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0자다. 논문을 연상케 하는 제목만 접한다면,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신작 연극은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극은 진지하기보다 풍자적이고, 어렵다기보다 유쾌하다.
독일 극작가 겸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서사극 운동'을 가져와 '거리두기'를 논한다. 브레히트 '서사극 운동'의 핵심 이론인 '거리두기'와 코로나19 시대의 '거리두기'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서사극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허구라는 점을 강조, 관객이 비판적으로 극을 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을 거리두기 관람법으로 명명한다. 연극 용어 '낯설게 하기'로도 알려져 있다. 심리적인 것에 가깝다.
그런데 코로나19 창궐 속 거리두기는 진짜로 신체를 멀리해야 하는 '물리적 거리두기'다.
극은 '가면의 사용' '경극의 영향' '역사화' '이화효과' '노(能)의 영향' '제4의 벽사용' '막간극' 등 브레히트하면 떠오르는 연극 전문 용어들로, 챕터를 나눴다. 각 챕터 성격에 맞는 극을 옴니버스 식으로 보여준다.
각 챕터 속 내용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배우들과 관객의 심리적·물리적 거리다. 11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무대와 12명의 관객이 앉는 객석 사이엔 투명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이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극 초반에 배우들과 관객들은 '시장에 가면…' 게임을 한다. 일종의 '아이스 브레이킹'이다. 이후 두 집단의 심리적 거리는 한껏 줄어든다. 거리두기 소재 역시 아이러니하게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준다.
막판에 극의 시선은 민주화 시민운동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로 향한다. 미얀마를 위한 노래를 부른다. 생소할 수 있는 이 흐름이 전혀 낯설지 않다. 거리두기로 인해 자칫 멀어질 수 있는 '글로벌 화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거리두기 시대에 먼곳과 '연대'가 중요함을 얘기한다. 거리두기 시대에 거리두기를 소재로 마음의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연극은 범상치 않다.
대대적인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이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돌아, 인적이 드문 위치에 있는 공연장을 찾아가는 것도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연극 관람법이다.
개발에 밀려난 비둘기의 삶을 노래한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와 같은 이름을 지닌 이 극단의 삶도 거리두기에 가깝다. 성북동에 시작해 한남동으로 밀려났다가, 다시 성수동에 겨우 둥지를 튼 극단이다. 이곳에서 성석주, 김미옥, 조용의 등 신체 훈련이 잘 된 배우들을 보는 건 행운이다. 오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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