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동대문서 아파트서 사망 열흘만 발견
2021년에는 도봉 노부부, 2020년 정신질환 모녀
성인 20%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움 요청 無
'복지 거부자'에 대한 심층 연구 및 대책 필요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뇌병변 장애인 남성과 70대 여성이 뒤늦게 사망한 채 발견된 가운데 이들이 자발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서비스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을 강화하는 등 이른바 '자발적 고립가구'들을 위한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13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70대 여성과 40대 뇌병변 장애인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둘은 이모와 조카 사이로 숨진 뒤 열흘가량 지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나 극단 선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이모인 박모(76)씨가 노환으로 숨진 뒤 돌봐주는 사람을 잃은 조카 윤모(41)씨가 뒤따라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 판정을 받은 윤씨는 부친에 이어 2년 전 모친이 세상을 떠난 후 이모인 박씨와 단둘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보훈 대상자로 매월 보상금을 수령했으며, 주택 소유자였다고 한다. 박씨는 80만원가량의 기초생활수급 지원금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들은 지자체의 추가적인 복지 서비스는 거부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지역 주민센터에서도 두 사람이 사는 곳을 종종 살폈지만, 방문 자체를 거부해 어쩔 수 없었다"며 "지난 2021년부터 지자체에서 8번가량 찾아가 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을 소개하거나 청소를 해주는 등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40대 남성 장애인을 70대 여성 노인이 혼자서 돌보는 등 외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이들이 스스로 복지 수혜를 거부하며 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외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인데도 복지 서비스를 거부하다 사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 2021년 7월엔 서울 도봉구에서 복지 지원을 거부한 기초생활수급자 노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남편은 알코올 중독, 아내는 조현병을 앓고 있어 외부 소통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남편의 경우 과거 당뇨 합병증으로 피부 괴사가 진행되던 중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부부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 치료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0년 9월 경남 창원의 한 원룸에서 정신질환 증세가 있던 20대 딸과 50대 엄마가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들도 엄마가 돌연사한 뒤 딸이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모녀는 기초생활수급 지원금 수급을 자발적으로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11월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지원체계 개선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2022.11.24. dahora83@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2/11/24/NISI20221124_0019503679_web.jpg?rnd=20221124120522)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11월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지원체계 개선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2022.11.24. [email protected]
정세정·김기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사회배제를 보는 또 다른 시각 : 도움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외부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도 주변의 도움을 원치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떤 어려움(갑자기 큰 돈이 필요하거나 우울증에 걸리는 등 상황)에 부닥쳤을 때 도움받을 곳이 있어도 원치 않는 자발적 배제집단이 8% 안팎, 도움받을 곳도 없고 도움을 원치도 않는 고립집단이 12% 안팎을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조사 대상자 중 20% 정도가 본인이 외부 도움을 받으려는 의사가 없다고 표현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자발적으로 복지 서비스를 거부하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사회 복지망에 편입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 주민이 고립된 이들을 찾아가거나 전화를 거는 등 사회관계망을 강화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강제로 복지 수혜를 받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관계망에 복지 거부자가 거부감 없이 자연스레 편입될 수 있게 하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서비스 연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고서 역시 "급여의 제공이 곧 욕구의 충족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복지국가의 공적 네트워크 확충만으로는 이들을 사회에 연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주변의 도움을 거부하는 이들은 상호부조 및 연대의 가능성도 작아질 수밖에 없다"며 공적 네트워크를 넘어서는 긴밀한 사회관계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복지 서비스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연구와 사례 발굴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고서는 "지금까지 사회배제와 관계된 연구 또는 정책은 도움이나 지원이 필요한 집단이 누구인가에 초점이 맞춰 전개됐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가 도움받기를 원하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며 "이들 집단의 성격 및 현황, 정책적 수요에 대한 추가적이고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도 "복지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1인 가구에 대한 지원이 많았지만, 이번 사건은 1인 가구가 아니라 노인-장애인 가구였다"며 "정책이 노인-장애인, 노인-영아 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 따라 사례 발굴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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