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누구인가…냉전 종식 이끈 지도자

기사등록 2018/12/01 16:16:40

고르바초프와의 역사적인 회담에서 '동서화합' 선언

레이건 집권 시절 8년간 부통령으로 보좌

걸프전에서 승리…경기침체로 재선 실패

【워싱턴=AP/뉴시스】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08년 5월11일 촬영한 사진으로 부시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도착한 모습. 2018.12.01
【워싱턴=AP/뉴시스】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08년 5월11일 촬영한 사진으로 부시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도착한 모습. 2018.12.01
【서울=뉴시스】권성근 기자 =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동서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부시 전 대통령은 구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공산당 서기장과 1989년 지중해의 몰타에서 비공식 정상회담을 열고 냉전 종식과 새로운 협력을 선언했다.

 조지 H.W. 전 대통령은 30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94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의 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는 지난 4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1942년 6월12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밀턴에서 태어난 부시 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8세의 젊은 나이에 해군에 입대해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했으며 58회의 전투에 참여한 공을 인정받아 무공훈장 3개를 받았다.

 부시 전 대통령은 1965년 석유사업을 맬컴 글레이저에 매각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1966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2년 뒤 재선에 성공한 부시 전 대통령은 그러나 1970년 민주당 로이드 벤슨 후보에게 패하며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는 1970년대 미 중앙정보부(CIA) 부장을 역임하는 등 여려 정부 부처에서 일했다. 부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1970년 유엔 주재 미국대사에 임명됐으며 이후 3년간 미국대사 직책을 유지했다.

 부시는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미 국무부 베이징 연락사무소 소장으로 일하며 외교 경험을 쌓았다. 그는 베이징에서 연락사무소 소장으로 일하며 미국과 중국 간 국교정상화를 위한 역할을 했다. 1977년에는 CIA 국장 자리에 올랐다.

 부시는 1980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으나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패했다. 그는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요청으로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부통령을 역임했다. 임기 중 레이건의 신임을 얻은 부시는 1988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를 꺾고 제 4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휴스턴 = AP/뉴시스】 올 4월 17일 별세한 바바라 부시의 장례식을 마친 뒤 21일 촬영한 조지 H.W. 부시전 대통령( 가운데)과 아들 조지W.부시 부부, 클린턴 부부, 오바마 부부, 이방카 트럼프의 사진.  클린턴 전 대통령은 6월 25일 메인주의 부시 저택으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방문했다.
【휴스턴 = AP/뉴시스】 올 4월 17일 별세한 바바라 부시의 장례식을 마친 뒤 21일 촬영한 조지 H.W. 부시전 대통령( 가운데)과 아들 조지W.부시 부부, 클린턴 부부, 오바마 부부, 이방카 트럼프의 사진.  클린턴 전 대통령은 6월 25일 메인주의 부시 저택으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방문했다.
부시는 대통령 재임시절 파나마와 이라크에 군대를 동원했다. 1989년 12월 파나마에서 마약 퇴치를 위해 파견된 미군 해군 장교가 파나마 군의 총격을 받고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부시는 이를 빌미로 미군 병력 2만 여명을 투입해 파나마를 침공했다.

 마누엘 노리에가 전 파나마 대통령은 이듬해 1월 파나마시티 내 바티칸 대사관에서 운신하던 중 미군에 체포돼 미국으로 압송됐다. 당시 미군의 침공으로 민간인 200여명이 사망해 부시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유엔은 미군 침공을 '중대한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며 비난 성명을 채택했다.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1990년 군대를 이끌고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영토라고 주장했던 후세인은 1990년 8월2일 전격적으로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두 나라가 영토분쟁을 풀기 위한 대화를 진행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라크군은 침공 6시간 만에 수도인 쿠웨이트시티를 장악했다. 침공 뒤 쿠웨이트의 저항을 완전히 진압한 이라크는 양국의 합병을 선언하고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19번째 주로 편입시켰다. 

이듬해 1월17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이라크 공습에 돌입한다. 부시는 걸프전에서 미군 육군대장인 노먼 슈워츠코프에게 다국적군 총지휘관 역할을 맡겼다. 다국적군은 이라크를 공격한지 1개월 만에 승리를 거뒀다. 전쟁에서 패배한 이라크는 유엔이 요구한 12개 결의안을 수락했으며 부시는 2월28일 종전을 선언한다.

 부시는 1992년 재선에 도전했지만 경기침체로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에 패했으며 이후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와 노년을 보냈다. 그는 1990년 G7 의장을 맡았으며 같은 해 타임지에 의해 올해로 인물로 선정됐다.

【워싱턴=AP/뉴시스】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은 1989년 6월5일 촬영한 사진으로 부시 당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그의 부인 바바라 부시 여사는 지난 4월17일 별세했다. 2018.12.01
【워싱턴=AP/뉴시스】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은 1989년 6월5일 촬영한 사진으로 부시 당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그의 부인 바바라 부시 여사는 지난 4월17일 별세했다. 2018.12.01
부시는 재임 중 정치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재정적자를 타개할 목적으로 세금 인상 정책을 실시했다. 그는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케네디 용기상'을 수상했다. 부시는 1988년 대선 공약을 깨고 세금을 인상함으로써 보수주의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부시는 1990년 대표적 민권법인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장애인법에 서명했다. 부시는 또 재임 시절 북미자유협정(NAFTA) 협상을 추진했다. NAFTA는 후임인 빌 클린턴 대통령 집권 시절 의회에서 비준됐다.

 장남인 조지 W. 부시가 2000년 대선에서 승리해 부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부시는 아들 부시와 함께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와 제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에 이은 미국 역사상 2번째 부자(父子) 대통령이다.

 아들 부시는 2004년 재선에 성공해 2009년 1월20일까지 재임했다. 아들 부시는 집권기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 이라크 전쟁(2003년)을 일으켰으며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8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에 비판적이었던 아버지 부시는 지인들에게 트럼프가 아닌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투표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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