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 외교문서]노태우 정권, '노동문제 국제화 부담'에 ILO 가입 보류

기사등록 2020/03/31 12:00:00

31일 1577권, 24만쪽 1989년 외교문서 해제

"전노협, 공무원노조 등 불허, ILO 정신 위배"

"노동운동 강경 대응 방침에 ILO 간여 부담"

【서울=뉴시스】박미소 기자 =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공원 인근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집회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2019.11.09.  misocamera@newsis.com
【서울=뉴시스】박미소 기자 =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공원 인근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집회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2019.11.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국현 기자 = 노태우 정권이 노동 문제의 국제 쟁점화를 우려해 1990년 국제노동기구(ILO) 조기 가입 추진을 유보한 정황이 30년 전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1989년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 및 대량 해고, 민주노동의 전신인 전국노동자협의회 준비위원회 등 노동 운동의 격변기로 ILO의 간여가 정치·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외교부가 31일 공개한 1989년 12월 27일 'ILO 가입 추진 문제 검토 관계부처 회의록'에 따르면 외무부와 청와대, 총리실, 노동부, 국가안전기획부 등은 협의를 통해 이같이 결정했다.

당시 이정빈 외무부 1차관보는 "내년에 ILO 가입을 추진키로 방침을 정한다면 부족한 표세 확보를 위해 내년 초부터 집중적인 외교 교섭을 전개해야 한다"며 "국내적으로 노사 분규 문제가 심각히 대두되고, 정부도 산업평화 유지에 비중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 환경과 연관해 내년도 ILO 가입 추진이 적절한 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회의 자료를 살펴보면 "정부의 전노협, 교원노조, 공무원노조 불허 방침 및 국내법상 복수노조 결성 금지 규정 등이 ILO 기본 정신인 결사의 자유 원칙에 위배된다"며 "국내 노동단체들의 ILO에 대한 이의·진정 제기와 ILO의 대정부 의견 제출 요구, 사실 조사단 파견, 위반사항 시정 권고 등 사례가 빈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의 경제위기 인식과 노동운동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에 맞춰 국내 노동문제에 대한 ILO 간여는 국내 정치·경제면에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ILO에 가입할 경우 정부의 노조 결성 제한 조치가 국제적으로 쟁점화되고, ILO의 국내 노동문제 간여가 국내 정치·경제 면에서 정부에 새로운 부담을 가중시킬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외무부와 협의에서 "현 상황에서 ILO에 가입한다면 전교조, 공무원 노조, 전노협 등을 인정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되므로 ILO가 문제삼을 경우 곤혹을 치루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외교부는 생산 후 30년이 경과한 1989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총 1577권(약 24만쪽)의 외교문서를 원문해제(해설·요약본)와 함께 3월31일 국민에게 공개했다. 사진은 'ILO 가입 추진 보류' 문서. (사진/외교부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외교부는 생산 후 30년이 경과한 1989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총 1577권(약 24만쪽)의 외교문서를 원문해제(해설·요약본)와 함께 3월31일 국민에게 공개했다. 사진은 'ILO 가입 추진 보류' 문서. (사진/외교부 제공)  [email protected]
회의에서는 북한의 방해와 공산권 국가의 동조도 장애 요인으로 논의됐다. 당시 북한은 한국 단독 가입과 동시 가입에 반대했으며, 1989년 6월에도 '한국은 노사 분규로 ILO에 가입에 문제가 있다'며 반대했다.

이 차관보는 토론 끝에 "내년 ILO 가입 추진은 득이 안 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라며 "내년 초라도 노사 문제가 안정되면 가입 문제를 재검토 하겠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내년도 가입 추진은 보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정부는 국내 상황에 대한 언급 없이 북한의 방해와 까다로운 ILO 가입 요건 등을 들어 주재국에 보류 입장을 설명토록 했다.

외무부가 작성한 '대외설명 요지'를 보면 " ILO 협약상 유엔 회원국이 될 경우 가입의사 통고로만 가입이 가능함에 비춰 현 시점에서 다대한 외교력 동원이 요구되는 ILO가입을 서두르지 않고자 한다"며 "한국의 ILO 가입을 반대하고 있는 북한의 적극적 방해 책동이 예상되고 ILO 가입 요건이 까다로워 ILO 가입은 여전히 용이하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가 ILO 가입 추진을 보류한 것은 1989년 상반기까지 'ILO 조기 가입'을 목표로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을 벌인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정부는 1989년 6월 진행된 76차 ILO 총회에서도 가입을 추진했으나 가입에 필요한 총회 참가 등록대표의 2/3 찬성 요건에 미달해 포기하고, 1990년 가입을 추진한다는 방침 하에 노력을 진행키로 잠정 결정했다.

한국은 1982년부터 공식 옵저버 자격으로 ILO 총회에 참석했으나 1991년 9월19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이뤄진 후 그해 12월9일 ILO의 정식 회원국이 됐다.

한편 외교부는 생산 후 30년이 경과한 1989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총 1577권(약 24만쪽)의 외교문서를 원문해제(해설·요약본)와 함께 국민에게 공개했다. 올해 공개되는 문서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미국 무역통상법 슈퍼 301조 협의, 재사할린동포 귀환 문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협의체제 수립, 동구권 국가와의 국교수립 관련 문서 등 포함돼 있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27차에 걸쳐 총 2만8000여권(약 391만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해 왔다. 공개된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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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외교문서]노태우 정권, '노동문제 국제화 부담'에 ILO 가입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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