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일한 넷플릭스 영화 흥행작
첫사랑 추억 끄집어내…세계 2위 입소문
클리셰 가득하지만 90년대 감성 녹여 재미↑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김유정 주연 '20세기 소녀'가 넷플릭스 영화의 자존심을 세웠다. 넷플릭스는 2016년 국내 상륙 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왔지만, 유독 영화 흥행과 거리가 멀었다. 송중기 주연 '승리호'(감독 조성희·2021)를 제외하면 관심 받은 작품은 손에 꼽기 힘들 정도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지옥'(2021), '지금 우리 학교는'·'수리남'(2022) 등이 흥행해 전 세계에 K-콘텐츠 열풍이 분 것과 비교됐다. 장르물 대세 속 20세기 소녀는 뻔한 첫사랑 이야기로 전 세계 시청자 문을 두드리고 있다.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가 가득하지만, 1990년대를 배경으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성을 입혔다.
30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전날 20세기 소녀는 세계 넷플릭스 영화 부문 5위를 차지했다. 26일 세계 2위에 오른 후 세 계단 떨어졌지만,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대만, 베트남 등 총 4개국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일본을 비롯해 볼리비아, 에콰도르, 온두라스, 말레이시아, 니카라과, 페루, 필리핀, 살바도르, 태국 등 10개국에서는 2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1999년 사랑보다 우정이 중요한 17세 소녀 '나보라'(김유정)가 절친 '김연두'(노윤서)의 첫사랑을 이뤄 주기 위해 사랑의 큐피트를 자처하는 이야기다. 보라가 연두의 짝사랑 상대인 ''백현진'(박정우)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 알려준다'는 설정 외에 크게 새로운 점은 없다. 현진 절친 '풍운호'(변우석)와 가까워지면서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점 역시 로맨스 영화의 정석을 보여줬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2012~2015)와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에서 보여준 90년대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비디오테이프와 캠코더, 삐삐, 공중전화, PC통신 등이 대표적이다. 보라가 등교길 버스에서 우연히 현진을 만나고, 급정거하는 바람에 그의 무릎에 앉게 되는 장면부터 식상하지만 설렘을 줬다. 현진 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리서치기관 상담직원인 척 전화하고, 아픈 척 양호실에 가고, 방송반에 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 등도 학창시절 추억을 끄집어냈다. 그 당시를 경험한 이들에겐 익숙하지만, 1990~2000년대생들에겐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김유정이 영화의 중심을 잘 잡아줬다. 방우리 감독은 실제 경험을 녹여 시나리오를 썼는데, 김유정을 염두에 뒀다고 할 만큼 첫사랑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 아역 시절부터 성인이 된 후에도 줄곧 로맨스물을 해왔기에 이질감이 없었고,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조금 낯간지럽고 오글거리는 장면도 '피식' 웃음 짓게 만들곤 했다. 김유정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큼 변우석, 박정우의 매력이 많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변우석 연기가 어색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김유정의 매력만으로도 관객들을 끌어당기기 충분했다. 결말 관련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후반부 반전과 한효주, 공명, 그룹 '워너원' 출신 옹성우 등 성인연기자의 특별출연으로 재미를 더했다.
올해 넷플릭스 영화는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다. '모럴센스'부터 '야차' '카터' '서울대작전'까지 혹평과 함께 외면을 받았다. 방 감독은 20세기 소녀가 장편 데뷔작인데, 로맨스 영화의 흥행 공식을 따르면서도 섬세한 연출력과 뛰어난 영상미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특히 대만 청춘영화에서 볼 법한 푸른 색감과 아날로그 감성이 돋보였다. 홍보 인터뷰에서 "추억을 가지고 만들다 보니 클리셰를 벗어나기 힘들었다"면서도 "우리만의 색깔을 입혀 정면 승부하려고 했다. (클리셰가 아닌) 클래식으로 봐준 점이 힘이 된다"고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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