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외부세계 대신, 사진 자신을 향한다면 거기서 도출된 이미지는 얼마나 환상적일까. 풍경, 인물, 사건 등을 소재로 한 사진 경향과는 완전히 다른, 사진 매체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사진은 자신의 실체인 RGB(레드, 그린, 블루)의 조합, 픽셀의 조합을 드러낸다. 정상적인 사진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사진 자체가 아니라 사진에 촬영된 대상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또 첨단 고해상도 디지털 카메라에서 발생하는 여러 오류를 교정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사진으로 제시한다. 그의 작품 ‘로-컷’은 디지털 카메라에 장착된 첨단 전자셔터가 유발한 흔들리고 흐릿한 이미지를 크게 확대해 보여주고 ‘로-패스’는 렌즈를 차단하고 촬영해도 이미지 센서의 오류 작동으로 완전히 검지 않은 화소가 담겨있는 사진 이미지를 제시한다.
박남사는 회화가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이미지, 오직 사진 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묻는다. 사진의 두 요소인 카메라와 조명이라는 기계적, 광학적 방법을 통해 실재의 표면을 날것 자체로 드러내는 사진이다. 사물 표면이 지닌 비가시적인 섬세한 흔적들(휴대폰 액정 지문, 액정 스크래치), 그리고 사물의 독특한 물질성이 부각되는 순금, 깨진 휴대폰 액정 등의 오브제를 골라 마이크로 렌즈와 강력한 조명을 사용해 숨겨진 질감을 드러낸다. 거의 완벽한 검은 모노크롬으로 보이도록 지폐, 동전 등의 대상을 극단적인 노출부족으로 촬영한다. 작품을 멀리서 볼 때는 단조로운 모노톤의 색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멀리서 볼 때 보이지 않던 액정 스크래치나 지문, 동전, 지폐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물질의 비가시적인 표면이 사진 광학 장치에 의해 재발견될 때 ‘광학적 무의식’의 세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물질의 세계에서 비물질의 세계,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박남사는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국립고등사회과학원(EHESS)에서 사진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 모노크롬: 회화에서 사진으로’(갤러리룩스2·017) 개인전을 열었고 ‘미니멀 변주’(서울대미술관·2018), ‘포토, 미니멀’(갤러리룩스·2018)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폐기된 사진의 귀환: FSA 펀치 사진’(갤러리룩스·2016), 서울사진축제(서울시립미술관·2010)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다시, 사진이란 무엇인가’전은 5월9일까지 월~토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 즐길 수 있다. 개막식은 19일 오후 6시, 작가와의 대담은 5월3일 오후 4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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