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40자' 연극, '거리두기'로 '거리두기'를 논하다

기사등록 2021/07/23 16:58:48

[서울=뉴시스] 연극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효과 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2021.07.23. (사진 = 극단 성북동비둘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효과 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2021.07.23. (사진 = 극단 성북동비둘기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효과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 코로나바이러스를 중심(中心)으로'

무려 40자다. 논문을 연상케 하는 제목만 접한다면,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신작 연극은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극은 진지하기보다 풍자적이고, 어렵다기보다 유쾌하다. 

독일 극작가 겸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서사극 운동'을 가져와 '거리두기'를 논한다. 브레히트 '서사극 운동'의 핵심 이론인 '거리두기'와 코로나19 시대의 '거리두기'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서사극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허구라는 점을 강조, 관객이 비판적으로 극을 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을 거리두기 관람법으로 명명한다. 연극 용어 '낯설게 하기'로도 알려져 있다. 심리적인 것에 가깝다.

그런데 코로나19 창궐 속 거리두기는 진짜로 신체를 멀리해야 하는 '물리적 거리두기'다.

[서울=뉴시스] 연극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효과 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2021.07.23. (사진 = 극단 성북동비둘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효과 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2021.07.23. (사진 = 극단 성북동비둘기 제공) [email protected]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김현탁 연출은 '거리두기'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은 팬데믹 시대에 (내포된 실질적 의미가 다르더라도) '거리두기'를 중요하게 여긴 브레히트를 통해 연극의 가치를 톺아본다.

극은 '가면의 사용' '경극의 영향' '역사화' '이화효과' '노(能)의 영향' '제4의 벽사용' '막간극' 등 브레히트하면 떠오르는 연극 전문 용어들로, 챕터를 나눴다. 각 챕터 성격에 맞는 극을 옴니버스 식으로 보여준다.

각 챕터 속 내용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배우들과 관객의 심리적·물리적 거리다. 11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무대와 12명의 관객이 앉는 객석 사이엔 투명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이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극 초반에 배우들과 관객들은 '시장에 가면…' 게임을 한다. 일종의 '아이스 브레이킹'이다. 이후 두 집단의 심리적 거리는 한껏 줄어든다. 거리두기 소재 역시 아이러니하게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준다.

막판에 극의 시선은 민주화 시민운동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로 향한다. 미얀마를 위한 노래를 부른다. 생소할 수 있는 이 흐름이 전혀 낯설지 않다. 거리두기로 인해 자칫 멀어질 수 있는 '글로벌 화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거리두기 시대에 먼곳과 '연대'가 중요함을 얘기한다. 거리두기 시대에 거리두기를 소재로 마음의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연극은 범상치 않다.

[서울=뉴시스] 극단 성북동 비둘기 상주공간 '뚝섬 플레이스'. 2021.07.2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극단 성북동 비둘기 상주공간 '뚝섬 플레이스'. 2021.07.23. [email protected]
성북동 비둘기의 상주극장인 뚝섬 플레이스 역시 다른 공연장들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연극계 성지' 대학로에 떨어져 있는 성수동에 위치해 있다.

대대적인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이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돌아, 인적이 드문 위치에 있는 공연장을 찾아가는 것도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연극 관람법이다.

개발에 밀려난 비둘기의 삶을 노래한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와 같은 이름을 지닌 이 극단의 삶도 거리두기에 가깝다. 성북동에 시작해 한남동으로 밀려났다가, 다시 성수동에 겨우 둥지를 튼 극단이다. 이곳에서 성석주, 김미옥, 조용의 등 신체 훈련이 잘 된 배우들을 보는 건 행운이다. 오는 25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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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40자' 연극, '거리두기'로 '거리두기'를 논하다

기사등록 2021/07/23 16:58:48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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