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리뷰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12월31일 공개)의 짐 자머시 감독은 마치 신선 같다. 한 게 없고 별 게 없는 것 같은 그림들을 무심하게 이어 붙였더니 작심한 영화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경지의 쿨한 영화, 이보다 더 영화적일 수 없는 영화가 나왔다고 해야 할까. 자머시 감독이 올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황금사자상 수상작으로 이 작품이 호명됐을 때 처음 내뱉은 말은 이것이었다 "Oh, shit!" 러닝타임 111분 간 이 영화를 즐긴 이들도 아마 똑같이 말할 것이다. "Oh, shit!" 70대 노장 감독은 영화가 마치 별 볼 일 없는 구닥다리가 된 것 같은 시대에 시네마라는 게 여전히 힙하면서 그윽할 수 있다고, 오다가 주웠다는 듯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를 툭 던져놓는다.
자머시 영화를 늘 따라다녀서 다른 표현을 쓰고 싶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단어는 없을 것 같아 다시 한 번 그 말을 가져오자면,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시적인 게 아니라 시(詩)다. 미국·아일랜드·프랑스에 있는 세 가족의 이야기는 모두 단독으로 존재하나 운율, 반복과 차이, 형식을 공유하며 하나의 영화로 그러면서 한 편의 시로 어우러진다. 배우와 그들의 분위기와 대사와 편집은 시가 보여주는 언어의 압축과 실험을 대신한다. 자머시 감독의 신작은 헐렁해보이면서도 정확히 계산된 배우들의 연기와 그들을 둘러싼 특유의 공기 그리고 역사가 집약된 대사에 편집의 리듬과 플로가 더해지면서 어떤 경지로 나아간다. 여기에 자머시 영화 특유의 미니멀리즘이 극장의 어둠에서 극대화 돼 더할나위 없이 영화스러운 순간을 자아낸다.

첫 번째 영화 '파더'는 남매가 홀로 떨어져 사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 두 번째 영화 '마더'는 자매가 홀로 떨어져 사는 어머니를 만나는 얘기다. 세 번째 영화 '시스터 브라더'는 떨어져 살던 부모가 죽은 뒤 부모가 살던 도시에서 만나게 된 남매의 스토리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유사해 보여도 다른 구도, 비슷한 듯해도 차이가 있는 이야기, 같지만 뉘앙스를 떨어뜨려 놓은 말들로 관객을 농락한다. 극 전반에 유머를 깔아놓으면서도 비애를 흩뿌리는 터치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대한 판단을 반복해서 유보하게 해 이 작품을 내내 곱씹게 한다. 유머와 비애 사이 넉넉한 여백은 이렇게나 소박한데도 깊고 다채로운 풍미를 발산하게 하는 킥이 돼준다.
가족이 오랜만에 재회해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별 일 없이 각자 집으로 되돌아간다는 아무 것도 아닌 일로도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오락을 얼마든지 허허실실 창조해낼 수 있다고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보증한다. 자머시 감독은 자식이 부모에게 용돈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미스테리와 반전을 만든다. 대화가 살짝 겉돌거나 우버 택시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으로도 긴장과 공포를 끌어낸다. 사진 한 장과 창 밖 풍경 그리고 오래된 물건 같은 것만 가지고도 애수와 고독에 젖게 한다. 여전히 세련된 감각을 잃지 않은 데뷔 46년차 감독은 영화는 영화 같은 것으로 가공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저 일상에 묻어 있는 걸 발견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얘기하는 것만 같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케이트 블란쳇, 애덤 드라이버, 톰 웨이츠, 비키 크립스 등 스타 배우들과 함께 가족이라는 존재에 뒤엉켜 있어 한 두 마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온갖 감정을 들춘다. 그 혐오, 그 짜증, 그 연민, 그 원망, 그 분노, 그 재미, 그 후회, 그 애정, 그 외로움, 그 귀찮음, 그 어색함, 그 지루함, 그 답답함, 그 죄책감, 그 난감함, 그 거리감. 좋아하지 않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는 그 난처한 마음들. 미운데 결국 사랑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했을 때의 그 심정들. 부담스럽고 싫은데도 기어코 한 자리에 모이고야마는 그 이해하기 힘든 마음들까지. 자머시 감독과 그의 영화는 언제나처럼 실없는 척 서늘하고 예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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