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정월 초였다. 구인회 회장은 락희화학의 구평회 전무와 한성갑 기획부장에게 느닷없이 대붕(매우 큰 상상의 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집에서 쉬는 것도 지루하지요?”
겨우 사흘밖에 안 되는 연휴가 지루하지 않느냐며 묻는 구인회 회장의 말투가 우스웠지만, 두 사람은 웃음을 참았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없어서 답답할 겁니다. 하루에 9만 리를 날 수 있다는 대붕을 아십니까? 대붕은 언제나 멀리 내다보고 높이 날지요. 이제 우리도 새로운 사업을 검토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제야 구평회와 한성갑은 구인회 회장이 정월 초부터 자신들을 부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었다. 모두가 당장의 락희화학과 금성사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구인회 회장은 이미 더 큰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구평회는 감동했다.
‘역시 회장님이야!’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구평회는 한성갑과 머리를 맞대고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마치 서로 마음이 통하기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해답은 석유 사업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입에서 처음으로 ‘석유 사업’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마치 거대한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듯 상기되고 긴장한 표정이었다. 과연 석유 사업이 무엇이기에 그랬을까.
석유 사업은 섬유, 플라스틱 제품, 합성세제 등의 기초가 되는 사업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업들의 원료를 파고 들어가면 결국 석유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유 사업이라 하면 가장 기초 단계인 석유를 정제(여러 성분으로 분리해내는 일)하는 정유 사업부터 시작해 그 윗단계인 석유화학 사업까지 그 범위가 매우 컸다. 이는 웬만한 기업이 달려들 수 없는 수준이기도 했다. 특히 정유 사업은 워낙 큰 사업이라 이미 국가가 관리하고 있었다.
한성갑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던 손을 멈추고 구평회에게 말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점점 욕심이 생깁니다.”
“무슨 말입니까?”
“폴리에틸렌 사업을 하려면 에틸렌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나프타 분해 사업까지 손을 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더 큰 사업이 나타나는 겁니다.”
“더 큰 사업이라면… 정유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유 사업까지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대붕은 없을 것입니다. 혹, 중간에 그치더라도 석유화학 사업 하나는 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야 그렇지만… 마음처럼 그리 쉬이 되겠습니까?”
두 사람은 며칠을 더 숙고했다. 그리고 구인회 회장에게 그 동안의 검토 내용을 간추려 보고했다.
"하하, 진짜 대붕을 물고 왔군요!”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구인회 장은 놀라워하면서도 기뻐했다.
“그럼 우리가 어디까지 해보자는 겁니까?”
구인회 회장은 두 사람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유 사업까지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보다 더 배포가 크군.”
구인회 회장은 겉으로는 놀라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뭔가 꽉 찬 느낌에 몸을 떨었다. 그 역시 이런 큰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구인회 회장이 석유화학 사업에 관심을 가진 지는 오래됐다. 다루고 있는 플라스틱 제품의 원자재가 석유화학 제품이라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수입하던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이 너무 비싼 것도 늘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이미 지난 1959년, 구인회 회장은 석유화학 관련 사업을 하기 위해 정부에 관련 서류를 넣었다. 하지만 당시 경쟁 업체가 락희화학의 서류를 통째로 복사해 자기들이 먼저 접수한 것처럼 꾸미고는 사업권을 얻어가려했다.
경쟁 업체에도 당하고 정부에도 뒤통수를 맞은 서글픈 일이었다. 만약 그때 락희화학이 석유화학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더라면 기술을 몇 년 더 앞당길 수 있지 않았을까?
구인회 회장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다시 심호흡을 했다. 그때와 지금의 락희화학은 달랐다. 구인회 회장은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정유 사업이다
“좋아. 이제 정유 사업에 도전해보자!”
구인회 회장은 사업의 범위를 정유 사업으로 우선적으로 정한 뒤, 다음 단계로 나프타 분해와 폴리에틸렌 생산 등을 할 수 있는 석유화학계열 공장을 계획하도록 지시했다.
구평회와 한성갑이 중심으로 나서 사업계획서를 완성했다. 그러나 어떻게 정부를 설득시킬지 막막했다. 하지만 구인회 회장의 삶은 언제나 불가능에 도전하는 삶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한번 부딪쳐보자!”
한 부장이 사업계획서를 들고 정부 관계자를 만나러 갔다. 정부 관계자는 한 부장이 들고 온 사업계획서를 보는 순간 코웃음을 쳤다.
“하하, 지금 무슨 꿈 이야기라도 하는 겁니까? 6만 배럴이라니요!”
사실 한 부장이 내민 사업계획서에는 하루 6만 배럴을 만들 수 있는 정유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이것은 정부 관계자가 보기에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수치였다. 당시 국내 정유 공장은 국가가 운영하던 ‘유공’이라는 회사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 유공에서 하루에 처리하는 원유가 고작 3∼4만 배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락희화학 정도의 회사가 그것의 두 배에 가까운 6만 배럴의 정유공장을 짓겠다고 하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정유는 국가만 관리할 수 있어요. 민간이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란 말입니다.”
“아니,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정유는 꼭 국가가 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선진국 어디에서도 정유를 국가가 하는 곳은 없어요!”
한 부장도 지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펼쳤으나 역부족이었다. 한 부장과 함께 국제신보의 서정귀 사장도 함께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더 이상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구인회 회장은 이들을 격려했다.
“힘내세요.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 법입니다.”
곧이어 구 전무가 경제기획원 장관을 만나러 갔다. 예상대로 경제기획원 장관은 자금 이야기를 꺼냈다.
