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흉내내지 않고 지역 특색 살려 이주자 불러
‘숲의 유치원’에 도시서 온 아이들 북적
국제화 관광에도 주력...외국인에게 택시비 할인
【돗토리=뉴시스】 조윤영 특파원 = "시골에 살면 자연만 있어 외로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의외로 시끌벅적하다. 틈만 나면 모여 늘 사람 소리가 들린다. 풍요로운 자연과 북적북적 사람들 속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다이센초로!"
돗토리(鳥取)현 다이센초(大山町)에 거주하는 잠수 어부 나카무라 타카유키(中村隆行)씨는 지난 2일 이 지역 이주자들이 만든 자치회 회관 '마부야'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리며 이렇게 말했다. 회관은 20여 년째 빈집으로 있던 집을 이 지역 출신인 주인으로부터 기증받아 나카무라씨를 비롯한 이주자들이 새로 도배하고 수리해 2013년에 문을 열었다. 지금은 이주 희망자의 상담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같이 밥도 해먹고 어울리는 사랑방이 됐다.
자치회 부회장인 나카무라씨는 배와 도구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순수 잠수로만 해산물을 채취하는 어부다. 도쿄 바로 옆 도시인 사이타마(埼玉)현 출신인 그는 15년 전 이곳으로 이주했다. 스노쿨링을 좋아해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의 산과 바다가 마음에 들어 그대로 눌러앉았다.
바다가 좋아 이주를 결정했지만 먹고 살 방도가 없던 그에게 마을의 한 주민이 잠수 어부라는 직업을 가르쳐줬다. 지금도 스승이라고 부르는 그를 따라다니다 얼마 전 독립한 나카무라씨는 채취한 해산물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도쿄 등에 판매한다. 다이센초에서 만난 이주자와 결혼해 딸도 한 명 있다.
그는 매일 오전 바다에 나가 미역, 소라 등을 따고 낮에는 마을 회관 '마부야'에 나가 주민들과 어울린다. 그가 이처럼 자치회 활동에 열심인 것은 이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같은 이주자는 물론이고 마을 주민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카무라씨가 사는 다이센초는 인구 1만 6000명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오래전부터 이곳 주민들이 신산(神山)으로 믿어온 다이센을 한가운데 두고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 특히 지방의 인구 감소는 큰 사회 문제 중 하나다. 그런데 돗토리현에서도 손꼽히는 시골마을인 다이센초는 10여 년간 인구가 줄어든 게 아니라 이주자로 140명 늘었다. 지난해만 10명이 이주했다.
특히 다이센초는 돗토리현에서도 이주자의 정착률이 높고 특히 20~30대의 젊은 이주자가 많은 곳으로 꼽힌다. 나카무라씨는 "농촌살기 붐이 있었던 과거에 농촌으로 왔다가 다시 도시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이주자의 40%였는데 최근에는 13~15%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정착률이 높아진 데 대해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진 점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인간관계에 시달리고 일의 성과가 중심인 삶보다는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시골 이주가 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환상으로 내려왔다가 적응 못 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비율이 높았던 과거와는 달리 미리 차근히 준비해서 시골로 이주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더 큰 계기가 됐다. 도쿄, 오사카 등의 샐러리맨 출신들이 도시생활을 접고 다이센초로 들어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다이센초에 이주자가 증가한 데는 지자체의 노력도 한몫했다. 3선 도지사인 히라이 신지(平井伸治) 돗토리현 지사는 이곳을 찾은 외신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2007년 취임 당시 돗토리현 인구는 처음으로 6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일본의 가장 작은 현으로 어떤 지역보다도 먼저 고령화문제가 찾아온데다가 돗토리현에 위치한 산요, 파나소닉 등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회사가 합병되거나 철수하면서 지역 경제도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히라이 지사는 2014년 인구 감소가 심각한 산간 지역부터 보육료를 무상화했다. 이주자가 조금씩 늘기 시작하자 2015년 9월부터는 세 번째 자녀부터 보육료를 완전 무상화했고, 지금은 두 번째 자녀까지 범위를 늘렸다. 돗토리현은 2~3명 자녀가 있는 가정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뿐만 아니다. 숲이 많은 지역의 특성을 살려 2009년 '숲의 유치원'과 같은 보육시설도 만들었다. 북유럽의 경우를 벤치마킹한 '숲의 유치원'은 아동 6명당 보육교사 1명을 배치하고 주 3일, 연간 39주 이상 아이들을 숲에서 놀게 한다. 현재 돗토리현에는 이같은 '숲의 유치원'이 8곳 있다. 처음 만들어진 지즈초(智頭町)의 시골 마을에 있는 마루탄보(まるたんぼう) 숲 유치원은 원아 17명 중 6명이 도시에서 왔다.
2011년에 504명이었던 돗토리현 이주자는 2017년에는 2,127명으로 약 4배 가량 늘었다. 출생률도 2007년 전국 평균이던 1.43%에서 2017년 1.66%로 늘어 전국 7위가 됐다. '살고 싶은 시골' 랭킹에서도 2016년부터 2년 연속 돗토리현 내 지역이 전국 1위를 차지했다.
히라이 지사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현으로 어떤 지역보다도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 등의 위기가 빨리 찾아왔지만 덕분에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며 "그 결과 도시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을 살린 지방다운 정책을 내놓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어, 영어, 중국어뿐만 아니라 간담회에 참석한 독일, 덴마크 기자까지도 배려한 듯 그 나라 언어로 인사한 히라이 지사는 특히 국제편 항공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돗토리현에 위치한 요나고(米子) 공항은 일주일 5번 서울 직항편이 운행된다. 10월부터는 1편 더 증설된다. 현재 돗토리현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의 비율이 가장 많다.
돗토리현 관계자는 "지방이라 교통이 불편한 점을 고려해 외국인에게 택시비를 대폭 할인해주는 택시관광 투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돗토리 시내에서 한 사람당 2000엔(2만 386원)으로 3시간짜리 택시투어를 할 수 있다. 지역의 택시 요금이 1.5km에 640엔(6523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많이 싸다. 지자체에서 마련한 코스를 택시운전사에게 미리 안내해 언어 소통이 안 돼도 크게 어렵지 않다는 장점도 있다.
신성한 산으로 기도가 잘 이뤄진다고 해 크고 작은 사찰들이 160개 있었던 돗토리현 다이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사찰인 다이센지(大山寺)가 문을 연지 올해로 1300년이 됐다. 돗토리현은 이를 관광의 좋은 기회로 만드는 걸 놓치지 않는다. 올해 내내 축하 행사를 대대적으로 연다. 히라이 지사는 "이번 행사가 돗토리현에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