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접경 러 벨고로트 주민들 "전쟁이 문턱에 와 있다"

기사등록 2022/09/15 10:35:21

최종수정 2022/09/15 10:44:39

퇴각 군인들 시장에서 겨울내의 등 사고

방공 미사일 폭발음 연신 울리는 속에

일부 주민들 모스크바의 날 축제 비판도

러군 협력 우크라 주민들 보복 우려 대거 피난

[하르키우=AP/뉴시스] 러시아의 벨고로드주에서 우크라이나로 발사된 러시아 로켓이 11일 새벽(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목격되고 있다. 2022.08.12.
[하르키우=AP/뉴시스] 러시아의 벨고로드주에서 우크라이나로 발사된 러시아 로켓이 11일 새벽(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목격되고 있다. 2022.08.12.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군이 북동부 하르키우를 탈환하고 빠르게 점령지를 수복하면서 이곳에서 가까운 인구 40만의 러시아 벨고로트 주민들이 우크라이나군이 공격해올 것을 겁내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40km 떨어진 벨고로트 시가지에 Z 문자가 그려진 군 트럭과 장갑차들이 돌아다니고 위장복을 입은 군인들이 겨울내복등 군장비를 사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수복한 지역에서 난민들이 쏟아들어져 오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폭음은 일상적이며 상점 주인들은 폭탄 위협이 있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등 피해의식도 커지고 있다. 주민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를 걱정하고 일부는 우크라이나 군대가 러시아 영토로 진입하지 않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벨고로트 중앙 시장에서 만난 한 여인이 폭음이 울리자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우크라이나군이 이미 다가온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국민들 일상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영향받지 않도록 애쓰면서 전쟁은 먼 곳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애써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에 나서면서 벨고로트 주민들은 전쟁이 문턱에 와있는 것으로 느낀다.

시장 상인인 막심(21)은 "소문이 무성하고 사람들이 겁을 낸다"고 했다. 겨울 내의와 위장복 사냥꾼과 어부들의 장비를 팔고 있는 막심은 군인들과 가족들이 주 고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의류와 일상용품, 군장비를 파는 노점상들의 분위기는 긴장돼 있다. 벨고로트가 직접 공격을 당한 적이 없으나 멀지 않은 곳에서 러시아군의 대공 미사일이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고 있다. 폭발음이 계속 울리고 콤소몰스키 마을의 주택 등에 파편이 떨어진다.

지난 12일 사범대학, 쇼핑센터, 버스 정류장에서 소개훈련이 있었다. 당국자들은 주민들에게 사전 대비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지 당국은 우크라이나군 포격을 당하는 국경 부근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현지 기업인 데니스는 최근 돈을 들여서 마당에 3.3m 깊이의 방공호를 팠다.

많은 주민들이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느낀다. 유치원 교사인 에카테리나(21)는 주초에 유치원에 포탄 파편이 떨어졌다며 "겁이 난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그렇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미사일'이라고 소리지르며 이리저리 뛸 때마다 천둥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벨고로트 주민들은 대체로 러시아 정부와 전쟁을 지지하지만 일부는 러시아의 다른 지역이 전면전이 없는 것처럼 지낸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콤소몰스키 마을에서 온 류드밀라라는 중년 여인은 "부끄럽지도 않나!"라고 고함을 쳤다. "여기선 피를 흘리는데 모스크바에선 모스크바의 날 축제를 즐긴다. 이곳 주민들은 모두 군인들을 걱정하는데 그곳에선 파티를 벌이고 술을 마신다"고 했다.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친한 사람들에게는 러시아 정부가 전면전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말한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많은 사람들이 징집이 있을 거라며 언제 있을지를 궁금해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피난민들도 전쟁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최근 몇 달 새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수천명의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피난왔으며 특히 지난주 우크라이나군이 북동부 지역을 탈환하면서 피난민이 크게 늘었다. 일부는 우크라이나 정부 치하에 사는 것을 걱정하고 러시아 여권을 받고 점령 당국에서 일한 사람들은 협력자로 취급될 것을 겁내고 있다.

벨고로트에서 피난민들을 지원하는 율리아 넴치노바는 "피난민들은 살기 위해 병원에서, 학교에서, 상점에서 일했지만 이런 것들이 점령군에 협력한 것으로 취급된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남편이 우크라이나 당국과 싸우면서 고향 하르키우를 떠나 이곳으로 왔다.

그는 사람들이 해방군으로 생각했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에 공격당하자 도주해온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며 배신당했다고 느낀다고도 했다. "러시아군이 영원히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고 했다.

