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차길진의 시크릿 가든<79>
영화 ‘엑스맨’ 시리즈엔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가 등장한다. 그들을 ‘뮤턴트’(돌연변이)라고 부르는데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말살 위협을 당한다. 이로 인해 완전 인간화에 대한 유혹을 받기도 한다. 과연 이 지구상에 영화처럼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가 살고 있을까.
호주 원주민인 오스틀로이드족은 광활한 사막을 사이에 두고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하는 부족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자기 부족만이 ‘참사람’이라 여긴다. 문명화된 인간을 ‘뮤턴트’(돌연변이)라 부른다고 한다. 원래 인간은 텔레파시나 예지력을 타고나는데, 현재 인간들은 이를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 같은 사람은 돌연변이일까, 아니면 참사람일까. 얼마 전 서울 시내 백화점에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어떤 여자가 나를 보더니 “왜 나를 해코지하는 거야! 날 가만히 내버려 둬!”라며 고성을 질렀다. 처음엔 나한테 그러는 줄 모르고 슬쩍 피했다. 근데 정확히 내 눈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나 보지 마! 자꾸 보면 그 눈을 뽑아버릴 테다!”라고 소리쳤다.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악령이 빙의된 여자였다.
불현듯 선글라스가 생각났다. 악령에게 내 눈을 들키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영혼을 볼 때와 안 볼 때를 잘 구별하고 있었다. 어쩌면 신이 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무대 위에서만 연기하는 배우처럼, 내 영능력은 구명시식에만 집중했다. 이로 인해 영능력자의 신분을 들키지 않고 잘 살아왔다. 적어도 이 여자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여자에게 빙의된 악령은 내가 자신을 쫓아낼 줄 알고 지레 겁을 먹고 소리를 질렀다. 멀쩡히 길을 가고 있던 나는 영능력자라는 이유로 악령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적인 상황을 사람들이 알 리 없었다. 어느새 주위에 몰려든 관중들은 나를 보고 쑥덕거렸다. “도대체 저 남자가 뭘 한 거야?” 이상한 중년 남성 취급을 받자 할 수 없이 무작정 자리를 피했다. 태어나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과거 나라에선 맹인들에게 점술을 가르쳤다. 앞이 안 보이는 맹인들은 제3의 눈이 발달해 미래를 보는 능력이 뛰어났다. 때로는 예지능력이 발달한 정상인을 일부러 맹인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장애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유명한 예지자는 눈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왜 영능력자의 눈을 가려버렸는지 알게 됐다. 영능력자의 능력을 끌어 올리기 위함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능력자의 신분을 감춰 불시에 공격할지 모르는 다른 악령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판타지 소설 같은 얘기지만 이것이 나의 일상이다. 수시로 악령이 덮치고, 그들과 싸워 천도시키는 일. 백화점에서 악령과 싸우면서 도대체 나의 존재는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하게 됐다.
그녀를 피해 다른 길로 갔다가 또 다시 마주치고 말았다. 이번에는 나를 보더니 그 자리에 드러누워 입에 거품까지 물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주 잠깐 저 악령을 천도시켜 빙의를 고쳐줄까 고민도 했지만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일반적으로 영가들은 탐착, 애착, 원착 등의 이유로 이승을 떠나지 못하면 빙의를 선택했다. 빙의 대상은 자기 집에 살고 있는 동물들. 따라서 집 안에 살고 있는 구렁이나 뱀을 보고 ‘업’(業)이라며 함부로 죽이지 못했다. 그 뱀을 죽이면 재앙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어 제주도에서는 아예 뱀을 정성껏 키우기도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도깨비가 출현하는 것도 빙의 현상의 일종. 빗자루나 농기구 등 무생물에 잠깐 기생해 사람을 놀라게 할망정 절대 저승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현대에도 빙의는 계속된다. 생활환경이 바뀐 탓에 뱀, 구렁이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바퀴벌레 몸속까지 파고든다. 물론 빙의 가능한 동물이 집 안에 살고 있는 경우에 사정은 달라진다.
몇 년 전 남편을 잃은 C씨는 남편이 사랑하던 애완견을 정성껏 돌보며 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애완견이 마치 남편처럼 자신을 보듬어 주는 것이었다. 때로는 말벗이 되고 때로는 애교도 부려 남편 잃은 슬픔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애완견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동창 모임에 나가 남자 동창생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돌아오자 갑자기 개가 달려들며 무섭게 짖는 게 아닌가.
