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출귀몰 탈옥수' 신창원, 그간 행적은?

기사등록 2011/08/18 14:13:31

최종수정 2016/12/27 22:36:58

2년6개월간 탈옥·도피…140건 범죄행각 10대들 우상화에 "난 죽어마땅한 죄인일 뿐" 심경 밝히기도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18일 교도소 내에서 자살을 기도한 신창원(44)은 1990년대 신출귀몰한 도피 행각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탈옥수'다. 1997년 탈옥 후 2년6개월만에 검거됐을 당시 입었던 화려한 쫄티가 항간의 화제가 되는 등 국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신은 1989년 9월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97년 1월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 쇠창살을 자르고 탈옥했다가 1999년 7월 다시 검거됐다.  신은 이 과정에서 모두 8차례에 걸쳐 경찰과 맞닥뜨리고도 이들을 농락하듯 유유히 포위망을 벗어났다. 도피 생활 중 전국에서 강도강간·강도·절도 등 140건이 넘는 범죄를 저질러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신은 1967년 5월 전북 김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때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다. 중학교 2학년을 중퇴했고 1982년 절도죄로 소년원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범죄를 일삼았다.  이듬해 서울에 올라온 뒤 음식점 배달업무를 하다 1983년 또 다시 절도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이어 1980년 서울 돈암동에서 강도짓을 하다 공범이 피해자를 살인해 강도치사죄로 검거,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신은 청송교도소(현 경북북부 제1교도소)에 수감된 뒤 1994년 부산교도소로 이감됐다. 1997년 1월20일 이 곳에서 쇠창살 2개를 쇠톱날로 자르고 탈옥했다.  이 때부터 신은 2년6개월간 전국을 오가며 10억여원에 달하는 돈을 훔치고 이 돈으로 유흥주점 여종업원을 유혹해 동거생활을 하는 등 도피생활을 했다. 절도 등 범죄도 140건이 넘는다.  신은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으로 '유명세'를 탔다. 1997년 4월 김제에서 택시와 교통사고가 났을 때에는 훔친 운전면허증으로 체포위기를 모면했다.  같은해 10월18일 충남 천안의 한 빌라에서 경찰과 격투를 벌이다 가스총 2발을 맞고 도주했고 그 해 12월30일 또 다시 마주한 경찰에게 가스총을 맞아 왼쪽 발목이 부러진 채 도망갔다. 도주 당시 현상금 500만원은 이 때 1000만원으로 올라갔다.  다음해에도 신의 놀라운 도주 행각은 계속됐다. 1998년 1월 충남 천안 태화산 기슭, 3월 전북 김제 금천저수지, 5월 경북 성주, 7월 서울 강남구 포이동 주택가 등에서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7월 현상금은 5000원으로 인상됐다.  그러다 1999년 6월 충남 천안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쫓기다 그 해 7월16일 전남 순천에서 검거됐다. 당시 신은 명품 '미소니'(Missoni) 제품인 현란한 꽃무늬 쫄티를 입고 있었다.  한 때 일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신을 우상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신은 2000년 옥중편지를 통해 "난 의적이 아니다. 그저 죽어 마땅한 죄인일 뿐"이라며 "10대들이 나를 우상처럼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나처럼 후회스러운 삶을 살지 않게 해야 한다"고 심경을 밝힌 바 있다.  신은 다시 수감된 뒤 2004년 우수한 성적으로 고입 및 고졸 검정고시에 잇달아 합격했다. 또 교도소장과 국가를 상대로 수 건의 소송을 내 일부 승소하기도 했다. 당시 소장은 모두 신이 매뉴얼에 맞게 직접 만들어 화제가 된 바 있다.  한편 신은 18일 오전 4시10분께 경북북부 제1교도소 독방 내에서 고무장갑을 이용 스스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했다. 별도의 유서 없이 "죄송합니다"라는 자필 메모를 남겼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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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출귀몰 탈옥수' 신창원, 그간 행적은?

기사등록 2011/08/18 14:13:31 최초수정 2016/12/27 22: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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