자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는 분명 가장 큰 문제였다.
“외국에서 차관(한 나라의 정부나 기업, 은행 따위가 외국 정부나 공적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려옴. 또는 그 자금)을 얻어 해결할 생각입니다.”
그제야 경제기획원 장관의 눈빛이 번쩍거렸다.
“좋아요. 그렇다면 이렇게 합시다. 먼저, 차관을 얻어온다면 그때 허가 문제를 다시 이야기합시다.”
드디어 한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인회 회장은 당장 구평회를 비롯한 몇몇 임직원을 이끌고 외국으로 나가 협상에 들어갔다. 이미 사업계획서가 짜여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돈을 빌릴 수 있었다. 또한 원유를 공급받는 문제도 해결했다.
귀국한 뒤에는 공장을 어디에 세울 것인지에 대해 이리저리 알아보았다.
고민 끝에 구인회 회장이 선택한 곳은 전라남도 여수였다. 대형 유조선(원유를 실은 배)이 들어오기에도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호남 사람들이 전라도에도 공업단지를 건설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때라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이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정식으로 정부의 허가를 얻기 위해 최종 사업계획서를 경제기획원에 제출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혹시 약속을 어기는 거 아냐!”
한 부장을 비롯한 개발부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저런 불평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구인회 회장 역시 답답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신문에 충격적인 기사가 떴다.
“제2정유공장 공모!”
뒤통수를 맞은 꼴이었다.
“이거 완전히 우리를 가지고 논 거잖아!”
돈만 빌려오면 정유 공장 사업권을 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 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공모(공개적으로 모집함)를 한다니!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구인회 회장만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곧이어 구인회 회장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옳지, 보세요! 이 공고로 이제 민간 기업도 공공연하게 에너지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 아닙니까. 민간은 정유 사업 영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우리가 바꾸어 놓은 겁니다!”
“정부에서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결국 구인회 회장은 특유의 느긋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합시다. 우리는 그동안 모든 준비를 해두지 않았습니까. 이 사업에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참여할 테니 지금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처럼 착실히 준비한 데도 없을 테니 선정될 가능성도 제일 높습니다.”
이렇게 하여 구인회 회장의 정유 사업에 대한 꿈은 ‘제2정유공장 공모전’이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과연 락희화학은 정유 사업권을 따낼 수 있을 것인가.
최종적으로 공모에 응한 기업은 락희화학을 비롯한 롯데, 한양, 삼양 등 여섯 개 기업으로, 모두가 쟁쟁한 기업이었다. 언론에서는 그중에서도 락희화학과 한양을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꼽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정부가 사업계획서에서 몇 가지 조건들을 바꾸지 않으면 아예 공모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도대체 정부에서 왜 그러는 겁니까?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알고 보니 락희화학에 차관을 해주기로 했던 일본의 ‘마쓰이물산’이 사카린 밀수 사건이라는 불미스러운 일에 관련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럴 수가!”
구인회 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거기에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까지 겹쳤다. 미국 굴지의 석유 회사 두 곳도 제2정유공장 공모전에 뛰어든 것이다. 이제 잘못하면 락희화학이 그렇게 공을 들였던 정유 사업의 꿈이 수포로 돌아갈 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처럼 급박하게 일이 돌아가고 있을 즈음, 정부 관계자가 구인회 회장을 찾아와서는 미국의 석유 회사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구인회 회장은 일본측에 사정을 설명한 뒤 기존의 일본 회사와 관계를 과감히 끊고 미국의 석유 회사와 협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 회사 중에서 ‘칼텍스’라는 회사와 함께 정유 사업을 펼치기로 합의했다.
1966년 11월 17일, 드디어 정부에서 제2정유공장 선정자를 발표하는 날이 밝았다. 온 국민의 관심은 과연 락희와 한양 가운데 어느 쪽으로 사업권이 넘어가느냐에 쏠렸다.
“정부는 제2정유공장의 사업자를 호남정유로 결정했습니다.”
‘호남정유’는 락희화학이 새롭게 시작한 정유 회사의 이름이었다. 거의 10개월간이나 계속된 싸움에서 결국 락희화학이 승리를 거두었다.
“야호!”
락희화학의 임원진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을 표시하는데 구인회만은 특유의 느긋한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구름 잡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뒤를 밀어준 락희화학과 금성사 직원들에게 고맙습니다. 모두가 애써 주었는데, 구름을 잡았으니 다행이지 않습니까.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웃음거리가 되면 안 됩니다. 앞으로는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구인회 회장의 꿈이 또 하나 이루어졌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여수에 정유 공장 기공식(공장을 세울 때 하는 행사)이 열릴 때와 준공식(공사를 마쳤을 때 하는 행사)이 열릴 때 모두 참석해 구인회 회장을 격려해줬다.
구인회 회장 개인의 미래뿐만 아니라 온 국가의 미래까지 짊어진 공업단지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준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뿐만 아니라 3만여 명의 축하객들이 모여들어 온 국민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이후 호남정유는 하루 원유 처리량을 1969년에는 6만 배럴로 시작해 이후 2년 만에 이를 훌쩍 뛰어넘는 10만 배럴로 늘렸다. 연이어 16만 배럴로 확장하더니 그 뒤로도 확장을 거듭해 2010년에는 하루에 76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하는 정유회사가 됐다.
우리나라 석유 수요의 3분의 1을 공급하고 생산량의 50퍼센트 이상을 세계로 수출하는 초대형 회사인 GS칼텍스로 성장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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