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임순례와 액션, 이 이상한 조합의 정체

기사등록 2023/01/19 09:57:20

임순례, 영화 '교섭'으로 5년만에 복귀

"전작보다 제작비 10배 커 흥행 돼야"

잔잔한 영화 하다가 액션물 처음 도전

"한국영화 다루기 힘든 소재에 끌려"

"생명 해치지 않는 액션 하고 싶었다"

배우 황정민과 22년만에 재회도 화제

"그간 대단한 프로페셔널이 됐더라"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교섭' 예고편에서 수염을 멋지게 기른 배우 현빈이 오토바이를 타고 언덕을 질주하는 액션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는 분명 액션 블록버스터를 주로 만드는 감독이 연출한 것 같다. 그런데 예고편엔 이런 문구가 하나 뜬다. "임순례 감독 작품." 액션와 임순례, 참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임순례(63) 감독은 1996년 데뷔 이후 대체로 잔잔했다. 스릴러 성격을 띈 '제보자'(2014)를 만든 적이 있긴 하지만 장르의 매력보다는 저널리즘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다. '제보자'를 빼면 전작인 '리틀 포레스트'(2018)가 딱 임 감독스러운 영화였다. 그랬던 그가 5년만에 가지고 나온 새 영화 '교섭'은 의외로 액션스릴러다. '리틀 포레스트' 제작비가 15억원, 새 영화엔 약 150억원이 들었다. 개봉을 앞두고 만난 임 감독은 "오랜만에 흥행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섭'은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영화다. 2007년 '샘물교회 피랍 사건'을 모티브 삼아 만들어진 이 작품은 아프가니스탄이 배경이고, 탈레반과 교섭에 나선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의 활약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부분 장면을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찍었고, 현지 배우들을 섭외해야 했고, 실화를 극화하면서 좀 더 다이나믹한 장면들을 추가해야 했다. "처음에는 예산 생각을 크게 하지는 않았어요. 막상 외국에서 촬영을 시작하니까 느낌이 오더라고요. 거기에 코로나 문제로 예산이 더 늘었습니다. 뒤늦게 '현타'가 오더라고요."(웃음)

'교섭'은 애초에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돈을 많이 써야 한다는 문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샘물교회 피랍 사건'이 당시 매우 큰 공분을 샀던 일이어서 자칫 이 영화가 영화로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엉뚱한 이슈를 만들어 낼 가능성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 감독은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고 하면서도 결국 이 작품을 택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두 가지 메시지에 관해 얘기했다. "특정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두 가지 극단적 믿음이 양극단에서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납치돼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인데 납치된 국민의 잘잘못을 따져서 구한다는 건 맞지 않는 거죠. 국가의 책임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그는 '교섭'의 매력에 관해 얘기했다. "한국영화에서 쉽게 다루기 어려운 소재라는 점도 끌렸어요."

임 감독은 액션스릴러 영화를 만들면서도 자기 색을 보여준다. '교섭'은 탈레반·인질·살해·협박·죽음·테러 등 무시무시한 단어들로 가득차있지만, 사람이 죽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나온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묘사는 일절 없다. 피가 튀는 장면도 없다. 임 감독은 "원래 죽는 사람이 아무도 안 나오게 만들려고 했다"며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안 되더라. 그래서 딱 한 명만 죽게 했다"고 말했다. 임 감독이 이처럼 순한 액션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생명을 해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실제로 못 보는데다가 도저히 그런 연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센 장면을 넣으면 관객에게 자극을 줄 수는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정말 못 하겠어요. 제작자는 답답하겠죠. 앞으로 제가 또 액션영화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똑같을 거예요."

'교섭'은 임 감독과 황정민의 재회로도 화제를 모은다. 두 사람은 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에서 함께 일했다. 당시 임 감독은 홍상수·김기덕 감독 등과 함께 주목받는 신예 감독 중 한 명이었고, 연극과 뮤지컬 등을 하던 황정민은 이제 막 영화판으로 넘어온 무명 배우였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임 감독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연출가가 됐고, 황정민은 영화계 최고 스타가 됐다. 임 감독은 '교섭'을 강한 에너지로 이끌어 줄 배우를 찾다가 황정민에게 시나리오를 건넸다. 황정민은 커리어 시작을 함께한 임 감독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사실 그간 저와 황정민씨는 결이 달랐죠. 가는 길이 다르니까 황정민씨에게 제안할 역할이 없었어요. '교섭'을 할 때가 돼서야 그런 기회가 온 거고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할 땐 황정민씨와 소통을 많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조연이었으니까, 깊은 얘기를 하기는 어려웠죠. 이번에 다시 만나보니까 정말 대단한 프로페셔널이 돼 있더라고요. 관객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요. 축적된 노하우가 있는 거죠. 배우와 스태프들 사이에서 중심이 돼줬고요. '교섭'은 사실 흥행 부담이 조금 있는 영화잖아요. 그런데도 선택해준 게 참 고맙죠."

액션이라는 의외의 선택을 해 관객을 놀라게 한 임 감독은 또 한 번 새로운 길을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차기작 계획을 묻자 드라마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새 영화 투자가 잘 안 돼요.(웃음) 30분 분량 8회 정도 되는 시리즈를 하나 작업 중입니다. 또 다른 시리즈도 함께 준비 중인데, 아마 먼저 작업이 끝내는 걸 우선 선보일 것 같아요." 임 감독은 제작비 규모나 장르, 플랫폼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고 싶은 게 있고 그걸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교섭'이 잘 되면 선택의 범위는 넓어지겠죠.(웃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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