이후 애완견의 감시는 심해졌다. 친구 전화가 오면 선을 물어뜯어 전화를 받지 못하게 했다. 외출 준비만 해도 물듯이 짖어대는 통에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C는 구명시식을 요청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죽은 남편 영가가 부인을 떠나지 못하고 애완견에 빙의돼 있었다. 나는 그에게 “환생해서 돌아오라”고 말했고 결국 그는 천도에 응했다. 그때까지 부인 C는 빙의 형태로 죽은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영혼과 살지 않으며 영혼과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제부턴가 ‘빙의’란 말이 잘못 알려지면서 자신 안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격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빙의인 줄 알고 법당을 찾는다. 이럴 때면 영혼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도 탈이라는 생각을 한다.
빙의에 대해 알기 전에 마음과 정신, 심리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마음은 육체와 혼의 중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또 정신은 우리 몸에 흐르고 있는 에너지요, 심리(心理)는 선과 악, 음과 양이 교차되는 구심점이다. 이처럼 흔히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마음, 정신, 심리’란 말도 엄밀히 구분돼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빙의는 재해석돼야 한다. 흔히 다른 영혼이 어떤 이에게 ‘들어왔다, 씌웠다’는 것을 빙의라고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마음의 탁한 기운이 다른 탁한 기운을 불러들이는 것이 먼저임을 알아야 한다. 몸이 습하면 피부병이 생기고 추운데서 자면 감기에 걸리듯, 우울증처럼 정신 상태가 좋지 않고 심리상태가 불안해지면 자연스레 빙의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렇게 무작정 다른 영혼이 깃드는 것으로 알던 빙의도 냉정히 따지면 자기 영혼 안에서의 동요가 먼저 작용한다.
얼마 전 나를 찾아온 남성은 자기한테 죽은 삼촌이 빙의됐다며 구명시식을 요청했다. 그 이유를 묻자, 삼촌은 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무만 보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삼촌 영가가 빙의된 게 틀림없다고 했다. 웬만하면 그냥 가라고 말하지만 상태가 심각해 구명시식을 했는데 결과는 아주 뜻밖이었다. 한마디로 ‘상상 빙의’였던 것이다.
임신을 절실히 원하거나 임신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으면 ‘상상 임신’을 하듯, 그는 본인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상상 빙의를 앓고 있었다. 지극히 불안정한 그의 심리상태와 삼촌의 자살 이야기가 만든 합작품이다. 구명시식 후 ‘죽은 삼촌 영가를 잘 천도했으니 이제 빙의 현상은 사라질 것’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상상 빙의는 영혼에 대한 지나친 강박 관념과 그릇된 이해가 빚어낸 신종 현상이었다.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www.hooam.com
영화 ‘엑스맨’ 시리즈엔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가 등장한다. 그들을 ‘뮤턴트’(돌연변이)라고 부르는데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말살 위협을 당한다. 이로 인해 완전 인간화에 대한 유혹을 받기도 한다. 과연 이 지구상에 영화처럼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가 살고 있을까.
호주 원주민인 오스틀로이드족은 광활한 사막을 사이에 두고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하는 부족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자기 부족만이 ‘참사람’이라 여긴다. 문명화된 인간을 ‘뮤턴트’(돌연변이)라 부른다고 한다. 원래 인간은 텔레파시나 예지력을 타고나는데, 현재 인간들은 이를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 같은 사람은 돌연변이일까, 아니면 참사람일까. 얼마 전 서울 시내 백화점에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어떤 여자가 나를 보더니 “왜 나를 해코지하는 거야! 날 가만히 내버려 둬!”라며 고성을 질렀다. 처음엔 나한테 그러는 줄 모르고 슬쩍 피했다. 근데 정확히 내 눈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나 보지 마! 자꾸 보면 그 눈을 뽑아버릴 테다!”라고 소리쳤다.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악령이 빙의된 여자였다.
불현듯 선글라스가 생각났다. 악령에게 내 눈을 들키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영혼을 볼 때와 안 볼 때를 잘 구별하고 있었다. 어쩌면 신이 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무대 위에서만 연기하는 배우처럼, 내 영능력은 구명시식에만 집중했다. 이로 인해 영능력자의 신분을 들키지 않고 잘 살아왔다. 적어도 이 여자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여자에게 빙의된 악령은 내가 자신을 쫓아낼 줄 알고 지레 겁을 먹고 소리를 질렀다. 멀쩡히 길을 가고 있던 나는 영능력자라는 이유로 악령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적인 상황을 사람들이 알 리 없었다. 어느새 주위에 몰려든 관중들은 나를 보고 쑥덕거렸다. “도대체 저 남자가 뭘 한 거야?” 이상한 중년 남성 취급을 받자 할 수 없이 무작정 자리를 피했다. 태어나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과거 나라에선 맹인들에게 점술을 가르쳤다. 앞이 안 보이는 맹인들은 제3의 눈이 발달해 미래를 보는 능력이 뛰어났다. 때로는 예지능력이 발달한 정상인을 일부러 맹인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장애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유명한 예지자는 눈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왜 영능력자의 눈을 가려버렸는지 알게 됐다. 영능력자의 능력을 끌어 올리기 위함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능력자의 신분을 감춰 불시에 공격할지 모르는 다른 악령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판타지 소설 같은 얘기지만 이것이 나의 일상이다. 수시로 악령이 덮치고, 그들과 싸워 천도시키는 일. 백화점에서 악령과 싸우면서 도대체 나의 존재는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하게 됐다.
