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가장 낮은 곳을 응시했던 '광부 화가' 황재형 화백 별세

기사등록 2026/02/27 22:37:39 최종수정 2026/02/27 22:40:26

1982년부터 태백에서 작품활동

황재형 화백이 2017년 태백 화실에서 머리카락과 흑연을 활용한 독창적인 기법의 광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태백=뉴시스]홍춘봉 기자 =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거목이자 탄광촌 노동자들의 삶을 화폭에 담아온 황재형 화백이 27일 새벽, 투병 끝에 향년 74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 1980년대 민중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며 한국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대학 시절 결성한 동인 '임술년' 활동을 통해 선보인 '황지 330'은 그의 예술적 좌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그는 전업 작가로서의 안락한 길 대신, 1982년 강원도 태백으로 향해 직접 막장 광부로 일하며 노동 현장의 애환을 몸소 체험했다.

당시 그에게는 '빨갱이 화가'라는 세간의 오해와 낙인이 따라붙기도 했다. 그러나 고인은 그 모든 편견을 뒤로한 채, 폐광촌의 풍경과 탄광 노동자들의 거친 삶을 묵묵히 기록했다.

2016년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 직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도시재생사업은 관료적 사고가 아닌 주민의 삶과 역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며, 예술이 지역사회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인의 예술 세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견고해졌다. 2010년 이후에는 머리카락과 흑연 등 독창적인 재료를 활용해 노동의 물성과 현실의 무게를 캔버스에 구현했다. 이러한 성취는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40년 화업을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회천(回天)'을 통해 한국 현대 미술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로 자리매김했다.
황재형 화백이 2017년 10월 그의 화실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가나아트는 추모를 통해 "고인은 시대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치열한 눈으로 현실을 응시했다"며 "한 사람의 삶이 곧 한 시대의 초상이 될 수 있음을 평생에 걸쳐 증명해 보였다"고 고인을 기렸다.

유족으로는 부인 모진명 씨와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1호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3월 1일 오전 7시 40분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casinohon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