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0주년]기억해야 할 전쟁사⑭ '초산 전투'

기사등록 2010/07/04 13:59:30

최종수정 2017/01/11 12:07:38

【서울=뉴시스】정리 / 이인준 기자

 14. 초산 전투 (1950년 10월 24일 ~ 26일) : 압록강을 향한 마지막 진격

 '압록강이 먼저냐, 두만강이 먼저냐'

 유엔군은 청천강을 넘고 있었다. 이에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1950년 10월24일 북진한계선을 없애고 전부대에 북진명령을 하달했다.  

 국군과 유엔군의 각 부대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협조보다는 욕심이 앞섰다. 어떤 부대가 먼저 국경선에 태극기를 꽂는가.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는 경쟁적으로 마냥 북을 향에 치달았다.

 게다가 동부전선에 상륙한 미 제10군단과 서부전선의 미 제8군이 서로 전선을 연결하기로 했던 계획이 취소됐다. 갈수록 각 부대간의 거리는 점차 벌어졌고, 서로 통신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됐다.

 압록강을 향한 진격은 이미 이런 어려움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국군 제2군단 제6사단 제7연대는 24일 오전 7시 초산으로 나아갔다. 7연대를 막을 수 있는 병력이 북한군에게는 없었다. 북한군은 주요 도로에 집중해 병력을 편성하고 있었다. 제7연대가 진군로로 선택한 산악지역에 배치할 만한 병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진격은 계속됐다. 그러던 중 7연대는 북한군 포로로부터 "중공군 1개 사단이 멀지 않은 곳에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6사단에서는 전황을 낙관하고 있었다. 게다가 중공군은 개입할 처지도, 시기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설령 개입한다더라도 그동안 승전보를 올려온 국군에게 큰 위협은 되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눈 앞의 압록강을 두고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제7연대는 26일 압록강을 마주하고 마지막 진격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10월에 내린 첫 눈으로 산과 들이 온통 하얬다. 당시 초산 일대에는 연대 규모의 북한군이 모여들고 있었다.

 초반은 격전이었다. 7연대 1대대는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북한군에게는 말 그대로 배수진이었으나 승리로 이끌어내진 못했다. 7연대는 1시간여에 걸친 교전 끝에 북한군을 퇴각시켰다. 더 이상 국군을 막을 수 있는 북한 병력은 없었다. 시가지는 텅 비어 있었다. 1대대는 지체하지 않고 압록강을 향해 6㎞를 더 행군했다.

 "압록강이다!"

 26일 오후 2시15분. 국경선 앙토동 고개마루에서 1대대는 환호성을 터트렸다. 전쟁발발 4개월, 낙동강에서 반격을 시작한 지 40여 일만의 일이었다. 강변에 태극기가 세워졌다. 병사들은 수통에 압록강의 푸른 물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1대대는 먼저 압록강 강변에 설치된 뗏목나루를 파괴했다. 이후 1대대 1중대에 경계임무를 맡기고 주력부대는 초산으로 일단 철수했다.

 장병들은 가장 먼저 국경선에 도착했다는 자부심과 긍지로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온정리를 통해 넘어온 중공군에게 제6사단 제1연대가 패배하면서 7연대는 초산에 고립된다.

 중공군의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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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60주년]기억해야 할 전쟁사⑭ '초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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