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받지 않고 고향 갔다 파직된 김득신 父 김치]

기사등록 2015/08/03 07:46:07 최종수정 2016/12/28 15:24:16
【증평=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증평군을 대표하는 조선 중기 다독 시인 김득신의 부친인 김치의 묘소는 증평읍 율리 김득신 묘소 위에 자리하고 있다. 2015.08.03.  ksw64@newsis.com
광해군 때 병조 참의 임명 이틀 만에 파직

【증평=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증평군을 대표하는 조선 중기 다독(多讀) 시인 백곡(구석산인) 김득신(金得臣·1604~1684)의 부친인 남봉 김치(金緻·1577~1625)는 관직을 제수 받은 지 이틀 만에 파직된 일이 있다.

 김치가 파직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휴가를 받지 않고 고향을 갔다는 이유에서다.

 광해군일기 13년(1621) 윤 2월6일(이하 음력) 기사를 보면, 김치는 안륵(安玏)과 함께 파직됐다.

 광해군은 "근래에 문무관들이 높은 관리나 낮은 관리를 막론하고 휴가를 받지 않고 곧장 먼저 고향으로 내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통 때에도 이처럼 해선 안 되는 것인데 하물며 이러한 때이겠는가. 김치와 안륵을 파직하라"고 전교했다.

 김치는 이틀 전인 2월 4일 정3품 당상관인 병조 참의(參議)를 제수 받았다.

 휴가를 받지 않고 임의대로 임지(任地)를 벗어난 게 화근이었다.

 벼슬아치에게 주는 특별휴가는 당시 법에 규정할 만큼 엄격했다.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으로 통치의 기준이 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벼슬아치의 휴가 기준을 정해 놓았다.

 특별휴가 규례인 급가(給暇) 조를 보면, 일이 있는 관원에게는 임금에게 아뢴 뒤 휴가를 주도록 했다.

 3년에 한 번씩 부모를 뵈러 갈 때, 5년에 한 번 성묘하러 갈 때, 과거에 급제하거나 관직에 임명돼 부모를 찾아뵙는 영친(榮親)과 부모의 묘소에서 성묘하고 이를 고하는 영분(榮墳) 때, 관직에 추증된 조상의 묘소를 찾는 분황(焚黃) 때, 혼례 때는 7일간의 휴가를 받았다.

 김치가 병조 참의에 임명되고 고향을 간 것은 부모의 묘소를 찾은 것이 아닌가 싶다.

 김치의 부친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전투의 명장인 김시민(金時敏·1554~1592)이고 생부는 김시민의 이복형인 김시회(金時會·1542~1581)다.

 김치는 병조 참의에 임명되자 이를 고하고자 부친과 생부의 묘소를 찾았으리라 짐작한다.

 김치는 2년 뒤인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사흘 만에 동래부사(東萊府使)에 발탁됐다.

 김치는 경서(經書)에 통달했고 점술을 연구해 천문(天文)에 밝았다.

 '청구야담(靑邱野談)'은 김치가 후에 좌의정의 자리까지 오른 심기원(?~1644)이 인조반정의 거사일을 상의하자 3월 16일이 대길(大吉)이라고 일러준 일화가 전한다.

 서인(西人)은 3월 12일 인조반정을 일으키고 김치는 사흘 뒤에 동래부사에 임명됐다.

 1625년(인조 3)에 경상도관찰사로서 안동지방을 순시하던 중 객사에서 숨졌다.

 김치의 묘소는 증평군 증평읍 율리에 아들(김득신)과 손자의 묘소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ksw64@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