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평화상 수상자로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이번 추모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숭모회원 등 250여 명이 참석한다. 추모식은 국민의례, 약전 봉독, '최후의 유언' 낭독, 추모식사 및 추모사, 안중근 동양평화상 시상, 추모공연, 헌화 순으로 50분간 진행된다.
특히 이날 추모식에서는 숭모회에서 제정한 '제3회 안중근 동양평화상' 시상식이 함께 진행된다. 안중근 동양평화상은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평화사상을 기리고 미래세대로 계승하기 위한 상이다. 국내외에서 안중근 의사와 관련한 학술연구 및 선양 활동 등에 공헌한 자를 매년 선발해 상패와 2000만 원의 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올해 안중근 동양평화상 수상자로는 신용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신 명예교수는 한국민족의 기원에서부터 독립협회,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한국 근대사, 독도 등 폭넓은 역사분야에 대한 관심과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를 재조명한 바 있다.
또 안중근 의사의 교육운동에서부터 하얼빈 의거에 이르는 국권회복운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 밑바탕에 평화사상이 자리해 있음을 체계적으로 논증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기를 맞아 조국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쳤던 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혼을 엄숙한 마음으로 되새길 것"이라며 "우리의 미래세대들에게도 온전히 계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고종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이 돼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해 경흥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했다.
또 그는 러시아령의 블라디보스톡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모색했고, 1909년에는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 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을 맹세했다.
1909년 9월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10월26일 9시경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러시아군이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그는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이후 그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돼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비판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 평화의 정착을 주장하던 그는 1910년 2월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26일 순국했다.
정부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