 나무에서 왜 떨어지는 걸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됐고, 성과학상 한 획을 그은 매스터즈와 존슨의 업적도 성반응에 대한 호기심의 산물이다. 따라서 인간사 제 분야 발전의 중대한 밑거름은 다름 아닌 호기심이다. 본능적일 만큼 모든 사람들이 지닌 이 호기심을, 이왕이면 좋은 방향으로 발휘하도록 노력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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