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야기]이스라엘 최고의 스파이-엘리 코헨

기사등록 2010/05/12 09:00:00

최종수정 2017/01/11 11:49:53

【서울=뉴시스】이일호 박사(이스라엘연구소 소장) =  엘리야후 코헨(Eliahu Chohen)은 1965년 5월 18일 복수심에 불타 조롱하는 1만 명이 넘는 시리아 군중들 앞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41세로 생을 마감한 그의 죽음의 장면을 이스라엘의 가족들과 온 이스라엘 국민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았지만 아무도 그를 도울 수가 없었다.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히브리어 성경의 최고(最古) 사본이었던 알렙포(Aleppo codex) 사본이 나왔던 시리아의 알렙포에서 1914년 엘리의 아버지 사울(Shaul)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이민을 갔다. 1924년 그곳에서 엘리는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 열기가 점차 강해지던 이집트 무슬림과 1954년까지 이집트를 위임 통치하던 영국으로부터 이유 없는 차별을 받으며 이중으로 따돌림을 받았다. 그 당시 젊은 유대인들 사이에 시온주의 운동이 탄력을 받고 있었다. 유대인 국가를 세우고 두려움과 부끄럼 없이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을 만끽할 수 있는 땅을 찾고자 혈안이었다. 당시 이집트 법에 따르면 모든 남자는 군대에 가야만 했다. 엘리는 이집트 국가에 대한 충성을 거절하고 대신 카이로 대학에서 전기공학 학사를 취득하려고 입학했다. 대학에서 무슬림 형제단(the Muslim Brotherhood)에게 핍박을 받게 되자 학업을 중도포기하고 고학의 길에 들어섰다.  엘리는 하가나(Haganah 1920년-1948년까지 이스라엘에서 활약하던 지하 군사조직으로 나중에 이스라엘 방위군[국방부]이 됐다)에 참여했다. 가족들은 이스라엘로 이민 귀국했지만 엘리는 이집트에 남아서 암호명 ‘수산나’로 이집트 안에서 암약하는 스파이 조직에 가담하며 이집트와 미국, 영국, 다른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를 방해하기 위한 정보조직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1952년 이집트에서는 가말 아브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후에 이집트 대통령이 됨)가 이끄는 자유 장교단 운동(free Officers Movement)으로 혁명이 일어나 파룩(Farouk) 왕정이 무너지고 말았다. 엘리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스파이로 발각돼 1956년 추방됐다.  1959년 30세의 엘리는 25세의 나디아 마그레드와 텔아비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는 얼마 후 예쁜 딸 소피에를 얻었다. 이듬해 엘리 코헨은 이스라엘 해외 정보국 모사드에 채용돼 새 사람으로 바뀌었다. 남미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는 성공한 부유한 시리아 교포로 비행기 조종사 훈련을 받고 있는 이름은 카멜 아민 사베트(Kamel Amin Sa'bet)가 됐다. 그는 어린 시절 알렙포 악센트의 아랍어에 익숙했고 무슨 역이든 소화하는 재능을 소유했다. 1961년과 1962년에 시리아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카멜은 바트당에 가담했는데 이 정당이 점차 권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는 시리아 국가 혁명위원회 위원으로 그리고 다마스커스 라디오 방송 후원자가 됐다. 그는 당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그 결과 시리아가 요단강 상류를 바꿈으로 이스라엘의 물 공급을 막으려는 계획을 알아냈다. 그는 또한 게릴라전을 통해 이스라엘 북쪽을 강타하려던 팔레스타인 민족 해방운동의 세부 계획 정보를 이스라엘에 제공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군은 단, 다프나, 세알 야슈브를 파괴하려던 시리아를 막고 먼저 시리아내 거점을 폭격했다.  1964년 그는 바트당의 신설된 최고위직에 올랐다. 골란고원의 전략적 요새들을 촬영한 사진을 손에 넣었다. 이 정보를 비밀리에 이스라엘로 보내어 마침내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도록 만들었다. 난공불락이라고 하던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이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엘리 코헨 덕분이었다.    1965년 1월 시리아 정보부는 전파송신 중인 그를 집에서 체포했다. 그를 체포한 정보부장 아흐메드 수에다니 대령은 그의 네머시스(nemesis)였다. 시리아는 소련의 최고 군사보안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최신 감청시설을 동원해 시리아 수도에서 송신되는 전파의 발신지 추적을 한 결과 엘리의 집이라는 사실을 알아냄으로 시리아 정부의 특급정보를 이스라엘에 흘리는 스파이가 누군지 알 수 있게 됐다. 이른 새벽급습에 체포됐고 변호인 없이 심문과 고문을 받았다. 체포 당시 카멜 아민 사베트는 시리아 대통령을 승계할 수 있는 세 번째 직(국방부 차관)에 있었다. 세계지도자들, 부호가들, 이스라엘 정부, 교황 등 모든 사람들이 그를 위해 중재에 나섰지만 6시간 동안 목매달려 교수형을 당하고 말았다.  시리아는 1948년부터 1967년까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북부 정착촌을 괴롭혔다. 그렇지만 골란고원의 요새는 특급 비밀이었고 알 수가 없었다. 엘리는 시리아 군이 비밀리에 설치하는 요새마다 위장과 땡볕에 있는 군인들을 위해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자고 제안해 의심 받지 않고 관철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군이 시리아 군의 비밀요새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리는 표시가 되게 했다.  그가 보낸 정보 때문에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은 이틀 만에 골란고원을 정복할 수 있었다. 골란고원은 군사적 중요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물 공급의 30 %를 제공하고 있는 수자원의 보고다. 세 곳의 요단강 근원지인 단, 바니아스, 하츠바니가 다 골란고원에서 발원한다. 늦은 겨울과 봄 사이에 백두산 보다 더 높은 헤르몬 산의 겨울눈이 녹으면 엄청난 양의 물은 골란고원 지역을 아름다운 신록 그 자체가 되게 하고 훌다와 요단계곡 아래로 흘러내린다. 그 물이 갈릴리 바다와 남쪽 사해까지 흐르는 것이다. 담수호인 갈릴리바다의 물을 1960년대 관개 공사를 통해 이스라엘 남부와 전국을 파이프로 공급하게 된 것이다.     엘리의 유해는 아직 시리아에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제는 평화만 보장된다면 골란고원을 내어주겠다며 시리아를 향해 손짓을 하며 엘리의 유해송환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황장엽씨의 망명으로 우리가 얻은 것도 계산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국가의 영토와 북한 동포들에게 자유를 되돌려 줄 대한민국의 위대한 스파이 엘리 코헨이 나올 수는 없을까.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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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이스라엘 최고의 스파이-엘리 코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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