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감 선거 진보 진영 단일화 후보
"학생·교사·학부모 위로하는 지도자될 것"
"AI교과서, 효과 입증한 다음에 도입해야"
"학생인권조례, 수정 의견도 경청하겠다"
"이재명 사람? 盧·文에도 임명장 받았는데"
"이런 약력 안 보고 한쪽만 침소봉대 곤란"
[서울=뉴시스] 양소리 기자 = 진보 진영의 서울시교육감 단일화 후보로 추대된 정근식(66)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와 전남대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며 40년 간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맡아 현대사의 주요 이슈들을 다뤘다.
일각에선 초·중·고 교육 현장을 모르는 교수 출신이라는 비판이 이어지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의 경력으로 "교육 공동체와 시민사회를 연결하고 교사·학생·학부모를 위로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정 후보의 이름은 교육계보다 정치권에서 더 자주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혁신위원장' '공천관리위원장' 등을 물색할 때도 정 후보는 유력 주자에 꼽혔다. 정 후보는 '유권자들이 '이재명 사람'으로 볼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았을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가 꿈꾸는 교실은 '학생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곳이다. 정 후보는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건 자신과 다른 배경의 다양한 사회적 환경을 직면하고, 나와는 상당히 다른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많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경험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시스는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에 마련된 선거캠프에서 정 후보를 만났다. "상석이 불편하다"며 기자와 마주 앉은 정 후보는 한국사 교과서 문제,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다음은 정 후보와의 일문일답.
-40년간 교수로 지낸 교육자다. 교육정책과 행정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정근식'이어야 하나.
"대학에서 40년 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했다. 교육의 기본 정신, 기본 철학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초·중등 교육에 대해서는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본질은 같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다른 후보보다 더 잘 경청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문재인 정부에서 '진실·화해위원장'을 맡으며 소수자나 약자들에 대한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는 경험을 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학생들, 선생님들 또 학부모들이 일상적인 상처에 노출되고 있다. 그분들의 아픔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때때로 위로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출마 선언을 하며 '시대정신의 완성'을 언급했다. 정 후보가 생각하는 지금 교육계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창의적인 교육', 두 번째는 '역사 인식'이다.
창의적인 교육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독서와 다양한 토론을 통해서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건 자신과 다른 배경의 다양한 사회적 환경을 직면하고, 나와는 상당히 다른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많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도 이 창의교육을 위해 혁신교육을 강조했다. 저는 이 혁신교육의 성과를 이어받으며 문화적 감수성을 가진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고자 한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는 것도 가장 중요한 과제다. 뉴라이트 사관은 국가의 기본을 흔든다. 지금 청소년들은 희망이 아니라 불안으로 가득하다. 사회적 아노미 상태다. 여기에 잘못된 역사관까지 결합하면 우리 미래는 암담하다. 대한민국 공동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뉴라이트 사관이 교육 현장에 들어오는 데에 단호하게 반대하겠다."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 받는 한국학력평가원의 한국사 교과서 문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발언이다. 교육 현장에 들어오는 걸 반대하겠다는 건 검정 취소를 요구하겠다는 건가. 검정 취소는 교육부의 권한인데 특별한 묘안이 있나.
"그렇다. 시민과 함께 하면 된다. 우리나라 주권이 국민에 있듯 서울시 교육정책의 권리자는 서울시민에 있다. 시민들과 토론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교육감이 책임을 지고 가야 한다."
-역사 교과서만큼 뜨거운 현안은 내년부터 도입될 인공지능(AI) 교과서다. 교원단체의 반대도 이어지고 있는데 후보의 생각은 어떤가.
"AI 시대의 시작은 불가피한 흐름이다. 학생들이 공부할 때 도구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기계가 주인이 되는 현장이다. 챗GPT를 보면 이용자의 질문 수준에 따라 답변 수준도 달라진다. 질문이 모호하면 답도 엉망이다. 중요한 건 학생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AI냐다. 그런데 지금 AI교과서는 과거 표준 전과의 디지털화 수준이다. 암기식 교육의 디지털 버전이다.
AI교과서 도입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실험 도구가 아니다. AI교과서의 교육적 성과에 대한 증거가 없는데 도입을 하게 되면 부작용도 예측하기 힘들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교육적 효과를 입증한 다음에 도입해도 늦지 않다."
-지난해 교육계는 서이초 교사의 죽음으로 큰 위기를 겪었다. 교권 회복은 여전히 교육계의 화두다. 교권을 바로 세울 방법이 있나.
"교권의 핵심은 교사가 자신의 능력대로, 양심대로 수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과도하게 학교 현장에 민원을 제기하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거꾸로 보면 이는 학부모들의 '학교에 참여하고 싶은 욕망'이다. 그 욕망을 충족할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보호 5법(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교원지위법·아동학대처벌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현장 교사들은 이걸 피부로 못 느낀다. 법들의 실효성을 올리는 게 교육계의 과제이자, 국회의 과제다.'
-교권과 함께 떠오른 이슈가 '학생인권조례' 존치다. 서울시의회는 이미 폐지안을 통과시킨 상태다. 어떻게 후속 조치를 할 예정인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교육자들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이건 교권 추락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게 아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시도와 없는 시도가 있는데 인권조례가 있는 시도에서 더 많은 교권 문제가 벌어지지는 않는다. 학생 인권과 교권을 대립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다만 학생인권조례를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경청할 만하다. 오해가 될 부분은 고칠 필요가 있다. '성적 지향 존중'을 삭제해야 한다는 보수 의견도 들어볼 의사가 있다. 결국은 시간이 해결한다. 10년 후, 20년 후 우리 국민의 눈높이가 달라지면 인권 눈높이도 달라질 것이다."
-진보 진영에서 단독 출마가 이어지며 다수 후보가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릴 전망이다. 후보들을 설득할 방법이 있나.
"걱정이다. 후보들과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후보들이 시민사회와의 합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진보 후보 단일화 기구(2024 서울 민주진보교육감 추진위원회)에는 300개가 넘는 시민 및 교육단체가 모였다. 이 단일화 과정은 그 자체로 시민사회와의 약속이다. 그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 단일화 기구도 더 책임을 지고 추후 단일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19년에는 '이재명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 발기인으로 참석했고, 이 대표 체제의 민주당에서 혁신위원장, 공관위원장 등 요직의 하마평에 올랐다. 유권자는 정 후보를 '이재명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회적 경험과 경력이 쌓이면 아주 다양한 정치인과 소통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 요즘에는 또 다른 라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더라.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임명장을 받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진실·화해위원장' 임명장을 줬다. 이런 약력을 보지 않고 한쪽만 침소봉대하면 곤란하다."
제가 판단했을 때 나를 진짜 필요로 하는 순간에만 실천적인 활동을 했다. 누구와 가깝다는 이야기는 시중에서 떠도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 번도 정도(正道)를 벗어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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