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함께 살고도 몰랐다, 내 남편이 여자인 것을

기사등록 2011/03/05 08:41:00

최종수정 2016/12/27 21:48:34

【서울=뉴시스】양태자의 유럽야화<37>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 성(性)만 존재한다. 우리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운명적으로 이 두 성 중 하나를 갖고 태어난다. 몇 백 년 전 유럽에서 경제적 이유 때문에 범죄 후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등등의 이유로 ‘남장 여인’들이 살다 갔다. 그렇다고 이들이 동성연애자였던 것은 아니다. 단지 여러 이유로 남장을 하고 살았을 뿐이다.

 남장 여인이 유럽 역사 속에 자주 등장했던 시기는 대략 1500~1800년이었고, 변장한 여자들은 몇 백 명 정도 독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살았다고 탈켄베르거 박사가 밝혔다.

 오늘날에야 성 전환까지 할 수 있는 시대이니 별스런 얘기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성 역할을 엄밀히 제한하던 시대였던 지라 여자가 남장을 한다는 것은 철저한 금지사항에 속했다. 특히 “여자는 남자들의 옷을 입어선 안 된다. 남자는 여자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모세 5장, 22,5)이라는 성서 구절에 따른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던 시대였다.

 또 몇 세기 전 유럽인들은 자신의 신분을 복장으로 표출했다. 예를 들면 사형 집행자나 창녀는 거리에 나설 때 그들의 신분 표시를 반드시 해야만 했다. 그러니 남녀의 복장은 얼마나 더 엄격하게 구분했겠는가? 물론 예외는 분명히 있었다. 잠시 즐기기 위한 시간인 축제 때나 카니발 때, 여행 중 번거로운 옷차림일 때는 허용됐다. 또, 남자들이 접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을 때는 관용이 뒤따랐다. 예를 들자면 독일의 유명한 학자인 훔볼트가 그의 로마 여행에 두 딸을 데리고 갔을 때 편의상 두 딸에게 남자 복장을 하게 했을 때의 경우처럼 말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여성들이 남장을 했다니…. 이들은 왜 죽음을 무릅쓰고 남장 여인이 됐을까? 이런 남장 여인들이 어떻게 안 들키고 남장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이번에는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남장한 여인들을 보자. 당시 여자 직업은 하녀 일로 거의 한정됐다. 해고라도 당하면 돈 벌 곳이 별로 없었다 기껏 다른 방도라 해봐야 창녀로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남장이 들통 나서 법정에 선 여인들이 밝히는 이유를 보면 주로 일 자리가 없을 때 기발한 생각으로 남장을 택했다. 남장을 하면 여성들의 복장으로는 잘 다가 갈수 없는 남성들 일자리 영역에 쉽게 접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법정기록에 나오는 한 예를 들어보자. 1746년 하녀로 일하면서 근근이 살아가던 27살의 마리아 폰 안트베르펜이라는 여인이 그만 해고를 당했다. 부모가 없던 그녀는 먹고 살기가 막막해지자 차라리 남장을 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남장을 한 뒤 밤에 도망친 그녀는 길에서 그녀를 군인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됐다. 그녀는 이름도 얀 폰 안트로 바꾸고 군인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 남장여인은 후에 장교의 딸인 요한나 크라메르스와 결혼해 가정까지 꾸렸다. 마리아는 가장으로서 너무나 철저히 살았다. 즉 파이프로 담배 피우는 모습, 자주 낚시하러 가는 모습 등등을 보여줬다. 이 남장 여 가장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재봉틀로 옷까지 만들곤 했었지만 부인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데, 좀처럼 믿기 어려운 것은 그녀의 부인이 3년이나 남편이 여성인줄 몰랐다는 사실이다. 너무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 같지 않은가? 그렇지만 마리아 폰 안트베르펜 얘기는 그녀의 법정 진술을 토대로 나온 얘기였기에 믿을 수밖에 없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었다. 1751년 그 전에 하녀로 일했던 집주인이 그만 이 남장 여인인 마리아 폰 안트베르펜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 땜에 이 평화롭던 가정은 깨졌고 법정으로 가는 일로 번졌다. 너무 신기하지 않은가? 마리아가 자기 부인에게 3년간을 그렇게 철저하게 속일 수 있었다니…. 부인의 진술도 요상했다. 3년간 자매처럼 살았다고 했다니 말이다. 법정에서도 이 사건을 어찌 판결해야 할지를 몰라 고심했다.