벨고로트로 피난온 사람들은 러시아군이 보복을 당하지 않으려면 피신하라고 했다고 말한다. 우크라이나가 최근 탈환한 지역에서 피난온 사람들은 우크라이나군이 현지 관청에 진입해 러시아 임시 당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지원을 받은 주민들 명단을 찾아내 협력자로 처벌할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점령당국 협력자를 10년에서 15년형으로 처벌하는 법을 제정한 것도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리나(18)라는 여성은 우크라이나 국경경비대 출신 남자친구의 개인정보가 텔레그램에 올라온 협력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피난민들에게 옷가지를 나눠주는 의복은행에서 만난 이리나는 "돌아갈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와 누이가 고향에 남았으며 러시아군이 다시 마을을 점령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10년전까지 벨고로트 주민들은 80km 떨어진 하르키우를 자주 방문해 파티도 하고 식사도 하고 쇼핑도 했었다. 많은 가족들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산다.

식당 주인인 올렉 크세노프(41)는 "벨고로트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우리 모두 하르키우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우크라이나 주민들을 러시아로 데려오는 일을 해왔다.

카페와 빵집을 운영하는 빅코리야(50)은 벨고로드 주민들에게 하르키우는 "대도시"라며 "벨고로트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주말에 하르키우의 스타고로드 식당에 가면 만날 수 있다는 농담까지 있었다"고 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분리 반군을 지원하면서 우크라이나는 공용어로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어 사용 주민들은 하르키우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러시아로 오곤 했다. 현재는 전쟁으로 두 도시 사이의 왕래가 완전히 끊긴 상태다. 기업인 데니스는 "엄청난 비극이다. 벨고로드 주민 모두가 피해를 당했다. 이곳 주민들 모두 우크라이나와 관련이 깊다"고 말했다.

데니스의 숙모인 라리사가 지난 주말 지난 5월말 러시아군이 점령한 도네츠크 지역 리만에서 피난왔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뒤로 전기도, 가스공급도 상수도도 끊겨서 주택도 80% 이상 파괴됐다고 했다. 5월초에는 어느 쪽에서 발사했는 지 모르지만 자신이 사는 아파트 건물이 미사일에 맞았다고 했다. 그 뒤 러시아군이 왔다는 것이다. 라리사(74)는 "러시아군이 와서 너무 기뻤다"고 수르칙어로 말했다. 수르칙은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가 섞인 방언이다.
 
현재 라리사가 살던 아파트는 치열한 교전 현장이다. 그는 잘 걷지 못한다며 공습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지하실로 대피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전투가 가까워지면서 우크라이나 정부 치하에서 살고 싶지 않아 피난하기로 했다고 했다.

하르키우가 고향이지만 10년전 벨고로트로 이주한 크세노프는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양국 국경 지대 주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전쟁의 참화는 언젠간 끝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서로 마주보고 살 수 있겠나"고 했다.

피난민들은 러시아군의 퇴각에 충격을 받았다. 쿠피얀스크 러시아 임시 당국에서 회계일을 하다가 지난 주말 모든 것을 버리고 피난했다는 한 여성은 자신이 처벌될 것이 두려웠다고 했다. "특별군사작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지금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러시아 국경에서 100km 가량 떨어진 쿠피얀스크에는 아직도 가족들이 남아 있다고 했다.

지난 주말 현지 방송에는 우크라이나에서 피난오는 차량들이 줄지어 러시아로 들어오는 모습이 나왔다. 벨고로트 행정 책임자 뱌체슬라프 글라드코프는 약 1300명의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지난 주말 이후 피난왔다고 밝혔다.

지난주 발락클리야에서 피난온 한 남성은 부모를 두고 왔다면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던 러시아군을 믿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거냐"고 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황을 거의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군대를 재편성하려고 철수했다고만 밝혔다. 러시아 국영 언론들도 전황을 거의 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이 방송에서 러시아군 전략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벨고로트에서 쿠피얀스크와 보우찬스크 등 우크라이나 러시아군 점령지에 약품을 지원해온 한 현지 주민은 러시아군이 처음 진주했을 때 환영했던 주민들이 러시아 통치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통신이 끊겨서 가족들과 연락도 못하고 가난 속에 절망했다. 러시아군이 실패한 이유중 하나"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일상을 회복시키지 못하자 사람들이 우크라이나군이 돌아오는 것을 받아들였다.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때문"이라고 했다.

시장에서 각종 군장비를 사고 있는 군인들은 마지막 순간에 철수명령을 받았으며 수일 내로 다시 파병될 것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한 군인은 "조금만 늦었더라도 포위됐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군이 우리 보다 훨씬 잘 무장돼 있다"고 말했다. 벨고로트 도심지에는 술에 취한 병사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한 병사는 "미국만 아니면 진작에 이겼을 것이지만 그래도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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