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망하는 댄스영화, 재범 '하이프네이션'은?

기사등록 2010/07/10 09:01:00

최종수정 2017/01/11 12:09:34

【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 아이돌그룹 2PM 출신 박재범이 주연을 맡은 댄스영화 ‘하이프네이션’이 드디어 촬영에 들어갔다. 그간 손담비 등 수많은 댄스 가수들의 이름이 거론돼왔던 프로젝트가 마침내 시동을 건 것이다. ‘하이프네이션’은 동양인 비보이 팀이 세계 비보이 대회에 참가한 뒤 미국에서 성공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다.

 그러나 막상 지난 6일 서울에서 가진 한 현장 공개는 말들이 많다. 세계닷컴 7월7일자 ‘재범 영화 ‘하이프네이션’ 초반부터 삐걱?…기자들 ‘보이콧’’은 “현장에 기자들이 도착하자 영화 관계자는 “재범이 늦게 도착할 것 같다”며 “대략 9시30분 즈음일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고 통보했다. 이에 현장에 있던 취재진 30여 명은 촬영을 포기하고 보이콧을 선언, 철수에 들어갔다”며 “통상적으로 현장 공개에서 열리는 간담회도 애초에 이날 계획되지 않은 것이 뒤늦게 알려졌고, 촬영이 정확히 언제 진행되는지조차 알려지지 않는 등 이해하기 힘든 진행의 미숙함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에 ‘하이프네이션’의 제작 진행 자체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이프네이션’은 화제의 인물 박재범의 컴백 프로젝트 정도 의미만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항상 시장 가능성을 보여 왔지만, 이상스러울 정도로 실제 제작에는 들어가지 못했던 댄스 장르의 ‘제대로 된 첫 시도’ 프로젝트였다. 하나의 장르를 시장에 정착시킨다는 의미에서도 ‘하이프네이션’에 기대를 거는 시선들이 많았다.

 댄스 장르는 확실히 한국에서 정착되지 못한 게 이상한 장르다. 일단 비교적 제작비가 싸게 먹히고, 기술적 요소의 비중이 크지 않아 할리우드의 독점 장르라 보기 힘들었다. 우리가 만들어도 충분히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또한 이미 출연 인력도 수년 전부터 구비돼있는 상태다. 지금 브라운관은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들로 넘쳐나고, 전문적인 비보이들도 세계 대회를 연거푸 제패하고 있다.

 대중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대박을 터뜨린 뒤 아예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로서 댄스 장르에 대한 애착도 할리우드 영화를 중심으로 점점 깊어지고 있다. 2006년 개봉된 ‘스텝업’이 41만 관객을 모은데 이어, 2008년 개봉된 그 속편은 전편의 배 이상인 105만여 명을 끌어들였다. 2차 시장과 불법다운로드 시장에서는 그 외 제대로 개봉되지 못한 댄스 영화들이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듯 여러 호조건이 겹겹이 쌓여있는데도 대체 왜 댄스 장르는 국내에서 뿌리를 내릴 수 없었을까.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첫 단추’가 안 좋았다. 어디선가 국내 댄스영화 효시는 1956년작 ‘자유부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1999년작 ‘댄스 댄스’로 봐야한다. 1990년대 후반 1차 아이돌 붐을 타고 실험적으로 기획된 영화다. 그러나 ‘댄스 댄스’는 사실상 댄스 영화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황인영, 주진모 등 주연급들 중에선 제대로 된 댄스를 보여준 이가 하나도 없었다. 안무나 댄스 구성도 엉망이었고, 영화 자체도 어정쩡하게 나왔다. 거기다 사회 분위기마저 아직 길거리 댄스 등이 정착되지 않은 때라 전문적 춤꾼들 이야기는 낯설게 다가왔다. 이런 이유들 탓에 ‘댄스 댄스’는 ‘당연히’ 흥행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후 댄스영화는 ‘뚜렷한 실패 사례가 있는’ 장르로 낙인 찍혀 버렸다.

