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의 책과 사람들]세계를 뒤흔든 열흘

기사등록 2021/11/20 06:00:00

[서울=뉴시스] 세계를 뒤흔든 열흘 (사진=한상언 제공) 2021.11.15.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세계를 뒤흔든 열흘 (사진=한상언 제공) 2021.11.1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1년, 워렌 비티가 제작, 연출, 주연을 맡은 영화 '레즈'가 제작됐다. 이 작품은 1910년대 미국의 유명한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존 리드의 생애를 다루고 있었다.    

이 영화는 좀 특별한 형식의 전기 영화였다. 실존인물인 존 리드를 기억하는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한 인물의 공식적인 역사뿐만 아니라 주위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기억하는 그 인물의 은밀한 사생활까지를 마치 벽돌을 쌓듯이 차곡차곡 보여준다. 역사적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채택한 방식이었다.  

존 리드를 기억하는 증언자 중에는 소설가 헨리 밀러나, 사회운동가 스콧 니어링처럼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인들부터 1910년대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현장에서 활동하던 무명의 활동가들까지 여러 사람들이 망라됐다. 그들은 존 리드와 그의 연인 루이스 브라이언트를 기억하며 오레건주 출신인 급진적 저널리스트가 그리니치 빌리지의 급진 서클 소속의 여성과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됐고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이어진 러시아 혁명이라는 세계사적 전환기에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증언한다. 80-90대의 노인들의 이야기는 존 리드와 루이스 브라이언트의 생애에 초점이 가 있지만 실은 존 리드를 통해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는 것처럼 회안에 젖어 있기도 하다.     

1961년 엘리아 카잔이 연출한 '초원의 빛'의 주인공으로 할리우드에 등장한 워렌 비티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의 자리에 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신좌파가 득세하기 시작한 1960년대, 인권운동 및 반전운동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미국에서는 과거 미국 사회주의 운동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워렌 비티는 러시아 혁명에 공헌한 혁명가들이 안치된 모스크바 크렘린 벽에 묻힌 첫 번째 미국인 존 리드의 생애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의 삶을 추적하여 영화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1971년부터 1979년까지 당시 생존해 있던 과거 미국의 사회주의 운동과 문화 예술계에서 활동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필름에 담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무려 6000페이지가 넘는 트리트먼트로 정리됐으며 1979년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존 리드 역의 워렌 비티를 비롯해 루이스 브라이언트 역의 다이안 키튼, 극작가 유진 오닐 역의 잭 니컬슨, 여성운동가 엠마 골드먼 역의 모린 스테이플턴과 같은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제작이 시작된 후 10년 만에야 완성될 수 있었다. 그 사이 세계는 신좌파를 대신해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1919년에 초판이 발간된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존 리드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르포문학의 걸작이다. 미국인 저널리스트가 목격한 러시아 10월 혁명의 열흘을 기록한 이 책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충만했던 러시아 혁명의 중요한 분기점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의 추천사는 10월 혁명으로 권력을 쥔 레닌이 썼으며 전 세계에 10월 혁명의 생생한 과정과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의 생각, 활동, 비전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기에 다수의 나라에서 번역, 소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 두레출판사 장영덕 번역으로 처음 번역됐으며 2005년 서찬식 번역으로 책갈피에서 다시 출간됐다. 두레출판사의 책이 반공체제 상황에서 알려지지 못한 러시아 혁명의 전모를 소개하면서 사회 변혁의 동력으로 러시아 혁명을 살펴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면,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후 다시 번역된 이 책은 지나간 20세기의 역사적 순간을 돌아본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후 10월 혁명 기념일은 과거의 사건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가 창궐한 2021년 11월 7일, 모스크바 크렘린 광장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10월 혁명 기념식을 열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때 크게 성공했으나 결국에는 실패한 과거를 기념하는 이들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광장에 서 있을까? 적기를 들고 광장에서 선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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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세계를 뒤흔든 열흘

기사등록 2021/11/20 06:00: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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