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살행 트럭서 뛰어내려 도망쳤어요" 아물지 않은 제주4·3

기사등록 2024/04/03 09:37:21

제76주년 제주4·3추념식 열리는 4·3평화공원

여덟 식구 희생된 김인근씨 등 유족 발길 이어져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제76주년 4·3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유족들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사진=제주도사진기자회) 2024.04.03.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제76주년 4·3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유족들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사진=제주도사진기자회) 2024.04.03. [email protected]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아홉 식구가 총살하러 가는 트럭에 탔는데, 13살인 저 혼자 뛰어내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도망쳤어요"

제76주년 제주4·3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역. 짙은 안개와 비가 내리는 궃은 날씨에도 유족들은 우산과 우비를 입어가며 현재까지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이날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온 정생민(77)씨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제수 음식과 돗자리를 챙겨 할아버지 고 정옥주 희생자 앞에서 제를 지냈다.

정생민씨는 "할아버지인 정옥주 희생자는 태어났을 때인 1947년께 자택에 있다가 이유도 없이 토벌대에 끌려갔다. 이후 마포형무소에서 수감된 것까지만 소식이 들렸고 행방불명됐다.

죽었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가족들은 매년 고 정옥주의 제사를 지내왔다. 그러다 행방불명 73년 만인 2020년께 제주4·3 유족을 대상으로 한 DNA 검사를 통해 제주국제공항 부지에서 발견된 유해가 고 정옥주로 확인됐다.

정생민씨는 "할아버지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마음이 찡했다. 살아서 돌아온것만 같은 느낌이었다"며 "처음 손자들의 DNA 검사에선 나오지 않았는데, 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채혈을 하면서 발견했다"고 전했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제76주년 제주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고 김호근 희생자의 여동생 김인근씨가 제사를 지내고 있다. 2024.04.03.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제76주년 제주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고 김호근 희생자의 여동생 김인근씨가 제사를 지내고 있다. 2024.04.03. [email protected]
이날 큰오빠인 고 김호근 희생자의 묘역 앞에 선 김인근(90)씨는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묘비 앞에서 절을 올렸다.

고 김호근은 김인근씨가 13살이던 1928년께 마을에 불이 났는데, 누군가 범인을 고 김호근으로 밀고했다고 한다. 이를 들은 군경이 자택으로 들이닥쳤다. 당시 김인근씨가 집에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님을 포함해 만삭인 올케, 2살과 4살배기 조카 등 아홉 식구가 학살터로 향하는 트럭에 태워졌다.

트럭에서 뛰어내린 김인근씨는 목숨을 건졌고, 총상을 입은 어머니가 겨우내 살아돌아와 함께 지냈다. 나머지 일곱 식구는 모두 총살됐다. 오빠인 고 김호근과 언니, 아버지, 어머니는 제주4·3 희생자로 결정됐으나 어린 조카와 임산부 등 4명은 호적에 없었단 이유로 현재까지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김인근씨는 "총살하러 가는 트럭에 타니 여기 있으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뛰어내렸다. 군경이 몽둥이로 때려가면서 타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살려주십서(주세요)'하면서 도망쳤다"며 "겨우 살아남아 친척집에라도 가고 싶었으나 지장을 줄까봐 숨어서 살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 김호근도 결국 군경에 끌려갔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이후 행방불명됐다. 고 김호근은 당시 형무소에서 칫솔과 편지지 등 생필품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내왔으나 이후 소식이 끊겼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제76주년 제주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고 정옥주 희생자의 손자 정생민씨와 가족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2024.04.03.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제76주년 제주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고 정옥주 희생자의 손자 정생민씨와 가족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2024.04.03. [email protected]
오빠인 고 현덕홍 희생자의 묘역을 찾은 현정자(84)·현덕선(86) 자매는 "저희가 10살, 12살이던 1949년경 오빠는 농업학교 6학년 시절 아무런 이유 없이 끌려갔다. 이후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는 얘기까지는 전해졌고 소식이 끊겼다"며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총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70여년 전 제주에 불어닥친 4·3광풍은 현재까지도 도민들의 말하지 못한 사연으로 남아있다.

이날 오전 10시 이 곳 제주4·3평화공원 일대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4·3의 의미를 기리고자 제76주년 제주4·3 추념식이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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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살행 트럭서 뛰어내려 도망쳤어요" 아물지 않은 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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