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 사마르칸트에 울려퍼지는 신라음악

기사등록 2011/08/06 09:15:00

최종수정 2016/12/27 22:33:55

【서울=뉴시스】윤소희의 음악과 여행<60>

 타슈켄트에서 보이슨으로 오는 여정에는 들과 꽃, 말 달리는 사나이며 들꽃 소녀 못지않게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우즈베키스탄의 옛 수도 사마르칸트였다. 화려한 모자이크 문양으로 지어진 사마르칸트 모스크가 보이는 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 지역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와 같은 곳은 이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古都)들이다.

 타슈켄트와 보이순의 딱 중간쯤이 되는 사마르칸트는 황야와 사막의 중앙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로써 동서남북으로 교차하는 문화유통의 십자로였다. 이곳 아프라지압 벽화에는 우리나라 삼국시대 신사의 사신 모습이 그려져 있어 한국학자들이 더욱이나 좋아한다.   

 그때 생전 처음 본 소그드인의 고깔 쓴 모습이며 한복의 동전과 비슷한 복색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소그디아 예술이 신라로 전래된 흔적으로 최치원(崔致遠)의 향악잡영(鄕樂雜詠) 5수를 들 수 있다. 그 중에 ‘속독(束毒)’의 내용을 보면, "쑥대머리 파란 얼굴 저것 좀 보소/짝 더불고 뜰에 와서 원앙춤 추네/장구소리 두둥둥둥 바람 살랑랑/사븐사븐 요리 뛰고 저리 뛰노나"라고 적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일대의 소그드(Soghd:粟特) 여러 나라에서 전래한 속독은 오늘날 여러 가면극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보이슨으로 가는 여정 중에 버스에서 들은 우즈베키스탄 음악은 대부분 3소박 리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곳에서 3소박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동안 우리의 3소박 패턴을 중국 ․ 일본에만 빗대어 얘기했던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함이라고 했던 것은 얼마나 편협했던 시각이었던가. 지난 반세기 동안 동서의 이념 대립으로 수교가 단절됐던 후유증이 학문과 문화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면이었다.  

 이제 이곳을 자유로이 오갈 수는 있게 됐지만 학자들에겐 그 보다 더한 장벽이 생겼으니 바로 이 지역 언어. 예전에는 러시아어 하나만 해도 웬만한 문헌은 다 읽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나라들이 제각각 자신들의 고유 언어를 사용하니 각 나라의 언어를 다 구사해야만 이 지역 문화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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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술 더 떠서, 교민들은 바뀐 이 지역 언어로 새로이 주민등록도 해야 하고, 생업에 관련된 일들에서 언어의 장벽을 넘을 수 없으니 러시아어로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주를 한단다. 역사의 바퀴를 되돌려 생각해 보면, 일본 놈 미워서 이곳으로 와 겨우 러시아 말을 익혔는데, 이제는 우즈베크어로 시장도 보고, 동사무소 일도 봐야 한다니 역사의 장난이 참으로 얄궂기만 하다.   

 소련연방국이었을 때가 더 좋았다는 원망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교민만이 아니다. 우즈베크사람들도 불만을 늘어놓으니 말하자면 “가난한 이상 국가 보다 부잣집 그늘이 좋다”는 이야기인 셈. 타슈켄트의 지하철에 장식된 화려한 상들리에며 대리석 장식을 보면 넉넉하게 살던 시절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는지라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과도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의 심정이 와 닿았다.   

 저만치 사마르칸트 모스크를 바라보며 점심을 기다리니 양고기 굽는 냄새가 배고픈 나그네를 골린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종업원이 들고 온 것은 바짝 마른 콩 뿐이니 “에게, 이게 뭐야?”라고 했더니 “이 곳의 식사 프로그램은 본래 딱딱한 견과류나 콩부터 시작하는 것”이란다. 그 말을 듣고 앞에 놓인 콩 껍질을 와작 깨 물으니 노교수님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신다. 입 속으로 들어가려던 콩 알맹이를 도로 드리니 빙긋이 웃으시며 좋아하신다.  

 호두와 콩을 씹으며 양고기가 익는 바비큐 통만 바라보는데, 하얀 모자를 쓴 종업원이 화로에 구운 빵을 들고 온다. 얄팍한 빵 한 조각을 머금고는 “담백하니 꽤 맛이 괜찮네” 하고 생각하는 순간 바지직하고 모래가 씹힌다. 지나는 종업원에게 투정을 하니 “음~” 하고는 그냥 가 버린다. 항시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맞고 사는 사라들이라, 이런 모래쯤은 예사라는 것. 드디어 화로에 구운 고기가 나오는데 맛을 보니 냄새 보다는 훨씬 맛이 덜하다.

 한국 사람에게 익숙지 않은 양고기라 그럭저럭 몇 점을 먹고 있는 사이에 국이 나왔다. 그러자 이제는 서양 친구들이 딴죽을 건다. “아니 스프가 먼저 나와야지.” 스프부터 먹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이니 그럴 만도 하리라. 동서양 사람들이 식탁에 함께 앉으니 식습관의 차이가 충돌을 한다. “어찌 이 지구상에 전쟁이 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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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그 즈음, 버스에서 내도록 신라의 실크로드 얘기를 들려주던 러시아의 어느 역사학자가 옆으로 다가온다. 일찍이 요기를 면했는지 커피 잔을 들고는 저만치 방향을 가리키는데, 바로 그 곳에 실크로드 무역이 한창일 때부터 있었던 울룩벡 천문관측소가 있단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신라의 실크로드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려주었는데, 그 때마다 “너희나라 얘긴데 그것도 모르느냐?”는 식으로 반문해 오는지라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상하기도 해 왠지 반갑지 않은 친구였다. 그런데 밥 먹는 곳 까지 와서 아는 체를 한다 싶어 시큰둥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두지 못한 것이 후회막급이다.    

 아무튼 그 사람으로 인해 중앙아시아와 관련한 한국의 역사연구가 너무도 취약하다는 것을 실감했던지라 이후로 학생들에게 중앙아시아와 한국음악에 관한 연구를 해보라고 종종 권한다. 그러나 러시아어와 우즈베키스탄어의 장벽을 넘기가 너무 부쳐서일까? 아직 중앙아시아 음악을 연구하는 전문가는 없는 듯하다.

 화려한 모자이크 문양을 한 타슈켄트의 모스크를 무대로 2년에 한 번씩 세계민속음악제가 열린다는데, 상상으로만 그려봐도 환상적인 풍경이 떠오른다. 오래전, 작곡가 야니가 그리스 신전(神殿)을 배경으로 연주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멋있었다. 이곳에서의 세계 음악제는 그와 같은 고전적인 면모에다가 동양의 신비로움까지 더할 것이니 얼마나 기막힐까? 꼭 한번 그 축제에 오고야 말리라는 다짐을 했는데 1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못 가고 있으니 세상 일이 참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한다.

 가곡 ‘비목’의 작사자이자 한국음악학자인 한명희 교수님이 이 음악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다소 전해 주었기에 그나마 약간의 갈증은 풀었지만 늘 그 축제가 궁금하다. 그 사이에 한국의 국악인들도 이 음악제에 참여해 수상했으며, 한 교수님은 남양주의 이미시문화원으로 중앙아시아의 여러 예인들을 초청해 연주회를 열었다. 전주 소리축제에도 보이슨 사람들을 초청해 공연을 했으니 멀기만 하던 중앙아시아 음악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듯 반갑기 만하다.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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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사마르칸트에 울려퍼지는 신라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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