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農心' 달래기 관건…"충분한 소통 부족했다" 비판 들끓어

기사등록 2019/10/25 16:51:00

정부, 차기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 주장 않기로

향후 관세·보조금 타격 불가피…전국 각지서 규탄성명

"농업계 설득노력 부족…文정부서 농업·농촌 더 홀대"

공익형 직불제가 대안으로…"내실있는 운영 이뤄져야"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및 WTO 개도국 논의 대응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2019.10.25. radiohead@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및 WTO 개도국 논의 대응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2019.10.25.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장서우 기자 = 한국이 차기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 현 시점에서 향후 협상이 언제 열릴 지는 예측 자체가 어렵지만, 불안에 휩싸인 농민 단체들의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개도국 지위를 둘러싼 농업계와의 갈등을 봉합하는 일이 농정 당국의 최대 과제로 남았다.

25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 부처들은 앞으로 열릴 WTO 주관 협상에서 개도국으로서의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WTO 체제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을 나누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결국 개도국 지위는 개별 협상에서 국가들의 '자기 선언'에 달려 있게 된다.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을 것을 요구받았지만, 농업 분야는 여전히 개도국 수준이라는 논리를 세워 특혜를 유지해 왔다.

1995년 WTO 출범 이후 24년이 흐른 현재 정부는 우리 경제의 수준을 고려할 때 더 이상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명분이 없다고 판단한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2위로, 선진국 수준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164개 WTO 회원국 중 OECD와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자 국민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는 9개 국가에도 포함된다. 한국과 경제 규모나 위상과 유사한 수준인 싱가포르, 브라질, 대만 등 국가들은 일찌감치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문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농업계에 미칠 타격이다. 그간 한국은 개도국으로서 농산물 분야에서 선진국 대비 3분의 2 수준의 관세 감축 의무만 이행해 왔다. 농산물 등 특별 품목에 한해서는 감축 의무를 면제받기도 했다. 의무적으로 감축해야 하는 보조금 규모도 커지게 된다. 관세와 보조금은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의무 차이가 가장 큰 분야다.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WTO개도국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 회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에서 한국의 WTO 개도국 지위 유지를 촉구하고 있다. 2019.10.25. radiohead@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WTO개도국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 회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에서 한국의 WTO 개도국 지위 유지를 촉구하고 있다. 2019.10.25. [email protected]
자유무역 체제에 편입되면서 한국은 다수의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왔지만, 농산물만은 예외적이었다. 인삼(754%), 쌀(513%), 마늘(360%), 감자(304%), 고추(270%) 등 품목에서 고율의 관세가 허용됐다. 미래 협상에 따라 관세율이 낮아지면 외국산 농산물들이 밀려들어오는 건 시간문제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별 품목들에서 관세가 감축되면 언젠가는 그 영향이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며 "그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결국 당장의 피해는 없지만, 미래에 닥칠 타격이 없다고도 장담할 수는 없단 얘기다.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얻는 개도국 특혜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지난 7월26일 이후 석 달이 지나는 동안 농업계와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다. 농업계는 거센 항의에 나섰다. 정부가 뒤늦게 농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주요 농민 단체는 불참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격렬히 저항하기도 했다. 같은 날 전남·충남 등 농업이 주산업인 지역에서도 규탄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국회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여·야 의원들이 만장일치로 개도국 지위 유지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농해수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날 긴급 성명서에서 "국내 다른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농업 분야의 피해를 최대화하겠다는 반농업적인 판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및 WTO 개도국 논의 대응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홍 부총리,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 2019.10.25. radiohead@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및 WTO 개도국 논의 대응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홍 부총리,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 2019.10.25. [email protected]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부 대응이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중·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선 정부도 인정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농업계를 설득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며 "(시한이 닥쳐서) 막판에 이런 식으로 결정하면 사회적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고 농민들을 우습게 만든 꼴"이라고 지적했다.

내년 농업 예산은 15조3000억원으로 전체 예산(513조4000억원)의 약 3%를 차지한다. 임 교수는 "예산 규모를 보면 그간 농업은 푸대접을 받아 왔다"며 "특히 현 정부가 농업·농촌을 더 홀대했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올해 대비 농업 예산 증가율이 4.4%로 최근 10년 이래 가장 높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또 지방 분권에 따라 이양된 사업까지 합치면 농업 재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4.3%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농정 공약이기도 한 '공익형 직불제' 도입을 대안으로 내놨다. 공익형 직불제가 WTO에서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는 것과 무관히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직불제 관련 예산은 정부안 기준 내년 2조2000억원 규모로 반영돼 있다. 농업계에서 관련 예산 확대를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직불금 예산도 향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WTO개도국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 회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에서 한국의 WTO 개도국 지위 유지를 촉구하고 있다. 2019.10.25. radiohead@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WTO개도국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 회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에서 한국의 WTO 개도국 지위 유지를 촉구하고 있다. 2019.10.25. [email protected]
다만 이는 개도국 이슈가 불거지기 전부터 추진돼 온 정책이라는 점에서 뾰족한 해법이 될 지는 미지수다. 야당에서는 개도국 지위 문제를 정부 정책 추진 동력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 교수는 "방향은 맞다"면서도 "개도국 졸업을 계기로 농정의 대전환을 이뤄야 하는데, 얼마나 내실 있게 이뤄지느냐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밖에 정부는 우리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재해보험 품목 확대, 로컬푸드(지역 먹거리) 지원 강화, 채소류 가격안정제, 품목별 의무자조금, 한국농수산대학교 기능·역할 강화 등을 통한 청년·후계농 육성 등을 과제로 꼽았다. 또 농민계와 정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현장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대책을 지속해서 추가·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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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農心' 달래기 관건…"충분한 소통 부족했다" 비판 들끓어

기사등록 2019/10/25 16:51: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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