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P는 Project Photo의 약자로 뉴시스 사진부 연재 기획 기사입니다>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4.3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 4.3평화공원에 들어서니 모녀상 ‘비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조형물에 담긴 다양한 의미와 역사적 배경이 있지만, 가만히 조형물을 보고 있으면 별다른 설명 없이도 제주 4.3의 슬픔이 가슴에 와닿는다. 모녀상 ‘비설’은 1949년 1월 봉개동 거친오름 동북 쪽으로 피신하던 중 희생된 25살 젊은 엄마와 그의 두 살배기 딸을 형상화한 것으로, 후일 눈더미 속에서 발견된 시신을 기리고자 설치됐다.
살기 위해 산으로 오르거나 동굴로 기어들어갔던 제주섬의 주민들. 무장대가 와해된 이후, 하산하면 과거의 죄를 묻지 않고 생명을 보장해 주겠다는 말을 믿고 내려왔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법이 정한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치 않은 불법 군법회의였다. 군법회의에서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사형·무기형·15년형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여성들도 남편이나 아들이 사라졌다면 ‘도피자 가족’이 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 결과 1660명의 주민이 제주비행장에서 총살되거나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감금되었다. 마포형무소(무기형), 대구형무소(15년형), 대전형무소(7년) 등으로 수감되며 제주를 떠난 이들 중 다시 제주 땅을 밟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단 한 명도...
제주 4.3평화공원 가장 높은 곳에 이들 행불인 표지석이 있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표지석 앞에 마음이 경견해진다. 표지석 하나하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뒤쪽에는 행불인의 인적사항, 왼쪽에는 유족 대표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지역 별로 나뉘어 자리 잡은 표지석들 앞에는 국화가 한 송이씩 놓여져 있었는데, 이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제주 4.3평화공원 가장 높은 곳에 이들 행불인 표지석이 있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표지석 앞에 마음이 경견해진다. 표지석 하나하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뒤쪽에는 행불인의 인적사항, 왼쪽에는 유족 대표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지역 별로 나뉘어 자리 잡은 표지석들 앞에는 국화가 한 송이씩 놓여져 있었는데, 이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제주는 4.3사건을 겪으며 말 그대로 황폐화됐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9인 3만 명의 소중한 인명이 집단으로 희생되었고, 3만9천여 동의 가옥이 잿더미가 되어 주민 9만여 명이 이재민 신세가 되었다. 정신적 물질적 피해 뿐 아니라 전통적인 제주공동체가 철저히 파괴됐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에 공식 신고한 희생자만도 1만5천 명이 넘는다. 이 중 86%는 토벌대에 의해 희생됐고, 어린이·노인·여성 등 노약자의 희생이 무려 33%를 차지했다.
제주 4.3평화기념관 전시실에 들어서 동굴을 지나면 가장 먼저 백비를 만날 수 있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제주 4.3평화기념관 전시실 초입에는 백비(白碑)가 세워져 있다. 백비란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데, 소위 ‘제주 4.3사건’으로 알려진 역사적 사건은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4.3은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불려왔다. 제주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이념 분쟁으로 시작된 슬픈 역사. 분단의 시대를 넘어 통일의 그날 진정한 4.3의 이름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제주 4.3평화기념관 전시실 초입에는 백비(白碑)가 세워져 있다. 백비란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데, 소위 ‘제주 4.3사건’으로 알려진 역사적 사건은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4.3은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불려왔다. 제주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이념 분쟁으로 시작된 슬픈 역사. 분단의 시대를 넘어 통일의 그날 진정한 4.3의 이름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