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208>
세계 최고의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이 몽골의 파스파 문자를 모방했다고 보는 외국의 언어학자들이 많다. ‘字倣古篆(자방고전)’은 ‘字倣八思巴(자방파스파)’라는 주장이다.
국내 국어학자들은 “한자는 중국글자”라는 도그마에 빠져 훈민정음 해례본에 명시된 ‘古篆(고전)’의 실체를 똑바로 보려 들지 않는다. 그저 독창만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47) 소장은 “법정 재판에서는 결정적 증거자료가 나타나면 사건이 종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명으로 편찬, 창제 당시의 정황이 분명하게 기록된 국보 제70호 훈민정음이 있는데도 정인지 후서에 나오는 자방고전을 왜곡시켜 계속 미제사건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이는 국력 소모요, 혼란의 이상징후”라고 지적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등장하는 자방고전의 ‘字’는 세종대왕이 제작한 표음문자 훈민정음의 자형을 가리킨다. 세종 26년 2월20일 최만리,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이 함께 올린 상소에서 ‘자방고전을 좀 더 부연해 字形雖倣古之篆文(자형수방고지전문; 자형은 옛 전문을 모방했지만)’이라고 표현한 것이 증거다.
박 소장은 “그리고 자방고전에서의 ‘倣(방)’은 ‘본뜨다, 모방하다’를 뜻한다. 따라서 자음이 아닌 자형 면에서 훈민정음은 무엇인가를 모방한 문자임에 틀림없다”는 판단이다. 그러면서도 “자형 모방은 일부이지 훈민정음 전체(100%)가 아니며 또한 여기에서의 자형은 자원까지 동일하다는 조건이 걸린 말임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특기한다.
로마자 E와 훈민정음 ㅌ의 자형은 같지만, E의 자원은 ‘손을 그린 것’이며 ㅌ의 자원은 ‘혀의 모양을 그린 ㄴ에서 획을 더한 것’이므로 ㅌ는 E를 모방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짚는다. 이런 식의 자형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자방고전에서의 ‘古篆(고전)’은 각국의 사전에 잘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당연히 ‘한자의 옛 서체인 篆書(전서)’를 의미하는데, 거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들어가야 한다. 즉, ‘고전’은 좁은 의미에서는 ‘전서(대전체+소전체)’를 지칭하며, 넓은 의미에선 ‘전서를 포함한 한자의 上古(상고) 서체 전체’, 그러니까 ‘갑골문~소전체’까지의 옛 서체를 지칭한다. 다만, 세종대왕 때는 갑골문이 아직 발견되기 전이므로(갑골문은 1899년 발견) ‘금문에서 소전체’까지가 세종대왕 당시 고전의 범위였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귀띔한다.
소전체에서 금문까지를 모두 훈민정음의 자형과 비교, 확인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어학자들은 이 작업을 하지 않거나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훈민정음은 모두 28자다. 초성 17자를 대표하는 것은 牙舌脣齒喉(아설순치후)로 표현되는 5자(ㄱ, ㄴ, ㅁ, ∧, ㅇ)이며, 중성 11자를 대표하는 것은 天地人(천지인)으로 표현되는 3자(∙, 一, |)다. 이 핵심 8자만 고전과 비교하면 답이 나온다. 나머지는 이 8자에서 응용, 파생된 것들이다. 지문을 대조하듯 조사하면 8개 중 5개(ㅁ, ∧, ∙, 一, |)는 고전을 모방한 자형이다. 그 외 3개(ㄱ, ㄴ, ㅇ)는 모방이 아닌 순수 창작임을 알 수 있다.
<도표>에서처럼 정음의 자형은 훈민정음 해례본 가운데 정인지의 증언에서와 같이 일부분 고전을 본뜬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고전에서 입모양을 그린 ‘口’는 ‘구’로 발음되지만, 훈민정음의 ‘ㅁ’은 입모양을 그렸으되 발음은 ‘구’나 ㄱ 계통이 아닌 ‘미음’인 점을 직시해야 한다. 고전 齒(이 치)자 안에 들어있는 이의 모양을 훈민정음 중 ‘ㅅ’은 본땄으나 齒의 ㅅ이 아무런 음이 없는 상형자임과 달리 세종대왕은 창의적으로 ‘시옷’(정확히는, 세종은 ‘술(戌)자의 초발성’이라 했고 ‘시옷’은 최세진이 훈몽자회에서 새로 명명한 것)이라 했다.
정리하면, 훈민정음 28자의 일부분은 자형을 고전에서 본땄으나 자음은 고전과 다른 체계로 운용했다. 기준을 자형이 아닌 자음에 두고 볼 때 정음은 독창적, 획기적이며 매우 과학적인 표음문자임이 분명하다. 박 소장은 “이처럼 자방고전에서의 고전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형과 자음이라는 두 가지 관점을 구별해 파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훈민정음의 기원과 관련한 오해와 억측은 불식될 것”이라고 못박는다.
