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무비스님 전집―화중연화(火中蓮華)' 출간
'인불사상' 등 평생 공부한 내용 25권으로 엮어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부산=뉴시스] "불식(不息)'은 ‘내가 지금 누군지 모른다. 낮인지 밤인지 모른다. 자는지 꿈꾸는지 모른다. 궁극에는 내가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는 뜻의 대단한 화두죠."
지난 12일 부산 범어사에 평생 공부에 정진한, 팔순을 넘긴 무비스님의 방에는 한자어로 ‘불식’이 적힌 족자가 걸려있다.
'불식'은 중국의 양 무제가 달마 대사를 만나서 한 질문 중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너는 누구냐?"라고 묻자 달마 대사가 한 대답이다.
'우리 시대의 대강백(大講伯)'이라 불리는 무비스님에게 '불식'은 자신을 붙잡아준 화두(話頭:참선 수행을 위한 실마리)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두로, 달마스님이 하신 화두예요. 그동안 나를 스쳐간 화두가 많은데 저 화두가 아주 참 많이 나를 붙들어 주고 있어요."
'강백(講伯)'은 스님들에게 경론을 가르치는 강사(講師) 스님, 그 가운데에서도 존경받는 분을 부르는 말이다. 나이 또는 경력에 관계없이 오직 공부 깊이와 실력이 뛰어난 스님만이 강백이라 불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근현대 한국 불교의 대강백'으로 불린 탄허스님(1913~1983)의 법맥을 이은 무비스님은 1958년 불국사로 출가해 17세가 되던 1960년 여환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덕흥사, 불국사, 범어사, 은해사를 거쳐 1964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동국역경연수원에서 수학했다. 이후 10여 년 제방선원에서 수행했고 1976년 탄허스님에게 ‘화엄경’을 수학해 전법을 받았다.
통도사 강주, 범어사 강주,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동국역경원장,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후 2010년 중앙승가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8년 5월 수행력과 지도력을 갖춘 승랍 40년 이상 되는 스님에게 품서되는 대종사 법계를 받았다.
현재 부산 범어사 화엄전에 주석하며, 문수선원 문수경전연구회에서 스님들과 재가신도들에게 '화엄경'을 가르치고 있다.
무비스님은 자기 인생을 '화중연화(火中蓮華)'에 비유했다. '화중연화'는 '유마경' 구절 중 '화중생련화(火中生蓮華)'와 같은 말로, '불꽃 속의 연꽃'이란 뜻이다. 즉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견뎌내며 헤쳐 나가는, 절대로 파괴되지 않는 불법의 지혜를 의미한다.
"집도 가난하고 학교 가서 공부해 출세할 길도 막막한 상태에서 듣게 된 불경 한 구절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어요. 그때 집을 나와 절로 가게 됐고 부처님 경전을 공부할 기회가 참 많았어요. 탄허스님, 성철스님 등 많은 훌륭한 스승을 만났죠. 그래서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내가 '화중연화'의 삶을 살았다'하는 데 그 말이 맞아요. 22년 전 허리 수술을 해 정말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무비스님은 지난 2003년 척추 농양으로 큰 수술을 받아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후 치료를 받고 위기를 넘겼다. 그때 범어사 염화실에서 인터넷 강의를 시작해 다음카페 '염화실'을 통해 자신의 '인불사상'(人佛思想)을 펼치고 있다.
'인불사상'은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김으로써 이 땅에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게 한다'는 뜻이다.
무비스닝은 '인불사상'을 이야기할 때마다 끝에 '당신을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나도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서로 부처님으로 대접하고 이해해주고 섬기고 존중하면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모든 사람이 나와 관계없는 사람도 '부처님이다'라는 마음으로 서로 이해한다면 세상이 더 험악하지 않고 서로 위하는 사회, 서로 받들어 섬기는 세상이 되지 않겠나 싶어요. 결국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열쇠는 인불사상에 있습니다."
무비스님은 오는 23일 출간되는 '여천무비스님 전집―화중연화(火中蓮華)'에도 '인불사상'과 함께 평생 공부한 내용을 모아 25권으로 엮었다.
'법화경', '유마경' 등 경전과 '임제록', '직지', '신심명', '증도가', '전심법요' 등 선불교 핵심을 담은 책의 강설서,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불교 명구 100 시리즈'를 비롯한 법문 모음집 등 모두 새롭게 새기고 공부할 만한 책들이다.
무비스님은 "'예불문' '천수경' '반야심경' 등 그야말로 불교 abc부터 z까지 어린 아이에게 밥을 씹어서 떠먹여 주듯 아주 친절하게 설명한 내용을 정리한 책들"이라고 소개했다.
평생 공부를 책으로 낸 무비스님은 요즘 공부하지 않는 후학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난 가방끈이 짧은 대신 절에 있으면서 읽을 만한 책이란 책은 사정이 되는 대로 구해 많이 독파했습니다. 도대체 (후학들이) 공부를 안 해…공부 좀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공부해 보니까 책에 세상의 좋은 보물이 있는데, 다이아몬드가 그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와르르 쏟아지는데 이 훌륭한 다이아몬드를 주워 담으려 안 하고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참 안타까워요."
무비스님은 대중에게도 탐욕, 분노, 어리석음 등 3가지 독을 멀리하는 지혜로운 삶을 당부했다.
"사람들이 그 독 전부에 맞아 제정신으로 사는 게 아니에요. 불교에서 자비도 많이 강조하지만, 지혜도 많이 강조합니다. 성인들의 말씀을 가까이함으로써 그 독이 밖으로 배출되고 희석되기도 합니다. 삼독은 인생의 큰 독이라 멀리해야 한다는 게 맞는 말인데 사람들은 얼른 받아들이지 못해요. 온 국민이 3가지 몹쓸 독을 조금씩 희석해 좀 부드럽고 유연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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