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로움을 촉발시킨 근원은 '버림'이다. 사육사 '유재'는 어릴 때 가난한 엄마로부터 산속에 버려진 기억이 있다. 죄책감에 돌아온 엄마가 내내 한 자리에 있었던 그를 다시 데리고 갔다. 하지만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둘 사이에는 거리가 생겼고 트라우마까지 합세했다.
동물원에 딸린 사옥, 정확히 말하면 동물원이 들어서기 전부터 떠돌이들이 살아가던 공간에서 사육사와 엄마는 같이 산다. 하지만 마음은 각자 떨어져 있다. 엄마는 키우고 있는 개 '목자'와 동네의 수리공에게 애정을 갈구한다. 동물에 대한 애정이 큰 사육사는 집에 오면 목자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사육사가 돌보던 늑대는 자신의 새끼를 물어뜯어 죽였다. 우리에 손을 내민 아이의 손도 다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사육사는 그 늑대를 미워할 수 없다. 사육사는 그 늑대에게서 엄마를 본다.
아이를 다치게 만든 늑대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수사관도 외로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지만,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한 연출이 극작까지 맡은 이 연극은 그녀의 작품답게 기묘한 의식 같다. 이번 '대신 목자'는 세상에서 내동댕이쳐진 이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에 대한 제사처럼 보인다.
보통 한 연출의 작품에는 그로테스크한 정서가 배어 있다. '오이디푸스' 같은 신화, '레이디 맥베스'처럼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에는 물론 근현대적인 '세일즈맨의 죽음'에도 기괴한 분위기가 흐른다.
이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똬리를 튼 어두운 정서를 극에도 끼워 넣는다. 밝음과 어두움의 경계를 흩트리는 한 연출식 장기다. 모호하고 희미한 것에 대해 더 생각할 여지를 준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뭉근한 희망이 보인다. 사육사는 자연 속에 들어가버린 듯하다. 마치 자연과 합일을 바라는 것처럼.
배우들 호연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전박찬이 연기한 사육사의 눈과 표정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떠안은 듯 하염없이 무너진다. 한 연출 작품에서 강한 여성을 전담하는 수사관 역의 서이숙은 좀 더 다층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사육사 모친 역의 성여진은 우리 사회의 광포함이 한 인간에게 어떤 광기를 전염시키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대신목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지원사업 '2019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신작' 중 하나다. 8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애초 15일까지 공연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로 인해 공연 기간이 축소됐다. 지난 6일 개막했으니, 이런 작품이 단 3일만 공연한다는 사실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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