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시 '쿠쉬나메' 발굴, '처용 출신논란' 종지부(?)

기사등록 2010/12/08 12:41:57

최종수정 2017/01/11 12:56:56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페르시아 고대문헌 '쿠쉬나메'가 완역되면 처용의 출신논란이 해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양대 이희수 교수에 의해 확인된 아랍권의 서사시 '쿠쉬나메'는 삼국시대 신라시기에 해당하는 7세기 사산조 페르시아와 멸망 후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사산조 페르시아 멸망 후 이란 유민들은 중국이나 신라로 망명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처용설화가 전하는 신라의 헌강왕 시대가 9세기다.  이는 페르시아 멸망 후와 시대를 같이하는 것이며 처용의 아랍인설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우리나라 측 오랜 기록과도 맞아 떨어진다.  삼국사기에서는 헌강왕 5년 3월 '나라 동쪽의 주군(州郡)을 순행할 때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네 사람이 나타나 가무(歌舞)를 하는데 그 얼굴과 옷차림이 해괴해 산해(山海)의 정령이라 하였다'라는 대목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울산의 개운포란 지명이 구체화 돼 '자욱한 안개와 함께 헌강왕 앞에 나타난 존재가 동해 용왕과 일곱 아들이며, 그 중 막내를 경주에 데려와 급간 벼슬을 주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도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쿠쉬나메에서 아비틴이 이란 유민들과 함께 '신라로 기항해 항구에서 신라왕 타이후르의 아들 가람의 영접을 받았으며, 왕정을 보좌하고 왕과의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며 신라의 공주 프라랑과 결혼한다'는 내용과 유사하다.  헌강왕 때에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려다 황소의 난으로 보내지 못하고 일본국 사신을 맞기도 하는 등 국제교류가 원활해 아랍인과의 교류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동안 실크로드학자인 단국대 정수일 박사는 '처용'이 서역인, 즉 아라비아인이라고 단정해 왔다.  전승돼 오는 처용탈의 모습이 아랍인의 형상에 가깝고, 헌강왕 당시 개운포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드나들던 국제 무역항이었다는 것이다.  쿠쉬나메에서 중국으로 숨어든 이란 유민들이 신라의 항구를 통해 이주했다는 내용과도 일치한다.  울산의 정체성 연구에 심취하고 있는 문화도시 울산포럼 관계자는 "지금까지 처용에 대해서는 지방호족설, 무속인설, 신라에 들어온 아라비아 상인설 등이 있었다"며 "쿠쉬나메가 완전하게 번역돼 베일에 싸인 '처용의 출신' 배경이 벗겨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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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시 '쿠쉬나메' 발굴, '처용 출신논란' 종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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