 그렇지만 내린 판결은 있었다. 죄목은 거짓 결혼이 아니었다. 여자가 남장을 했다는 것, 이름까지 변경한 서류위조 죄로 처벌받았다. 그 밖에도 결혼제도와 그 지방의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녀는 결국 추방을 당했다. 실제 법정 기록을 토대로 탈켄베르거 박사가 밝혔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여자가 남자 복장을 하고 여자와 결혼한 것은 아주 드문 경우라고 탈켄베르거는 강조한다.  

 20세기에 일어난 한 스캔들은 코로넬이라는 여인의 이야기다. 이 남장 여인 역시 엘프리다라는 여인과 결혼까지 했다. 그녀의 남장이 7년 뒤 발각되자 그녀도 법정에 섰다고만 전할 뿐 탈켄베르크 박사는 더 이상 언급이 없었다. 필자가 추측하기에는 이런 경우 아마도 부인 엘프리다도 동성애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만약 동성애자가 아니라면 어찌 7년을 부부로서 살수 있었단 말인가? 위의 마리아와도 유사한 상황이지만 두 사람 사이의 시대적인 차이점- 마리아는 거의 중세에 가까움, 코로넬은 거의 현대에 가까움-을 고려해 본다면 말이다.  

 마리아 폰 안트베르펜 상황과는 다른 반대의 남장 그룹들도 있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른 뒤 법망을 피하기 위한 남장이었다. 1705년 바런츠라는 여인은 부모를 죽인 뒤 즉시 남장을 하고 달아났다. 그녀는 한 동안 마도로스 복장에다가 담뱃대를 빨면서 완벽하게 남자 역할을 잘했으나 결국 체포됐다.  

 반대로 이런 범죄 망에서 교묘히 잘 빠져 나가서 오랫동안 잘 살은 이도 있다. 17세기에 런던의 지하 세계 망에 소매치기로 살았던 영국 여인인 메리 피리트다.  

 마그레텐 얀스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남장을 한 채 네덜란드의 무역 배를 탔다. 배가 태양이 지글지글 끓는 아프리카 부근으로 지나 갔을 때의 일이다. 이런 온도에도 껴입었던 옷을 벗지 않아 동료들의 원성을 샀다. 늘 들킬 것이 두려웠던 그녀도 너무 괴로워했다. 마침 그때 배가 아프리카의 한 항구에 정박을 하게 됐다. 그녀는 아프리카 애인을 만나러 간다는 구실로 즉시 배에서 내리면서 그 위기를 극복했다. 마그레텐은 남장을 하고도 배 위에서 요리조리 잘 피했지만 나중엔 남장 행각이 들통 나 버리고 말았다.  

 그 밖에도 전쟁시 조국을 구해야 된다는 조국애 때문에 군인으로 간 남장 여인들도 있었고, 은수자로 살면서 남장을 택한 여인들도 있었지만 지면 관계로 여기서 그친다.  

 마지막으로 밀레나 무스학이 전하는 특이한 얘기를 보자. 1850년의 발칸반도 산악 지방의 유일한 예가 될만한 기록이다 요약하면 이 지방에서도 여성의 역할이란 늘 남성과 구별됐다. 여자는 가정의 농사를 도우면서 순종형으로 길들여 졌다. 하지만, 한 여인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선서를 하게 되면 이 여인은 남자와 똑같은 역할과 지위가 주어졌다. 즉 선서를 한 이상은 일생 동안 온전히 남성의 역할과 의무가 주어진 것이다. 남자 일을 했고, 남자 옷을 입었으며, 남자로서 최고의 권위를 나타내는 무기까지 지닐 수 있었다.

 이런 역할에 철저하게 젖어 생활하다 보면 스스로가 여자라는 생각을 잊어 버린다고 했다. 이런 역할도 자기가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경우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운명적으로 그렇게 돼야만 하는 경우는 달랐다; 만약 대를 이을 남자가 없는 집에 여자 아이가 태어났을 경우다. 이런 가정에선 태어날 때부터 아들이 태어났다고 밖에 공포하고서 딸을 완전히 남자로 키웠다. 이런 여자애가 성장하면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 잇는다고 다시 선서를 하게 된다. 만약 선서 뒤에 이 역할을 어길 경우 돌로 쳐 죽이거나 심한 경우엔 생매장됐다.  

 우리나라 TV에서 방송됐던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도 조선시대 남장여인의 얘기가 있었지 않았던가? 이렇듯 시대마다, 나라마다 분명 다른 관습과 제도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들 주어진 관습과 제도 속에서 줄넘기를 했다. 만약 현대인에게 이런 저런 옛 규정을 지키라고 했다면 분명 코웃음을 칠 것이다. 지금은 지금이라는 관습과 제도 속에서 줄넘기 하고 있기에 말이다.

 비교종교학 박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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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을 함께 살고도 몰랐다, 내 남편이 여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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