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딸과 아들이 육필로 쓴 아버지 최재형

기사등록 2019/09/24 16:14:15

최종수정 2019/10/28 17:56:39

상상 '나의 아버지 최재형'


【서울=뉴시스】정철훈 기자 = 러시아어 '루꼬피시'는 손으로 쓴 수기(手記)를 뜻한다. 육필(肉筆)이다. 육필엔 그걸 쓴 사람의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감정은 펜의 속도와 필체를 결정한다. 쓰는 사람의 내면으로 육박해 들어가는 펜의 움직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고유성의 소산이 육필이다.

1990년 1월 1일 여든다섯 살 노파가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에서 펜을 들어 종이에 쓰기 시작한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기점에 그는 잠들지 못한다. 무엇인가를 남겨야겠다고 결심한 듯 잠자리를 뒤척이다가 일어난 뒤끝이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가장 먼저 러시아로 건너온 한인들 중 한 집안의 출신이다. 나는 우리 시골 마을에서 처음으로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갔던 사람들 중 한 명이고, 러시아에서 첫 번째 한인 여성 엔지니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보고 겪었다. 이제 나와 나의 아버지 최재형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라도 나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다.”

 노파의 이름은 최올가. 1905년 5월 5일 러시아 연해주 얀치헤에서 항일운동의 대부 최재형의 다섯째 딸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934년 모스크바 몰로토프 공과대학을 나와 엔지니어로 일하던 중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에 따라 1937년 10월 1일 이유 없이 체포되어 10년 강제노동형을 선고받고 7년을 복역한 후 1944년 석방되었다. 그러니 얼마나 회한이 많겠는가. 회한은 몽땅 아버지 최재형에 대한 회억과 그리움에 바쳐진다. 

"아침 일찍, 아직 해도 뜨지 않았을 무렵, 아버지가 우리 방 덧문을 열었다. 그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방문이 열리고 총을 든 일본군이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무슨 일인지 깨닫고 벌떡 일어나 옷도 입지 못하고 현관 계단으로 내달렸다. 거리로 나가보니 팔이 뒤로 묶인 아버지의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1920년 4월 5일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 "

올가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1920년 4월 5일 아침 장면이다.
최발렌틴 육필원고
최발렌틴 육필원고
최재형은 누군가. 1909년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를 만나러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자 최재형이 안중근에게 자신의 집 창고에서 암살사격 연습을 시키는 등 치밀한 계획 끝에 하얼빈 거사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최재형은 안중근의 거사 후 연해주로 건너온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돌봤다. 일제는 최재형을 배후 인물로 지목해 집요하게 그를 추적했고 1920년 4월5일 우수리스크 자택에서 그를 체포한 다음날 처참하게 살해했다. 남은 가족들도 많은 핍박을 받았다. 최재형은 7명의 딸과 4명의 아들 총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가족 중 7명이 특별한 이유도 없고 아무런 죄도 없이 총살 당하였다.

그러니 올가의 회한을 누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올가는 그 회한을 종이에 깨알같이 남기고  2001년 작고했다.

또 한 사람. 올가의 남동생 발렌틴도 육필원고를 남겼다. 풀네임은 최 발렌틴 페트로비치.

1908년 5월 2일 노보키옙스크에서 최재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28년 농업기술학교를 졸업하고 농업기사로 일했다. 하지만 1938년 8월 31일 이유 없이 체포되어 복역하다가 1940년 석방되었다. 이후 카자흐스탄농업대학교를 졸업하고 카자흐스탄 농업국 본부장을 역임한 그 역시 1995년 저 세상사람이 되었지만 생전에 루꼬피시를 남겼다.

"연말까지 정말 끔찍한 비극이 계속되었다. 로슬라블에서는 올랴가 구속되었고, 노보시비르스크에서는 류바와 옐리세이가, 스몰렌스크에서는 코스탸(리자의 남편)가, 프룬제에서는 호드자한이, 그리고 극동에서는 니콜라이가 구속되었다."
최올가 육필원고
최올가 육필원고
발렌틴은 20년 이상을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혀 살았다. 학창 시절 아버지인 최재형이 부르주아였다고 고발당한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농업 기사로 근무하면서 가는 곳마다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직급에서도, 주요 보직에서도 불이익을 받았다. 그를 따라다녔던 '인민의 적'이라는 낙인 때문에 여기저기 쫓겨 다니며 사람들의 따돌림과 눈치 속에서 살아야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는 '인민의 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80세가 넘어서 자신의 한 맺힌 삶의 역정을 회고록으로 쓰게 된다. 그리고 남은 일생을 아버지 최재형의 애국적 활동과 인생을 조명하는 일에 바쳤다.
   
 최재형의 손자 최발렌틴이 자신의 고모 올가와 아버지 발렌틴이 쓴 육필 원고를 자신의 모스크바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책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최발렌틴은 최재형의 손자로, 원고를 남긴 최발렌틴의 아들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이름이 동일하다.) 1부 올가의 증언과 2부 발렌틴의 증언은 각각 200자 원고지 500장 분량이다. 주한 러시아연방 명예총영사인 정헌 번역. 

도서출판 '상상'의 김재문 대표는 "몇 해 전, 고려인 작가 박미하일 선생의 소설을 냈는데, 그 인연으로 미하일 선생과 가깝게 지내는 최재형의 손자 발렌틴을 소개받아 루꼬피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최올가·최발렌틴. 311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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