 2004년 이성재, 박솔미 주연 ‘바람의 전설’이 일본영화 ‘쉘 위 댄스’의 성공에 영향을 받은 듯 사교댄스를 소재로 등장했으나, 사실상 댄스 장르 내에서 주류도 아니거니와 워낙 엉뚱한 콘셉트 탓에 다시금 실패를 맞이했다. 댄스 장르에 대한 인상은 더더욱 나빠졌다. 이듬해 같은 사교댄스 소재로 ‘댄서의 순정’이 219만7555명을 끌어 모으는 기염을 토하긴 했으나, 상당부분 ‘문근영 신드롬’의 산물로만 인식됐을 뿐 장르 자체의 가능성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영화의 대한 평가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게 한국 댄스 장르 영화의 전부다. 2002년작 ‘해적, 디스코왕 되다’ 같은 영화도 댄스 장르로 본다면 몇몇 더 추가될 수 있겠지만, 어찌됐건 시장에선 그렇게 인식하고 있지 않으니 결론은 여전히 같다. 실패 사례 둘과 문근영 신드롬 히트작 하나다. 투자 환경이 얼어붙어 모험을 꺼리는 현 시장분위기에서는 좀처럼 시도할 수 없는 장르가 돼버린 셈이다.

 또 다른 두 번째 원인은 캐스팅에서의 문제다. 근래 한국 영화계가 댄스 장르의 가능성을 아예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몇몇 기획들이 존재하긴 했다. 그러나 대부분 지지부진한 진행과정을 겪고 있다. ‘하이프네이션’과 비슷한 도그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실험되지 못한 장르이므로 안전장치에 속하는 ‘아이돌 캐스팅’을 전제로 삼아야만 한다는 도그마다. 아이돌은 이미 댄스 실력을 갖춘 ‘준비된 인력’이라는 강점도 있다.

 물론 아이돌을 캐스팅한다는 개념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캐스팅 자체가 까다롭다는 게 문제다. 특히 한류 효과 등을 감안해 아시아 지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 스타를 캐스팅하려면 적어도 1년 이상의 조율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를 전제로 두다보면 캐스팅 확정은 계속 밀려나게 되고, 그러다 마침내 ‘표류하는 프로젝트’로 굳어지게 된다. 그러면 더 인식이 안 좋아져 투자는 난항에 빠지기 쉽다.
결국 현 시점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는 한국 댄스영화의 개척 상황은, 위 두 가지 문제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벌어진 현상으로 봐야한다. 장르 자체에 대한 인식 저하와 그로 인해 벌어진 캐스팅의 문제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그 해결방안 역시 위 두 가지 문제들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잡을 필요가 있다. 댄스 장르에 있어 불안감을 느끼는 투자자들을 어떻게 설득시키며, 또 캐스팅을 어떤 식으로 해야 제작진행에 있어 부담을 더는지에 대해 전향적인 답을 내놓으면 된다. 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댄스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있겠지만, 결국 댄스영화는 댄스 장면을 파는 것이긴 해도 댄스가 모든 것의 중심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드라마적 요소가 탄탄하게 받쳐줘야 한다. ‘스텝업’ 등 과격한 댄스 중심 할리우드 영화들이 히트하는 통에 일종의 착시 현상이 일어났을 뿐, 기존 할리우드 댄스영화 히트작들은 대부분 이 점을 잊지 않았다.

 할리우드 댄스 장르를 뮤지컬에서 사운드트랙 댄스영화로 이동시킨 장본인 ‘토요일 밤의 열기’는 닉 콘의 르포 기사를 바탕으로 한 브루클린 이태리계 청년들의 군상극이었다. 사회상을 정확히 포착한 노먼 웩슬러의 각본은 미국 극작가협회상 후보로까지 올랐다. 그밖에 ‘플래시댄스’, ‘더티 댄싱’ 등도 청춘영화 장르로서 그런대로 탄탄한 구성을 보여줬고, 21세기 들어 등장한 ‘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 ‘허니’ 등도 마찬가지로 드라마적 구성에 중점을 뒀다. 그것도 인종편견, 종교갈등, 보수적 가치관과의 충돌 등 진지한 소재들을 주로 다뤘다.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에 댄스만 덧붙인 형태에 가깝다.