문화부장 [email protected]
세계 최고의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이 몽골의 파스파 문자를 모방했다고 보는 외국의 언어학자들이 많다. ‘字倣古篆(자방고전)’은 ‘字倣八思巴(자방파스파)’라는 주장이다.
국내 국어학자들은 “한자는 중국글자”라는 도그마에 빠져 훈민정음 해례본에 명시된 ‘古篆(고전)’의 실체를 똑바로 보려 들지 않는다. 그저 독창만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47) 소장은 “법정 재판에서는 결정적 증거자료가 나타나면 사건이 종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명으로 편찬, 창제 당시의 정황이 분명하게 기록된 국보 제70호 훈민정음이 있는데도 정인지 후서에 나오는 자방고전을 왜곡시켜 계속 미제사건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이는 국력 소모요, 혼란의 이상징후”라고 지적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등장하는 자방고전의 ‘字’는 세종대왕이 제작한 표음문자 훈민정음의 자형을 가리킨다. 세종 26년 2월20일 최만리,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이 함께 올린 상소에서 ‘자방고전을 좀 더 부연해 字形雖倣古之篆文(자형수방고지전문; 자형은 옛 전문을 모방했지만)’이라고 표현한 것이 증거다.
박 소장은 “그리고 자방고전에서의 ‘倣(방)’은 ‘본뜨다, 모방하다’를 뜻한다. 따라서 자음이 아닌 자형 면에서 훈민정음은 무엇인가를 모방한 문자임에 틀림없다”는 판단이다. 그러면서도 “자형 모방은 일부이지 훈민정음 전체(100%)가 아니며 또한 여기에서의 자형은 자원까지 동일하다는 조건이 걸린 말임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특기한다.
로마자 E와 훈민정음 ㅌ의 자형은 같지만, E의 자원은 ‘손을 그린 것’이며 ㅌ의 자원은 ‘혀의 모양을 그린 ㄴ에서 획을 더한 것’이므로 ㅌ는 E를 모방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짚는다. 이런 식의 자형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자방고전에서의 ‘古篆(고전)’은 각국의 사전에 잘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당연히 ‘한자의 옛 서체인 篆書(전서)’를 의미하는데, 거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들어가야 한다. 즉, ‘고전’은 좁은 의미에서는 ‘전서(대전체+소전체)’를 지칭하며, 넓은 의미에선 ‘전서를 포함한 한자의 上古(상고) 서체 전체’, 그러니까 ‘갑골문~소전체’까지의 옛 서체를 지칭한다. 다만, 세종대왕 때는 갑골문이 아직 발견되기 전이므로(갑골문은 1899년 발견) ‘금문에서 소전체’까지가 세종대왕 당시 고전의 범위였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귀띔한다.
소전체에서 금문까지를 모두 훈민정음의 자형과 비교, 확인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어학자들은 이 작업을 하지 않거나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훈민정음은 모두 28자다. 초성 17자를 대표하는 것은 牙舌脣齒喉(아설순치후)로 표현되는 5자(ㄱ, ㄴ, ㅁ, ∧, ㅇ)이며, 중성 11자를 대표하는 것은 天地人(천지인)으로 표현되는 3자(∙, 一, |)다. 이 핵심 8자만 고전과 비교하면 답이 나온다. 나머지는 이 8자에서 응용, 파생된 것들이다. 지문을 대조하듯 조사하면 8개 중 5개(ㅁ, ∧, ∙, 一, |)는 고전을 모방한 자형이다. 그 외 3개(ㄱ, ㄴ, ㅇ)는 모방이 아닌 순수 창작임을 알 수 있다.
<도표>에서처럼 정음의 자형은 훈민정음 해례본 가운데 정인지의 증언에서와 같이 일부분 고전을 본뜬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고전에서 입모양을 그린 ‘口’는 ‘구’로 발음되지만, 훈민정음의 ‘ㅁ’은 입모양을 그렸으되 발음은 ‘구’나 ㄱ 계통이 아닌 ‘미음’인 점을 직시해야 한다. 고전 齒(이 치)자 안에 들어있는 이의 모양을 훈민정음 중 ‘ㅅ’은 본땄으나 齒의 ㅅ이 아무런 음이 없는 상형자임과 달리 세종대왕은 창의적으로 ‘시옷’(정확히는, 세종은 ‘술(戌)자의 초발성’이라 했고 ‘시옷’은 최세진이 훈몽자회에서 새로 명명한 것)이라 했다.
정리하면, 훈민정음 28자의 일부분은 자형을 고전에서 본땄으나 자음은 고전과 다른 체계로 운용했다. 기준을 자형이 아닌 자음에 두고 볼 때 정음은 독창적, 획기적이며 매우 과학적인 표음문자임이 분명하다. 박 소장은 “이처럼 자방고전에서의 고전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형과 자음이라는 두 가지 관점을 구별해 파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훈민정음의 기원과 관련한 오해와 억측은 불식될 것”이라고 못박는다.
문화부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