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 논란, 핵심은 실질문맹률 아니다?

기사등록 2022/09/03 04:00:00

최종수정 2022/09/03 06:02:41

"실질문맹률 지적은 침소봉대, 실질문맹률 8.7%밖에 안 된다"

문해력 문제 아닌 자연스러운 '언어 교체' 현상이라는 지적도

[서울=뉴시스] '심심한 사과' 논란 게시물 (사진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심심한 사과' 논란 게시물 (사진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

'심심한 사과' 논란에서 시작된 실질 문맹률 논쟁이 뜨겁다.

지난 20일 서울의 한 카페가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 것과 관련, "예약 과정 중 불편을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린다"는 공지를 트위터에 올리며 시작됐다.

일부 트위터 이용자는 해당 공지에 대해 "심심한 사과라니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 "앞으로 공지글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 올리는 게 어떨까" 등 '심심(甚深)하다'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한국의 실질 문맹률이 높아 젊은 세대의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지만 실정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질문맹률 75% 보도, 실제는 8.7%밖에 안 된다

지난 30일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실질문맹률을 지적하는 이들이 사용한 근거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질문맹률 75%는) 21년 전 조사를 이용한 침소봉대"라며 "현재의 실질문맹률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인용되는 실질문맹률 75%의 근거가 되는 자료는 2004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교육인적자원지표'다. 이는 문해력 단계를 1~5단계로 나눠 1단계는 문해력에 취약한 수준, 2단계는 단순 작업에는 대응할 수 있지만 새로운 직업 등을 학습하는데 문해능력이 부족한 수준으로 분류했다. 2001년 진행한 조사에서는 1단계가 38.0%, 2단계가 37.8%로 집계됐다. 이 둘을 합하면 약 75%가 된다.
[서울=뉴시스]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 자료 (사진=교육부 제공) 2022.09.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 자료 (사진=교육부 제공) 2022.09.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최근의 문해능력 조사에서는 수치상으로 큰 변화가 있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발표한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를 살펴보면 1단계 비율은 4.5%, 2단계 비율은 4.2%로 각각 나타났다. 4단계(일상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문해력을 갖춘 수준) 이상이 79.8%에 이른다.

신 교수는 "1~2단계를 실질문맹률이란 기준으로 하더라도 2020년 조사에선 8.7%밖에 되지 않는 것"이라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 자료 (사진=교육부 제공) 2022.09.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 자료 (사진=교육부 제공) 2022.09.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심심한 사과' 문해력 문제 아닌 "언어 교체"

이번 논란은 ‘심심(甚深)하다’를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의 의미가 아닌 동음이의어인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로 오해해서 발생한 일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어휘력이나 문해력 차원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최근 논란은 "언어교체 현상"이라는 것이다.

천 교수는 "'심심(甚深)'이라는 한자로 이뤄진 단어들이 잘 쓰이지 않는 상황에서 리터러시 체계가 무너진 것"이라며 "세대교체 등의 상황에서 이러한 충돌들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존에 한자어의 체계에서 교육받은 세대에 이어 한문보다 영어가 중요해진 시기 이후 교육을 받은 세대가 대두되며 '심심한 사과' 논란이 자연스럽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사용되는 영어식 표현인 '포스트코로나', '헤지펀드' 등을 예로 들며 "영어로 된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며 자연스럽게 '심심' 같은 표현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상어의 교체는 문학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불과 30년 전 소설인 박경리, 이문열 작가들의 작품 속 문장들에도 일상에서 쓰지 않는 단어들이 많다. 천 교수는 "50년대에 교육을 받았던 소설가의 작품에서도 지금은 어색한 표현이 발견된다"며 "언어 교체가 빠르게 이뤄지는 가운데 "심심한 사과'는 사소한 논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언어 교체 속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에서는 한자어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천 교수는 "한자에 대한 교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보수적인 접근"이라며 "'이보다 어려운 한자어로 된 개념어 학습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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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사과' 논란, 핵심은 실질문맹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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