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봉우 선생의 증손녀 계 이리나 씨 소감 밝혀
극동지역 항일 언론인이자 민족교육자인 계봉우 선생은 고국을 떠난 뒤 늘 방에서 홀로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고 증손녀 계 이리나 씨는 전했다.
함경남도 영흥 출신인 계봉우 지사는 1911년 북간도로 망명해 광성학교에서 국사와 국어 교과서를 편찬하는 등 민족교육에 전념해온 교육자다.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북간도 대표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고, '독립신문'에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글을 게재했다.
계봉우 선생의 유해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내로 봉환된다. 카자흐스탄에 안장된 독립유공자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1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한 계봉우 선생의 증손녀 계 이리나 씨는 기자와 만나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느냐'는 질문에 아버지께 들은 말을 전했다.
그는 "아버지께서 어릴 적 (증조) 할아버지께선 늘 혼자 방에서 뭔가를 쓰고 계셨다고 한다"며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방해하지 말라고 해서 아버지는 문지방에 구멍을 뚫어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계봉우 지사는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후 '조선문법', '조선역사' 등을 집필하며 한국어 연구 등 민족교육에 전념했다.
계 이리나 씨는 "독립운동 당시 얘긴 전해 듣질 못했다"며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당시 얘기를 전혀 듣지 못한 건 행여라도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얘기가 밖으로 새나가면 감옥에 끌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증조 할아버지의 유해를 모시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할아버지께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살아생전 꿈이었다"며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이렇게 할아버지의 꿈이 이뤄져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님께서 독립국가연합(CIS) 내 고려인 동포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시고 계신 것에 감사드린다"며 "고려인 동포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고, 한국에 갈 기회도 많아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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