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민심]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명절 현수막 정치 '갑론을박'

기사등록 2021/09/15 07:01:49 최종수정 2021/09/15 0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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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불법현수막 '기승'…미관·교통안전 저해에 행정비용 초래
'정비주체' 구청장도 편승…일선 공무원 "사실상 손 놨다"
"풍습이 낳은 문화" "정치신인에겐 이 방법 뿐이다" 반론

associate_pic4[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14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남구 백운광장에 구청장 명의의 추석 귀성객 맞이 불법 현수막이 걸려있다. 지정 게시대가 아닌 곳에 현수막을 내걸 경우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라 과태료 부과대상이다. 2021.09.14. hyein0342@newsis.com

[광주=뉴시스] 변재훈 김혜인 기자 = 민족명절 추석을 앞두고 내년 지방선거 출마 예비 후보자들이 도심 곳곳에 내건 '귀성객 맞이' 현수막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엄연한 불법 관행이고 정비 과정에서 행정비용 낭비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거세지만, 고유 명절 풍습이 낳은 정치 문화이고 현직에 비해 얼굴 알릴 기회가 마땅치 않은 도전자들에겐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반론도 있다. 

15일 광주 5개 자치구 등에 따르면, 최근 광주 지역 주요 상권·교차로 등 도심 곳곳에 내년 지방선거 단체장·교육감·지방의원 입후보 예정자의 명절 인사 현수막이 나붙고 있다.

대부분 입후보 예정자 이름·직함·사진과 함께 귀성객 환영, 명절 덕담 등 의례적 수준의 인사가 담겨 있다.

추석이 다가올 수록 '명절 밥상머리 민심'에 호소하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치인들이 내건 현수막은 하루 밤 사이 수십 건씩 늘고 있다.

그러나 모두 불법이다. 각 자치구가 설치한 현수막 지정 게시대가 아닌 도로시설물, 가로수 등지에 내걸린 현수막은 원칙적으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위반'에 해당, 과태료 처분 대상(면적 비례·1인 당 최대 500만 원)이다.

불법 현수막은 도심 미관을 해치고, 운전자 시야 혼선을 야기해 교통사고 위험을 높인다. 각 자치구마다 수거·폐기에 투입하는 행정력도 소모적이다.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선출직 입후보 예정자들이 공공연하게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불법 현수막 정비는 기초자치단체 소관 사무인데도, 현직 구청장들까지 '명절 인사' 현수막을 마구잡이로 걸고 있다.

청사 외벽에만 현수막을 게시한 북구를 제외한 구청장 4명 모두 도심 곳곳에 불법 현수막을 내걸었다. 현직 구청장이 불법 현수막을 엄단해야 할 책무를 잊은 채 스스로 법을 어긴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자영업자 이모(34·여)씨는 "상인들이 가게 홍보를 위해 내건 현수막을 '불법'이라고 수거하면서 정작 구청장은 불법 현수막을 마구 걸고 있다"며 '내로남불'이라고 꼬집었다.

김모(52)씨는 "어느 교차로를 가나 아파트 분양 광고 현수막이 나부끼는데 이젠 추석 맞이 정치인 현수막까지 기승이다. 도심 미관을 해치고 있다"고 밝혔다.
associate_pic4[광주=뉴시스] 불법광고물 정비반원이 광주 광산구 산월동 한 도롯가에 내걸린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wisdom21@newsis.com
불법 현수막 정비를 도맡는 자치구 일선 공무원들은 난처하다. '명절 맞이' 현수막이 아침이면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지만 인력과 장비가 태부족인 데다가, 수거 시점·장소에 따라 입후보 예정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수거 업무는 각 동별로 순회하며 이뤄지나, 지역구는 동 단위를 뛰어넘기 때문에 입후보 예정자들이 현수막을 건 위치에 따라선 "왜 내 것만 떼느냐"는 거센 항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민원 또는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정비키로 한 구역 내 현수막은 일괄 수거하는 것이 원칙이다. 특별히 구청장 명의 현수막을 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청장 명의 현수막이 내걸린 교차로 주변 정비는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일선 공무원들은 "눈치가 보인다", "구청장이 현수막을 건 주변은 사실상 방치됐다", "적극적으로 나서기 곤란하다" 등의 입장이다.

태풍 북상·강풍 등 낙하 사고 등 안전 우려가 클 때 자치구 내 상습 게시구역 내 모든 현수막을 떼는 일제정비가 아니라면 손을 놓은 것이다. '명절 맞이' 현수막만 유독 '초법 지대'에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명절 연휴가 끝난 뒤 입후보 예정자들이 손수 회수하는 비율은 '0'에 가깝다. 결국 구청 정비반원들이 일일이 떼야 한다.

associate_pic4[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14일 오후 광주 남구 백운광장에 구청장을 비롯한 입후보예정자 명의의 추석 맞이 불법 현수막이 걸려있다. 지정 게시대가 아닌 곳에 현수막을 내걸 경우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라 과태료 부과대상이다. 2021.09.14.hyein0342@newsis.com
반면 전혀 이해 못할 일도 아니라는 반응도 있다.

최모(76·여)씨는 "구청 명의의 명절 인사 현수막은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연휴가 끝나면 수거하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한모(26)씨는 "추석 인사 현수막을 보면서 '이런 정치인도 있었구나'하는 생각도 한다"며 "정치인들도 코로나19로 유권자와 대면할 자리가 줄었을 것이다. 유권자는 새 인물을 알게 되고, 입후보 예정자들은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만큼 서로에게 좋은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입후보 예정자들은 "법에 어긋나지만 관행처럼 이어져 온 우리나라 고유의 정치 문화"라고 주장한다. '민족대이동'의 귀경·귀성 행렬이 잇따르고 덕담을 주고 받는 고유 명절 풍습이 고스란히 담긴 문화라는 이야기다.

선거에서 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너나할 것 없이' 현수막을 내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지방의원 입후보 예정자는 "문화·관념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남들 다 거는데 현수막 하나 안 걸면 유권자들은 '인사도 할 줄 모른다'고 비아냥댈 것이다"고 밝혔다.

한 지역 정치인은 "애당초 현수막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며 "현직 구청장·지방의원은 임기 4년 내내 구정 또는 의정 성과를 알리는 현수막을 수시로 내건다. 정치 신인 입장에선 필사적으로 명절 맞이 현수막이라도 걸어야 한다"고 털어놨다.

한편, 광주 시 전역에서 지난 7월부터 이 달 현재까지 불법 광고물 단속 건수는 13만6787건(과태료 7억3933만7080원)에 이른다. 특히 추석 명절을 앞둔 9월 둘째주 중 단속량은 1만2490건으로, 지난 8월 둘째 주 1만1113건보다 12.4% 증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wisdom21@newsis.com, hyein034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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