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미국 대통령의 우리 국회 연설 내용 보니...

기사등록 2017/11/07 06:10:00

최종수정 2017/11/08 10:34:02

【서울=뉴시스】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대통령이 1960년 6월20일 우리 국회의사당에서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연설하고 있는 모습. 국회기록보존소는 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앞두고 역대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 사례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사진=국회기록보존소 캡처) 2017.11.06.
【서울=뉴시스】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대통령이 1960년 6월20일 우리 국회의사당에서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연설하고 있는 모습. 국회기록보존소는 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앞두고 역대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 사례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사진=국회기록보존소 캡처) 2017.11.06.
아이젠하워부터 클린턴까지…6명 美대통령 국회 연설
 트럼프,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체제 강조할 듯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7일 오후 한국을 국빈 방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튿날인 8일 국회의사당 연설을 앞두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 사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이번 아시아 순방국 가운데 유일한 것으로 그 상징성이 더해지면서 트럼프가 던질 메시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국회 연설을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소개하는 자리로 활용해 왔다.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과 한국 입법부의 심장인 국회에서 연설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징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미 동맹의 굳건함과 북핵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한·미·일의 공조체계 중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기존의 '아시아·태평양'에서 벗어나 '인도·태평양'이라는 표현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대(對) 아시아 전략을 밝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허버트 맥마스터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국회 연설과 관련해 설명하면서 "유익하고 호혜적이며 강력한 한·미 동맹을 평가한 뒤 북핵 위협에 맞서 어느 때보다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국회 연설은 1994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이후 24년만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는 7번째로 국회 연설을 하게 됐다.
 
 보통의 경우 국빈 방문시 예우차원에서 국회 연설의 기회를 부여하곤 했다. 그러나 방문 성격과 국회 연설이 반드시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1994년 국회 연설은 공식실무방문 기간에 이뤄졌다.

 미국 대통령의 첫 국회 연설은 1960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했다. 1992년 1월 마지막으로 국빈 방한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두 차례(1989·1992년) 국회연설을 했다. 이외에도 린든 존슨(1966년), 로널드 레이건(1983년) 전 대통령이 국회에 섰다.

 국회기록보존소가 지난 2일 공개한 역대 미국 대통령의 국회연설에 따르면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6·25전쟁의 상흔이 가시기도 전인 1960년 6월20일 미국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섰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공산주의의 배척과 자유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대한 방위공약의 성실한 이행과 함께 전후 재건을 위한 한국 정부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두 번째 국회 연설자인 존슨 대통령은 그로부터 6년 뒤인 1966년 11월2일 당시 이효상 국회의장 체제에서 본회의장에 섰다. 존슨 대통령은 6·25전쟁이 북한에 의해 발생한 것임을 분명히 하며 미군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베트남 전쟁과 비교하며 공산주의 이념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이념적 메시지를 발신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11월12일 체결 30주년을 맞이한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중요성, 국제무역에서 거론되는 보호주의 압력의 배척을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태평양 지역의 안보공동체 구축 등을 역설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1989년 2월27일 국회 연설에서 앞선 대통령의 연설의 바탕 위에 동반자로서의 한·미 동맹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힘의 우위를 통한 평화 유지라는 안보정책의 노선을 밝히면서도 대화를 통해 북한을 포함한 전쟁억지를 위해 한미 양국이 노력하자는 메시지도 발신했었다.

 부시 대통령은 3년 뒤인 1992년 1월6일 연설에서 남북 공동비핵화선언을 상기하면서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허용을 촉구했다. 주한미군 감축계획의 보류와 함께 북한의 태도에 따라 군사적 행동 가능성도 시사했다. 굳건한 한·미 동맹의 발전과 국제무역기구 통제 아래서의 자유무역주의 강화 등을 강조했다.

 마지막 국회 연설자였던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7월10일 연설에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 상황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언급하면서 신태평양공동체 구축, 대량파괴무기 확산 금지, 새 대화체제 구축 등을 강조했다. 북한으로 하여금 IAEA 사찰 촉구 등 핵확산 방지를 위한 의무이행도 함께 촉구했다. 북한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중국의 역할론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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