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DMA 도입 초읽기?…"구글 맞서던 토종 플랫폼만 무너뜨릴라"

기사등록 2023/06/23 06:00:00 최종수정 2023/06/23 06:58:05

공정위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 정책 발표 앞두고 부작용 우려

글로벌 빅테크 점령한 유럽 디지털시장법 참조…자국 플랫폼 버틴 韓과 다른데...

토종 플랫폼만 옥죄는 규제 "OTT·클라우드 이어 검색, 이커머스, AI 시장마저 뺏길라"

네이버 카카오 로고(사진=각사)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정부가 대형 플랫폼 독과점 규제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전규제라고 평가 받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참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와 학계에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DMA는 권역 내 이렇다 할 산업 기반이 없는 유럽이 구글,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들의 독점 횡포를 견제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규제안인데, 네이버·카카오 등 토종 기업들이 해외 빅테크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한국 시장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혁신만 발목 잡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최근 글로벌 빅테크가 동영상,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음원 시장까지 잠식한 가운데 최후의 보루인 인공지능(AI)·검색 시장마저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고조되고 있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달 중으로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에 대한 정책을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초 공정위는 ‘플랫폼 독과점 규율개선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플랫폼 독과점 행위를 규제하는 법률을 별도로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TF에서는 EU가 시행하는 DMA(디지털시장법)와 비슷한 고강도 사전규제 방식의 규제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U의 DMA는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플랫폼을 따로 지정해 자사 우대 정책이나 특정 결제시스템 등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시정조치나 과징금을 부과하는 사전규제 법안이다. 법 조항을 한 번만 위반할 경우에도 전 세계 관련 매출액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한다.

주요국 자국 모바일 플랫폼의 연도별 이용 점유율(출처=이커머스 생태계 활성화와 자국 플랫폼의 역할) *재판매 및 DB 금지


◆구글·아마존 견제 위해 강력 규제 내걸은 EU…자국 플랫폼 버티고 있는 韓과는 달라


EU가 DMA를 시행하게 된데는 자국 플랫폼이 미미한 상황에서 구글, 아마존, 메타 등을 견제하겠다는 심리가 깔려있다. 실제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 주요 EU 소속국들은 자국 모바일 커머스 플랫폼의 이용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EU와 상황이 다르다. 전 세계에서 자국 검색 엔진을 가진 5개국(대한민국, 미국, 중국, 러시아, 체코) 중 하나다. 중국과 러시아는 현지 정부의 시장 폐쇄 정책에 따른 결과다. 체코의 경우, 자국 검색 플랫폼이 구글에 점유율을 대부분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한국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유일하게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경쟁에서 버티고 있다.

미국 빅테크가 점령한 유럽과 국내의 플랫폼 경쟁 상황이 전혀 다른 만큼, 이같은 산업 여건을 감안한 규제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와 학계의 요구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1일 한국경쟁법학회가 주최한 '온라인 플랫폼 산업 해부’ 세미나에서 “EU의 디지털시장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핵심 플랫폼을 유형화할 경우 공정거래법상 사후규제를 받는 상황과 달리 위법성 판단의 여지 없이 자사 우대행위 등 특정 행위가 금지되므로 국내 대형 플랫폼의 사업상의 의사결정의 자율성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국내 대형 플랫폼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서종희 연대 법학전문대 교수도 '합리적 온라인플랫폼 정책 수립 방안 모색' 토론회(한국유통학회,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주최)에서 "자국내 산업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유럽 플랫폼 규제와 국내는 출발선부터 다르다"며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의 점유율이 지배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 도입은 신중해야 하고, 해외 플랫폼에 대한 이용을 저지할 수 없는 국내 환경을 고려할 때 오히려 그 규제가 국내 사업자에게만 가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구글, 넷플릭스, 메타 등 외산 플랫폼들의 한국 시장 잠식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은 유튜브를 통해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쇼핑 시장에 진출했다. 유튜브에서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능을 내놨고, 쇼핑과 관련된 콘텐츠만 모아서 볼 수 있도록 ‘쇼핑’ 카테고리를 신설했다. 오는 30일에는 한국어판에 사상 첫 쇼핑 채널 '유튜브 쇼핑'을 개설할 예정이다.

최근 경쟁이 치열한 생성 AI 시장에서도 빅테크의 한국 시장 공세가 시작됐다. 지난달 구글은 생성형 AI 챗봇 '바드'를 발표하면서 한국어를 영어, 일본어와 함께 첫 지원어로 깜짝 선정했다. 비공산권 국가 중 유일하게 검색 점유율을 자국 기업(네이버)에 밀리고 있는 시장 여건을 감안해 'AI 검색'으로 공격적인 점유율 경쟁을 벌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오픈AI의 챗GPT를 검색엔진 '빙'에 도입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월 챗GPT를 업그레이드(GPT-4) 하며 한국어 답변 수준을 크게 개선했다. 오픈AI 그렉 브록만 회장은 최근 방한한 자리에서 한국어 토큰 개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OTT·클라우드·음원앱도 글로벌 빅테크가 추월…"검색·이커머스 순위도 뒤바뀔 수도"


이런 상황에서 국내 플랫폼을 겨냥한 규제 강도가 높아질 경우 글로벌 플랫폼의 국내 시장 잠식 속도만 빨라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 검색, 미디어, 클라우드, 콘텐츠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일찍이 진출한 분야는 빠르게 국내 시장 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의 집계를 보면, 국내에서 이용자 수가 가장 많은 OTT 서비스(4월 기준)는 넷플릭스(1156만명)다. 2021년 기준 국내 클라우드 시장점유율은 1, 2위는 아마존(62.1%)과 MS(12%)가 올랐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한국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를 표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4월 유튜브 뮤직 앱 사용자 수가 521만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멜론은 459만명을 기록했다.

AI, 이커머스도 언제든 순위가 뒤바뀌고 점유율을 빼앗길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정작 정부나 규제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해외 플랫폼의 불공정거래에서는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구글과 애플은 인앱결제방지법이 시행되자 제3자 결제를 허용하면서도 26%의 높은 수수료율을 부과해 업계에서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이렇다할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온라인 검색 시장에서 국내 1, 2위 포털기업인 NHN(현 네이버)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이 구글을제소했을 때 구글에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2011년에 다음 등이 구글이 스마트폰 제조사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구글 검색엔진만을 선탑재하고 타 회사의 검색 프로그램을 쓰지 못하도록 강제한 의혹으로 제소한 바 있다.

구글은 이같은 안드로이드 선탑재 힘입어 국내 검색 엔진 시장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가고 있다. 인터넷트렌드에 따르면 구글은 2010년도 초반 5%의 점유율을 보였지만 2015년 7.26%, 2019년 30.97%, 2023년 현재 35.17%의 점유율로 약 10년간 7배에 가까이 뛰었다.

반면 네이버, 카카오의 검색 점유율은 지속 하락세다. 카카오의 1분기 포털비즈 매출은 전분기 대비 15% 빠진 836억원을 기록했다. 네이버 역시 검색점유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는 10년 전 구글 스마트폰 선탑재를 방관하면서 네이버, 다음이 몰락했는데 국내 규제 방향성은 향후 5~10년 후 한국 인터넷 산업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정부의 규제가 EU, 미국에서 자국 플랫폼을 확장하려는 글로벌 흐름과 역행하고 있다. 자국 플랫폼 기업들이 더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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