 한 마디로, 댄스영화는 청춘영화의 한 갈래로서 드라마적 강점을 지니고 있어야 투자자들을 이해시키기 쉽다는 것이다. 심지어 댄스가 빠져도 청춘영화로서 시장에서 기능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그리고 청춘영화는 늘 시장 가능성을 증명해온 장르다. ‘늑대의 유혹’, ‘어린 신부’, 심지어 섹스코미디 ‘색즉시공’에 이르기까지 성공작들이 워낙 많다. 여기에 ‘댄스’만 하나 더 붙인 형태가 돼야한다.

 다음으로, 절대 아이돌 캐스팅은 금물이다. 드라마적 구성이 중심이 되면 아이돌 캐스팅은 당연히 영화적 완성도의 적이 된다. “가수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편이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는 도움이 된다”며 한 번도 노래해본 적 없는 조니 뎁을 ‘스위니 토드’에 캐스팅,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만든 감독 팀 버튼의 코멘트에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댄스 장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보는 것은 편집과 촬영, 녹음, 음악이 버무려진 ‘영화’이지, 통으로 댄스 실력을 구경하는 무대공연이 아니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제대로 춤을 춰본 적도 없는 존 트라볼타를 캐스팅, 9개월 동안 하루 3시간씩 디스코를 가르친 뒤 제작에 들어갔다. 거의 최초로 동원된 스테디캠 샷과 편집 기술에 의해 존 트라볼타의 디스코는 수준급으로 비춰졌고, 거기에 연기력까지 겸비돼 그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다. ‘스텝업’의 채닝 테이텀도 쿵푸 등 격투기와 스포츠에 능한 배우였을 뿐 춤에 능하진 않았다. 오직 촬영 전 연습을 통해서만 익혀 배역에 임했다. 각종 무대장치와 촬영, 편집에 의해 굉장한 프로페셔널로 비쳐졌을 뿐이다. ‘풋루즈’의 케빈 베이컨은 아크로바트에 가까운 댄스 연마 장면들 중 상당수를 아예 대역에게 맡겼다. 그래도 여전히 티도 안 나고 볼만 했다.

 이런 식이면 당연히 캐스팅의 폭이 넓어진다. 아이돌 스타의 까다로운 조건에 맞출 필요가 없어진다. 보다 면밀한 상업적 계산으로 청춘스타 한 명을 전략적으로 띄울 수 있게 돼 오히려 안정감 있는 캐스팅이 나올 수 있다.

 한편 이 같은 ‘댄스 문외한’ 캐스팅은 영화 속 캐릭터의 분투를 더 실감나게 연출하기도 한다. 1980년대 브레이크댄스 열풍 이후 등장한 할리우드 댄스영화들은 대부분 ‘베스트 키드’적 요소를 팔았다. 댄스에 크게 능하지 않은 인물이 마치 쿵푸를 연마하듯 댄스를 연마해 큰 목표를 이루는 식이다. 따라서 댄스에 능하지 않음을 익히 인지하고 있는 청춘스타가 영화 속에서 점차 성장해가는 모습을 연출하는 게 훨씬 설득력 있는 캐스팅이 된다. 반대로 댄스에 능하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는 아이돌 스타가 처음에는 댄스를 못하는 척하다가 점차 자신의 본래 기량을 드러내는 식이면 지루함만 남게 된다.

 물론 이처럼 장르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시키고 캐스팅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다 해도 댄스영화 한 편을 제대로 만들어내는 데는 여러 걸림돌이 있을 수 있다. 어찌됐건 처음 시도해보는 장르라는 건 많건 적건 그런 부담감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댄스영화는 한 번쯤 모험을 걸어볼 만한 장르가 맞다.

 전형적인 중급영화 장르이며, 중박으로 치고 빠지는 안정적 시장 구조를 만들어내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중급영화 장르가 현재 공포 장르와 최루성 멜로 장르밖에 없는 현 시장상황이라면 더더욱 댄스영화의 시동에 박차를 가해야할 필요가 있다. 먼저 ‘하이프네이션’부터 좀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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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망하는 댄스영화, 재범 '하이프네이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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