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20주기…'국방부 테러' 생존자들 "살아남아 행복"

기사등록 2021/09/11 01:25:02

최종수정 2021/09/11 07:22:16

화상·수술…20년 후에도 남은 신체적 후유증

정신적 상흔도…비행기 소음에 '공황'

남은 상처 깊지만…"좋은 것이 나를 일으킨다"

[워싱턴=AP/뉴시스]지난 2001년 9월11일 미 국방부 청사가 화마와 연기로 뒤덮인 모습. 2021.09.11.
[워싱턴=AP/뉴시스]지난 2001년 9월11일 미 국방부 청사가 화마와 연기로 뒤덮인 모습. 2021.09.11.
[워싱턴=뉴시스]김난영 특파원 = 지난 2001년 9월11일 오전, 워싱턴DC 인근 국방부 건물(펜타곤)은 뉴욕에서 막 전달된 비극적인 소식에 어수선했다. 민항기 두 대가 뉴욕 경제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를 덮친 것이다.

그러나 충격은 뉴욕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날 오전 7시59분부터 8시42분까지 납치된 총 네 대의 민항기 중 한 대가 국방부 청사 서쪽으로 돌진했다. 청사 일부가 무너져 내렸고, 건물은 즉각 화염에 휩싸였다.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 등을 노린 동시다발적 9·11 테러의 공식 집계 사망자 수는 3000명에 육박한다. 이들 중 1800여 명이 국방부 공격으로 희생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오는 11일 테러 20주기를 앞두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사화했다.

전신 35% 화상…신체적 후유증 못지않은 정신적 상흔

이 사건 생존자 중 한 명인 존 예이츠(70)는 지난 1970년부터 1990년까지 육군으로 복무한 후 국방부 청사에서 일했다. 그는 테러 당시 상황을 '감각'으로 기억한다. WP는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채 공중으로 날아가던 것을 기억한다"라고 전했다.

테러 직후 화염에 휩싸인 국방부 청사에서 예이츠는 자신 몸에 닿은 모든 게 살갗을 태웠다고 회고했다. 보도에 따르면 예이츠는 당시 전신의 35%에 화상을 입었고, 탈출하던 순간 손가락의 피부가 늘어지고 있었다. 손과 팔에 심한 화상을 입은 그는 멀쩡한 곳의 피부를 이식해야 했다.

그러나 신체적 부상만큼 심각한 건 그에게 남은 정신적 상흔이었다. 예이츠는 병원 치료를 마친 뒤 민간 보안관리자로 국방부에 복귀했으나, 가끔 공황을 겪었다고 한다.

테러 이듬해인 2002년 사무실 인근을 지나는 제트기 소리에 공포를 느낀 게 한 예다. 예이츠는 제트기 소음이 너무 가깝게 들렸다고 회고하며 "단지 (소음이) 내 뒤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몸이 안 좋아졌다"라고 설명했다.

[워싱턴=AP/뉴시스]지난 2001년 9월11일 9·11 테러로 국방부 청사가 공격 받은 직후 한 직원이 흐느끼고 있다. 2021.09.11.
[워싱턴=AP/뉴시스]지난 2001년 9월11일 9·11 테러로 국방부 청사가 공격 받은 직후 한 직원이 흐느끼고 있다. 2021.09.11.
테러 발생 10년 후인 지난 2011년에는 사무실에서 일하던 도중 벽과 마루가 갑작스레 흔들리는 일이 있었다. 흔들림을 감지한 그는 즉각 동료들을 향해 "대피하라"라고 반복해 소리쳤다. 이후 그는 당시 흔들림이 테러가 아니라 드물게 발생하는 지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상으로 신체 절단도…39차례 수술받은 피해자도

역시 테러 당시 국방부 청사에 있었던 생존자 러티샤 훅은 '물'에 대한 기억을 인상 깊게 떠올린다. 당시 화염에 뒤덮인 국방부 건물에서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했고, 다급히 대피 중이었던 훅은 쏟아지는 물줄기 속에서 미끄러지며 분투했다고 한다.

고군분투 끝에 청사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그의 피부 45%는 심각한 화상에 뒤덮여 있었다. 왼쪽 신체 일부의 피부는 떨어져 나갔고, 왼쪽 손가락은 심한 부상으로 끝내 절단해야만 했다. 그는 여전히 다리가 부어오르고 피부 곳곳이 온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후유증을 겪는다.

퇴역 육군 중령이자 현재 텍사스 주상원의원인 브라이언 버드웰은 국방부 테러 여파로 총 39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충돌 당시 화장실에 있었던 그는 갑작스레 충격을 겪은 뒤 사위가 어두워졌다고 회상했다. 그 직후, 버드웰은 자신의 몸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탈출하려는 분투 끝에 쓰러졌는데, 당시 자신이 스프링클러에 깔렸던 것 같다고 전했다. 당시 자신이 죽으리라고 생각한 그는 응급 처치 중 결혼반지를 잘라내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배우자에게 조각난 반지를 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아들이 자신의 병실을 찾았을 때를 회고하며 "나는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라고 했다. 그는 아들을 본 후 마음으로 "좋습니다. 다 됐어요"라고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며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20년 후에도 상처는 꽤 깊다"라고 했다.

[시더그로브=AP/뉴시스]지난 9일 뉴저지 시더그로브 고등학교 학생들이 9·11 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로 미국 국기를 설치하는 모습. 2021.09.11.
[시더그로브=AP/뉴시스]지난 9일 뉴저지 시더그로브 고등학교 학생들이 9·11 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로 미국 국기를 설치하는 모습. 2021.09.11.

"살아있어서 행복"…상흔 극복하려는 피해자들

비록 작지 않은 정신적·신체적 상흔을 입었지만 피해자들은 당시의 고통을 극복하려 매 순간 노력하고 있다. 생존자 훅은 절단한 자신의 왼쪽 손을 얘기하며 "내가 오른손잡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신은 내 왼손을 가져간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웃는 것"이라고 했다. 또 "나는 좋은 부분을 기억한다"라며 "좋은 것들이 나를 일으킨다. 나는 나쁜 것으로부터 멀어지려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9·11 테러 발생 몇 년 후 화상센터 환자들을 포함해 약 150명을 초청해 생존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

테러로 인한 부상 치료 후 국방부로 복귀한 예이츠는 자신의 복귀가 테러리스트에게 굴복하지 않고 테러로 사망한 동료들을 기리는 방법 중 하나라고 여겼다. 그는 아울러 매년 9·11 추모 행사에 참석하며, 지난 2017년 9월11일에는 그간 차마 가지 못했던 동료들의 묘역도 찾았다고 한다.

역시 9·11 테러 당시 국방부에 있다가 신체 70%에 화상을 입은 루이스 로저스는 추모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올해로 69세를 맞은 그는 그럼에도 WP에 "삶은 좋은 것이다. 내가 여기 있을 수 있어 기쁘다"라고 했다. 그는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이후 힘을 얻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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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20주기…'국방부 테러' 생존자들 "살아남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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