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산=공동취재단/뉴시스】안호균 기자 = 우원식 전 민주당 국회의원은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남측 최고령자이자 모친인 김례정씨(96)와 함께 참석했다.
우 전 의원은 30일 상봉행사에서 노환으로 바깥 출입이 불편한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이번 상봉장 행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상봉을 미룰 수 없었다. 헤어진 지 60년 만에, 상봉신청을 한 지 15년 만에 비로소 만남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상봉 전 "긴장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긴장은 무슨, 딸 만나는 데 좋기만 하지"라고 웃던 김씨도 막상 북측 딸 우정혜씨(71)를 만나자 "너를 어떻게… 꿈에서만 보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측 오빠 우영식씨는 "고맙다 (상봉 신청을 통해), 우리를 찾아줘서"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영식씨는 1·4후퇴 때 황해도 연백에서 뒤따르던 동생을 "금방 다녀오겠다"며 남겨놓고 온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됐다.
북측 정혜씨는 오빠 영식씨를 찾으려고 상봉신청을 했으며 노모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은 이번 이산상봉행사 생사확인 과정에서 뒤늦게 알게 됐다.
정혜씨 외에 또다른 딸 덕혜씨(69)가 북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도 이번 상봉을 통해 확인했다.
김례정씨 가족은 1995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측 정혜, 덕혜씨에 대한 상봉 신청을 했으나 그간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김씨 가족의 상봉은 유일한 모녀 상봉인데다가 4남매가 모두 상봉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남쪽 가족들은 가족사가 담긴 2권의 사진 앨범을 마련해 와 지난 세월을 설명했고 사연집 등도 마련해왔다. 현장에서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뽑아 10여장을 건넸다.
정혜씨는 북측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점을 알리려는 듯 미리 챙겨온 훈장과 상장·상품을 연신 자랑했다. 자신을 끌어안은 어머니에게 "우리 울지 맙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에서 경제·공업대학 2곳을 이수한 정혜씨는 ★국기훈장 1급(영웅훈장)을 비롯해 20여개의 훈·포장을 수상했다고 말했다.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연안군 직매점의 지배인(사장)으로 있다고 가족들에게 밝혔다.
상봉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한결 누그러진 정혜씨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며 어머니에게 큰 절을 올렸고 김씨는 "내가 너를 보려고 지금까지 오래 살았나보다"라고 말했다.
상봉장을 찾은 최성익 북측 이산가족방문단장(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애국자도 큰 애국자를 두셨다"며 "남쪽에 돌아가셔서 자랑하셔도 되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북측 취재진 역시 "인민영웅 칭호만큼은 아니지만 정혜씨의 훈장들은 격이 매우 높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혜씨의 외조부 김한 선생은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 폭파사건에 참여해 옥고를 치른 공로로 2005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추서받아 가족이 각각 남북에서 훈장을 받은 셈이 됐다.
ahk@newsis.com
우 전 의원은 30일 상봉행사에서 노환으로 바깥 출입이 불편한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이번 상봉장 행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상봉을 미룰 수 없었다. 헤어진 지 60년 만에, 상봉신청을 한 지 15년 만에 비로소 만남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상봉 전 "긴장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긴장은 무슨, 딸 만나는 데 좋기만 하지"라고 웃던 김씨도 막상 북측 딸 우정혜씨(71)를 만나자 "너를 어떻게… 꿈에서만 보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측 오빠 우영식씨는 "고맙다 (상봉 신청을 통해), 우리를 찾아줘서"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영식씨는 1·4후퇴 때 황해도 연백에서 뒤따르던 동생을 "금방 다녀오겠다"며 남겨놓고 온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됐다.
북측 정혜씨는 오빠 영식씨를 찾으려고 상봉신청을 했으며 노모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은 이번 이산상봉행사 생사확인 과정에서 뒤늦게 알게 됐다.
정혜씨 외에 또다른 딸 덕혜씨(69)가 북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도 이번 상봉을 통해 확인했다.
김례정씨 가족은 1995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측 정혜, 덕혜씨에 대한 상봉 신청을 했으나 그간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김씨 가족의 상봉은 유일한 모녀 상봉인데다가 4남매가 모두 상봉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남쪽 가족들은 가족사가 담긴 2권의 사진 앨범을 마련해 와 지난 세월을 설명했고 사연집 등도 마련해왔다. 현장에서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뽑아 10여장을 건넸다.
정혜씨는 북측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점을 알리려는 듯 미리 챙겨온 훈장과 상장·상품을 연신 자랑했다. 자신을 끌어안은 어머니에게 "우리 울지 맙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에서 경제·공업대학 2곳을 이수한 정혜씨는 ★국기훈장 1급(영웅훈장)을 비롯해 20여개의 훈·포장을 수상했다고 말했다.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연안군 직매점의 지배인(사장)으로 있다고 가족들에게 밝혔다.
상봉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한결 누그러진 정혜씨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며 어머니에게 큰 절을 올렸고 김씨는 "내가 너를 보려고 지금까지 오래 살았나보다"라고 말했다.
상봉장을 찾은 최성익 북측 이산가족방문단장(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애국자도 큰 애국자를 두셨다"며 "남쪽에 돌아가셔서 자랑하셔도 되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북측 취재진 역시 "인민영웅 칭호만큼은 아니지만 정혜씨의 훈장들은 격이 매우 높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혜씨의 외조부 김한 선생은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 폭파사건에 참여해 옥고를 치른 공로로 2005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추서받아 가족이 각각 남북에서 훈장을 받은 셈이 됐다.
ahk@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