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우유 남아도는데 가격 올린다니…

기사등록 2020/07/31 15:23:11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문자
  • URL
associate_pic4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값비싼 우유 먹지도 않는데, 마음대로 가격을 올리느냐."

낙농가와 유업계의 지루한 싸움이 드디어 끝났다. 우윳값 인상을 두고 무려 8차에 걸쳐 협상을 벌였다. 당초 5차를 예정했지만,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아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결국 낙농가가 승리했다. 낙농진흥회는 지난 28일 이사회를 열고 원유 가격을 ℓ당 21원 올리기로 확정했다. 2018년 인상 폭인 ℓ당 4원보다 5배 가량 오른 규모다. 우유회사가 낙농가로부터 사오는 원유값은 ℓ당 1034원에서 1055원으로 인상한다. 

우유가 남아도는 데 가격 인상이라니 아이러니할 수 밖에 없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우유 소비량은 33㎏으로 전년 대비 1㎏ 줄었다. 흰 우유 소비량은 1997년 31.5㎏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2018년엔 26㎏까지 떨어졌다. 올해 유업계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초·중·고등학교 개학 연기로 급식 우유가 중단되자, 재고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특히 서울우유와 남양유업은 학교 급식 우유 전체 중 각각 50%, 25%를 차지하고 있어 큰 타격을 입었다.

원윳값은 매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하는 우유 생산비의 10% 범위에서 정한다. 전년 대비 우유 생산비 증감률이 ±4% 미만이면 2년마다 협상한다. 지난해는 2018년 우유 생산비가 2017년 대비 1.1% 증가한 데 그쳐 협상이 없었다. 올해 낙농가는 지난해 우유 ℓ당 생산비가 790.06원으로 2017년 대비 23.33원 올라 원유 가격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업계는 코로나19로 소비가 위축됐다며 동결을 요구했다.

물론 낙농가는 한 발 양보하는 자세도 보였다. 코로나19로 소비가 위축된 것을 감안해 내년 8월로 인상 시기를 미룬 것이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커피, 아이스크림 등 우유를 활용한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원유가격 연동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3년 이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는 낙농가와 유업계가 개별적으로 가격을 결정했다. 낙농가를 보호하고 유업체와 갈등을 줄이기 위한 취지는 박수를 쳐줄만 하지만 자세히 조금만 들여다보면 허점 투성이다. 생산비를 원윳값에 탄력적으로 반영할 뿐, 소비자 수요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인 원유가격 연동제 개선이 시급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어렸을 때 '우유를 많이 먹어야 키 큰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곤 했다. 1970~1980년대만 해도 우유 먹기를 장려했지만, 이제 영양 과잉시대다. 먹거리가 풍부하고, 우유를 대체할 음료도 다양하다. 유업체들도 원유를 사용하지 않는 제품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 변화를 꾀하는 모양새다. 언젠가 어린 아이들이 우유를 먹지 않고, 유업체도 우유를 만들지 않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르겠다.


◎공감언론 뉴시스 plain@newsis.com

기사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