그녀를 피해 다른 길로 갔다가 또 다시 마주치고 말았다. 이번에는 나를 보더니 그 자리에 드러누워 입에 거품까지 물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주 잠깐 저 악령을 천도시켜 빙의를 고쳐줄까 고민도 했지만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일반적으로 영가들은 탐착, 애착, 원착 등의 이유로 이승을 떠나지 못하면 빙의를 선택했다. 빙의 대상은 자기 집에 살고 있는 동물들. 따라서 집 안에 살고 있는 구렁이나 뱀을 보고 ‘업’(業)이라며 함부로 죽이지 못했다. 그 뱀을 죽이면 재앙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어 제주도에서는 아예 뱀을 정성껏 키우기도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도깨비가 출현하는 것도 빙의 현상의 일종. 빗자루나 농기구 등 무생물에 잠깐 기생해 사람을 놀라게 할망정 절대 저승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현대에도 빙의는 계속된다. 생활환경이 바뀐 탓에 뱀, 구렁이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바퀴벌레 몸속까지 파고든다. 물론 빙의 가능한 동물이 집 안에 살고 있는 경우에 사정은 달라진다.
몇 년 전 남편을 잃은 C씨는 남편이 사랑하던 애완견을 정성껏 돌보며 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애완견이 마치 남편처럼 자신을 보듬어 주는 것이었다. 때로는 말벗이 되고 때로는 애교도 부려 남편 잃은 슬픔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애완견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동창 모임에 나가 남자 동창생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돌아오자 갑자기 개가 달려들며 무섭게 짖는 게 아닌가.
이후 애완견의 감시는 심해졌다. 친구 전화가 오면 선을 물어뜯어 전화를 받지 못하게 했다. 외출 준비만 해도 물듯이 짖어대는 통에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C는 구명시식을 요청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죽은 남편 영가가 부인을 떠나지 못하고 애완견에 빙의돼 있었다. 나는 그에게 “환생해서 돌아오라”고 말했고 결국 그는 천도에 응했다. 그때까지 부인 C는 빙의 형태로 죽은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영혼과 살지 않으며 영혼과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제부턴가 ‘빙의’란 말이 잘못 알려지면서 자신 안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격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빙의인 줄 알고 법당을 찾는다. 이럴 때면 영혼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도 탈이라는 생각을 한다.
빙의에 대해 알기 전에 마음과 정신, 심리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마음은 육체와 혼의 중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또 정신은 우리 몸에 흐르고 있는 에너지요, 심리(心理)는 선과 악, 음과 양이 교차되는 구심점이다. 이처럼 흔히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마음, 정신, 심리’란 말도 엄밀히 구분돼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빙의는 재해석돼야 한다. 흔히 다른 영혼이 어떤 이에게 ‘들어왔다, 씌웠다’는 것을 빙의라고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마음의 탁한 기운이 다른 탁한 기운을 불러들이는 것이 먼저임을 알아야 한다. 몸이 습하면 피부병이 생기고 추운데서 자면 감기에 걸리듯, 우울증처럼 정신 상태가 좋지 않고 심리상태가 불안해지면 자연스레 빙의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렇게 무작정 다른 영혼이 깃드는 것으로 알던 빙의도 냉정히 따지면 자기 영혼 안에서의 동요가 먼저 작용한다.
얼마 전 나를 찾아온 남성은 자기한테 죽은 삼촌이 빙의됐다며 구명시식을 요청했다. 그 이유를 묻자, 삼촌은 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무만 보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삼촌 영가가 빙의된 게 틀림없다고 했다. 웬만하면 그냥 가라고 말하지만 상태가 심각해 구명시식을 했는데 결과는 아주 뜻밖이었다. 한마디로 ‘상상 빙의’였던 것이다.
임신을 절실히 원하거나 임신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으면 ‘상상 임신’을 하듯, 그는 본인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상상 빙의를 앓고 있었다. 지극히 불안정한 그의 심리상태와 삼촌의 자살 이야기가 만든 합작품이다. 구명시식 후 ‘죽은 삼촌 영가를 잘 천도했으니 이제 빙의 현상은 사라질 것’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상상 빙의는 영혼에 대한 지나친 강박 관념과 그릇된 이해가 빚어낸 신종 현상이었다.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www.hoo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