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군의 헤르손 탈환의 일등 공신은 빨치산

기사등록 2022/12/15 12:10:22

최종수정 2022/12/15 12:24:44

이들이 러군 동향 상세히 파악해 전달하면

우크라군이 정밀 공격해 큰 피해 입히고

러군의 우크라 공격 계획 탐지해 사전 통지

[헤르손=AP/뉴시스]지난 3월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헤르손에서 러시아군의 점령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한 헤르손 지역 주민들. 2022.10.19.
[헤르손=AP/뉴시스]지난 3월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헤르손에서 러시아군의 점령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한 헤르손 지역 주민들. 2022.10.19.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또 하나의 비밀무기가 러시아군 동향 정보를 전하는 러시아군 점령지 내 주민들이라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남부 헤르손을 점령한 러시아군이 야전병원, 병영, 식량창고로 사용하는 대형 전자용품점을 지난 여름 우크라이나군이 공격해 초토화했다.

이 공격이 있기 몇 시간 전 우크라이나 활동가들이 위치를 알리는 사진과 좌표를 암호화된 텔레그램 채널로 우크라이나군에 보냈다. 이 정보가 공격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군 당국자들은 헤르손의 빨치산들이 매일 전해오는 러시아군 동향이 러시아군이 헤르손에서 퇴각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한다.

빨치산들은 도로상황을 살피고 주요 교차로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영상을 점검하고 가축몰이하는 것으로 위장해 들판을 살폈다.

우크라이나 국가안전보장위원회 올렉시 다닐로우 의장은 헤르손 등지의 빨치산들이 러시아 점령지 탈환을 돕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도네츠크, 루한스크 등 모든 곳이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우리 편 사람이 없는 곳은 없다”고 했다.

헤르손 텔레그램 그룹이라는 빨치산 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러시아가 침공한 직후다. 3월초 러시아군 탱크, 트럭 장갑차가 Z 표식을 그린 채 헤르손에 들이닥치자 이를 패러디해 "러지안은 물러가라(Ruzzian Go Home)"는 이름을 지었다. 20명 가량이 참여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통신망을 차단하자 러시아 SIM 카드와 가상사설망(VPN)을 사용해 우회했다. 이들이 보낸 영상과 문자를 이 단체를 관리하는 우크라이나군 정보장교들이 확인해 우크라이나군 총사령부로 보냈고 총사령부가 타격 명령을 내렸다.

헤르손 외곽 크로노바이우카의 아파트의 한 주민은 하루 종일 창밖 도로 상황을 살핀다. 뭔가 특이한 것이 나타나면 휴대폰으로 확대 촬영한다. 그는 “전투는 할 줄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도울 순 있다”고 했다.

전쟁 발발 3일 뒤 IT 기술자인 올렉산드르가 헤르손 외곽 공항 근처 도로에 군 차량이 있는 모습의 사진을 동료들에게서 받아 텔레그램 그룹에 올렸다. 다음날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발레리 잘루즈니가 공항 근처 차량들에 십자선 표시를 한 영공 동영상을 올렸다. 2초 뒤 차량들이 폭발하면서 연기와 화염에 휩싸이는 장면이 나왔다. 잘루즈니 사령관은 이 동영상에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이들 빨치산을 관리하는 정보장교 안드레이는 “빨치산들이 러시아 탱크 이동, 부대 저녁식사, 파티장소, 빨래터 등 모든 정보를 우리에게 보낸다. 이들 도움 없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이라고 했다.

주요 타격 정보가 입수되면 타격하기까지 대개 15분 정도가 걸리지만 러시아 방공무기 등 최우선 목표는 그보다 더 빨리 공격한다. 안드레이는 사진과 동영상에 더해 좌표 정보가 있을 경우 드론 등으로 타격 대상임을 식별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자동차 수리 기술자 막심은 자신이 고쳐준 러시아군 장교의 차를 타고 크름반도를 세 번 다녀왔다. 이 과정에서 소중한 정보를 수집했다. 긴장하지 않으려 진정제를 먹어야 할 정도였다. 세 번째로 크름반도의 심페로폴에 갔을 때 러시아군 장교 3명과 술을 마셨다. 이 자리에서 들은 대화 내용을 상세하게 우크라이나군에 전했다. 러시아군이 대부분 헤르손 시내가 아닌 헤르손 남쪽 타라시우카에 주로 머문다는 내용 등이었다.

정보장교 안드레이는 막심이 여행에 오르기 전 필요한 것을 요구했다면서 그의 정보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웨딩 퍼포머 이호르 코텔레비치는 헤르손에서 러시아 임명 경찰서장 차에 폭약을 심었고 “경찰이 도주하는 바람에 시를 장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 정보국(SBU) 정보책임자 바실 말륙은 러시아 점령지 곳곳에서 “폭발이 발생한다. 지금은 누가 어디서 어떤 폭발을 일으켰는지 밝힐 수 없지만 언젠가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텔레그램 그룹 참가자들은 일원 중 누군가 러시아에 체포되면 기록을 삭제하고 새로 그룹을 만든다. 참가자들은 매일 아침 자신이 체포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동영상을 올려야 한다. 동영상을 올리지 않은 사람은 즉시 그룹에서 제외된다.

한 참가자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됐다가 며칠 뒤 다른 참가자에게 직접 자신의 동영상을 보내 다시 텔레그램 그룹에 올려 달라고 요청했다. 동영상에서 그는 물 잔이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고 얼굴이 부어 있었다. 등 뒤로는 베이지색 벽이 있고 한 쪽 구석에 철문이 보였다. 할머니 집에 오면서 휴대폰을 놓고 왔다고 했다.

IT 기술자 올렉산드르는 그가 “감방에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면서 그를 텔레그램 그룹에 복귀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10일 뒤 FSB가 헤르손에 있는 올렉산드르 부모의 집을 수색했다. 이후 올렉산드르는 가짜 신분증을 만들고 친구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부인과 딸은 지난 4월 프랑스로 갔다.

한 참가자는 러시아 통신을 포착해 소음을 제거하는 솜씨를 발휘했다. 진격하는 우크라이나군을 타격하려는 러시아군 작전 정보와 러시아군 포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우크라이나군에 넘겼다.

그가 포착한 러시아군 통신 내용 중에는 우크라이나군 위치를 알리는 좌표 정보와 함께 러시아군 병사가 “2~3분 뒤에 발사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포격을 당하면서 우리 위치를 우크라이나군이 어떻게 알았냐고 놀라는 내용도 있었다. 9월에는 보급 부족과 연료 부족으로 차가 고장났다고 불평하는 내용, 서로 욕하는 내용도 있었다. 결국 러시아군은 11월 중순 헤르손에서 철수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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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군의 헤르손 탈환의 일등 공신은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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