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만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명장면이다. 거센 바람이 불며 5분여간 매섭게 쏟아지는 5톤의 비는 순식간에 공연장의 공기를 바꿔 놓으며 객석까지 덮칠 듯 웅장하고 압도적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과 파도 소리, 무대는 마치 바다 한가운데 놓인 난파선 같다. 모든 것을 잃고 허망한 표정으로 덩그러니 놓인 뱃사람 곰치와 그의 아내 구포댁의 비극적인 신세와 같다.
가진 것 없는 삶에 배 한 척 갖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칠산 앞바다에 가득한 부서(보구치)떼를 눈앞에 두고도 마음껏 나설 수가 없다. 나가기만 하면 누구보다 만선을 이룰 수 있다고 곰치는 자신만만해하지만, 빚을 독촉하며 배를 꽁꽁 묶어두는 가진 자의 횡포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비바람은 곰치를 향한 자연의 꾸중 같기도 하다. 자식을 잃고 가족들을 불행에 몰아넣으면서도 만선이라는 욕망에만 사로잡힌 곰치의 아집을 향한 일침이다.
한국 근현대 대표 극작가인 천승세가 쓴 희곡이다. 1964년 국립극장 희곡 현상공모 당선작으로, 그해 7월 공연됐다. 전남 목포 출신으로 마도로스이기도 했던 천승세가 남해 바닷가를 배경으로 쓴 구수하고 차진 사투리가 우리말이 가진 말맛을 보여준다.
중견 배우 김명수와 정경순이 초연에 이어 다시 돌아와 극의 중심을 잡는다. 9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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