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 뉴스 "북한에선 김씨 일가 초상화가 목숨보다 중요"

기사등록 2023/04/26 11:49:58

북 매체, 목숨 버려 초상화 구한 '영웅" 칭송

'충성함' 전용 상자에 담아 옮겨야 하고

같은 벽면에 다른 물체 일절 허용 안돼

[평양=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21일 평양 김책공업종합대학 들머리에 걸린 북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초상화에 불이 밝혀져 있다. 2019.10.29. photo@newsis.com
[평양=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21일 평양 김책공업종합대학 들머리에 걸린 북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초상화에 불이 밝혀져 있다. 2019.10.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 뉴스(NK NEWS)는 25일(현지 시간)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를 대할 때 종교 성화를 대하듯 복잡한 규칙이 적용된다며 이는 북한에서 김씨 일가에 대한 숭배가 국가적 종교임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보도했다.

1980년대 북한 김일성대에서 공부한 러시아 출신 북한학자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겸 NK 뉴스 국장이 “김씨 숭배: 지도자 초상화 집착”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같이 평가했다. 다음은 기사 요약.

2003년 8월 28일 하계 유니버시아드 체전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 응원단들이 응원 뒤 호텔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탄 순간 도로에 걸린 현수막을 목격했다. 2000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을 확대해 실은 이 현수막은 남북 관계 진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설치한 것이었다.

응원단의 젊은 여성들이 현수막을 환영하기는커녕 격분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김정일을 지칭)의 영상이 비에 젖는 모습 때문이었다. 여성들이 운전자에게 소리를 질러 차를 세우고 숨이 차도록 달려가 김정일 영상이 젖지 않도록 품었다.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김정일 영상을 숙소로 가져갔고 이 기묘한 장면을 촬영하던 기자를 공격해 비싼 카메라를 부쉈다.

남북이 얼마나 다른 지 실감하게 만들어 남북 관계 진전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응원단 여성들로선 어릴 적부터 배운 대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1970년대 이래 북한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마오쩌뚱의 중국이나 스탈린의 소련보다도 인구 대비 지도자 초상화가 많은 나라가 됐다.

김일성 초상화가 모든 직장과 가정에 걸렸고 곧이어 아들 김정일의 초상화도 함께 걸렸다. 심지어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 사진이 걸리기도 했다.

초상화를 어느 곳에 어떤 방식으로 걸어야 하는 지에 대한 매우 복잡한 규칙이 있었지만 없는 곳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규칙이었다. 직장, 사무실, 교실, 침실, 심지어 군 텐트 안에도 초상화를 걸어야 했고 모든 기차 차량과 철도역 입구, 학교 정문에도 걸렸다.

야외에 초상화를 설치하는 경우 비나 눈이 맞지 않도록 철저한 보호조치가 취해졌다.

초상화는 만수대 창작사에서 제작한 것만 허용된다. 지금은 아프리카에 조각상을 수출해 돈벌이도 하지만 원래 만수대 창작사는 김씨 일가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초상화 관리 규정에 따르면 초상화는 빛이 잘 드는 벽면에 사람 키보다 높게 걸어야 한다. 초상화가 걸린 벽면에 다른 어떤 물건도 걸거나 배치할 수 없다.

또 문이나 창문이 없는 벽면이어야 하고 이사를 하는 경우 새 집에 가면 가장 먼저 초상화부터 걸어야 한다. 당국자들이 주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해 초상화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지를 검사한다.

초상화들은 “충성함”이라는 이름의 특수 상자에 담겨 옮겨지며 이 상자에는 초상화와 함께 먼지를 털기 위한 깃털과 부드러운 헝겊 등 청소 도구, 초상화를 옮길 때 넣을 붉은 나일론 주머니가 담겨 있다.

먼저 깃털로 먼지를 털어내고 초상화 액자의 유리를 부드러운 헝겊으로 닦아야 한다. 초상화가 일그러져 보이는 일이 없도록 젖은 수건으로 닦는 것은 금지돼 있다.

매일 청소를 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검사해 잘 유지되고 있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충성함에 있는 청소 도구를 초상화 청소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초상화부터 구하는 것이 모든 북한 주민들에게 의무이며 북한 국영 매체들은 목숨을 바쳐 성스러운 초상화를 구한 사람들의 영웅적 일화를 정기적으로 보도한다.

예컨대 2008년 식품공장 노동장 강형권이 홍수를 당하자 초상화를 비닐 봉투에 담아 옮기는 동안 다섯 살 먹은 딸이 물에 휩쓸렸다. 노동신문은 강형권이 딸보다 성스러운 초상화를 더 꽉 붙잡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딸이 살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초성화가 무사했다고 전했다.

4년 뒤 한 소녀가 홍수를 당해 초상화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고 이 사실이 김정은에게 보고됐다. 최고지도자 명령에 따라 영웅적이고 고귀한 소녀를 키워낸 공로로 소녀의 어머니와 학교 교장에게 1급 공화국 훈장이 수여되고 아버지와 몇몇 교사들에게도 다른 훈장들이 수여됐다.

2019년 북한 매체들은 침몰한 선탄 운반선 선원 김명호에 관한 기사를 길게 보도했다. 노동당 세포비서였던 김명호가 침몰하는 석탄선에 올라 초상화를 구한 뒤 젖지 않도록 상자에 담아 바다에 뛰어 들었다는 내용이다.

38시간 동안 표류한 끝에 외국 선박에 의해 구조될 때까지 김명호가 초상화를 꽉 붙들고 조금도 상하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북한 매체들은 “김동지의 영웅적 행동이 우리 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일깨웠다”고 칭송했다.

이런 일들은 북한에서 이데올로기가 광신적 신앙에 가깝다는 것을 모르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광신적 종교에서는 성물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으로 강조한다.

50대의 숙련 기술자인 김명호가 순수한 동기에서 그랬는지 아니면 초상화를 포기하면 처벌될 것을 두려워한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현재의 지도자 김정은 총비서의 초상화가 권력 승계 12년이 되도록 숭배 대상에 아직 오르지 않은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김정은의 초상화도 일부 보이기 시작했고 그가 자신의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것을 감안할 때 북한 신전의 종교 성화로 등극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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