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SK 와이번스에서 뛰던 김광현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실력으로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두둑한 연봉까지 보장돼 남부러울 것이 없던 김광현은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김광현에게 손을 내민 구단은 세인트루이스였다. 세인트루이스는 2년 최대 1100만 달러(약128억원)짜리 계약서를 내밀어 김광현의 사인을 받아냈다.
달콤할 줄만 알았던 빅리그 생활은 시작부터 꼬였다. 야구 도사들로 채워진 MLB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이미 예상됐던 부분.
정작 그를 힘들게 만든 것은 경기 외적인 요소들이었다. 한창 몸을 만들던 중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을 덮쳤다. 스프링캠프는 즉각 중단됐고, 정규시즌 개막은 무기한 연기됐다.
설상가상으로 세인트루이스 내 선수단 집단 감염까지 발생하면서 구단 일정 조차 올스톱됐다.
프로 데뷔 후 처음 외국 생활에 나선 김광현이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가족들도 한국에 있던 터라 외로움은 날로 커졌다. 그래도 김광현은 묵묵히 공을 던졌다. 귀국길에 오르지 않고 미국에 남아 언제가 될 지 모를 데뷔를 기다렸다.
캐치볼 파트너로 나선 베테랑 투수 애덤 웨인라이트는 외로운 김광현에게 큰 힘이 됐다.
조금은 어색한 옷을 입은 김광현은 7월25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개막전에 5-2로 앞선 9회초 등판, 1이닝 2피안타 2실점(1자책점)으로 진땀 세이브를 수확했다.
세인트루이스는 선수 10명을 포함해 총 18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5일까지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데뷔전을 치른 김광현에게 이번에는 행운이 찾아왔다. 선발 요원인 마일스 마이컬러스와 카를로스 마르티네스가 모두 부상자명단(IL)에 오른 것.본의 아니게 선발 투수로 변신한 김광현은 8월18일 시카고 컵스전에 첫 선발 등판해 3⅔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가능성을 보였다.
한 차례 선발의 맛을 본 김광현은 이후 탄탄대로를 걸었다. 두 번째 경기인 신시내티 레즈(8월23일)전에서 6이닝 3피안타 무실점 역투로 그토록 갈망하던 빅리그 첫 승을 올렸다.
승리와 연이 닿진 않았지만 9월15일 밀워키전 7이닝 6탈삼진 3실점은 이번 시즌 최고의 경기로 기억된다. 타선의 지원만 없었을 뿐 완벽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밀워키전까지 치른 김광현의 선발 5경기 평균자책점은 0.33까지 떨어졌다.
신인 선발 투수의 데뷔 5경기 평균자책점 0.33은 집계를 시작한 1913년 이후 양대리그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미국 언론에서 신인왕 후보로 손색이 없다는 호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츠버그전 5⅓이닝 4실점(9월20일)이 부진으로 다가올 정도로 위용있는 선발 투수로 입지를 다진 김광현은 25일(한국시간) 밀워키전에서도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시즌 3승째.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물음표가 따라다녔던 김광현은 포스트시즌을 기대케 하는 투수로 완전히 거듭났다. 신인왕 레이스에서는 다소 멀어진 감이 있지만 연착륙에는 확실히 성공했다.
한편 김광현의 추후 일정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세인트루이스가 28일까지 가을야구 진출을 확정하면 수순대로 포스트시즌을 소화할테지만, 반대의 경우 29일로 예정된 순위 결정전에 나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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