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선생님은 어릴 적에 음악 교과서를 통해서만 뵙던 분이에요. 그런 선생님과 함께하는 것 자체가 무한한 영광이죠."(조성진)
9월1일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듀오 콘서트를 펼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0)와 피아니스트 조성진(24)은 46세라는 할머니와 손자뻘의 물리적인 나이 차가 무색한 관계다. 지음(知音)이라고 불리는 사이다.
정경화는 조성진에 대한 애정이 넘치고, 조성진은 정경화를 향한 존경심을 쏟아내고 있다. 고양에서 시작한 듀오 연주는 5일 진주, 6일 여수, 8일 강릉을 거쳐 12일 예술의전당 30주년 기념 공연으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만 남겨두고 있다.
정경화는 10일 예술의전당에서 "여섯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70년 동안 듀오 연주에서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면서 "즉흥성과 창조성이 뛰어난 예민한 감각의 조성진과 듀오라 행복하다"며 만족해했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는 건 2012년 정경화가 자신의 독주회에 조성진을 초청한 이후 6년 만이다. 그럼에도 항상 호흡을 맞춰 온 연주자들처럼 차진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프로그램 중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7번은 강철 같고,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따듯하며,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는 감정의 점성을 최고조로 만들고 있다. 특히 칠순의 나이에도 여전한 기량을 자랑하는 정경화의 폭풍 같은 연주를 20대 중반 나이로 척척 받아 넘기며 제 페이스를 잃지 않는 조성진의 합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자신은 불, 조성진은 물에 비유했다. "성진이는 무지 차분해요. 음악은 열정적인데 말에요. 저는 예전보다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성격이 완전 불 같거든요. 그런 면에서 성진이는 제게 보너스 같죠. 음악적으로 폭발적이고 아름답게 연주하고 너무 성숙하고, 앞으로 계속 성장할 거 같아요. 고맙고 감사하죠. 지켜보면서 잘 받쳐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성진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태어나서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본 적이 없다'고 말하니 깜짝 놀라시더라"고 전했다. "제 성격은 제가 봐도 차분한 것 같아요. 동요되는 성격이 아니죠. 근데 음악할 때는 달라요. 제 일상과 다르죠. 화를 내거나 울고 싶을 때, 말로 하지 않고 속 감정은 음악으로 톻해요."
조성진은 음악에서 타협보다 웬만하면 자신의 고집을 부리는 편이어서 한 때는 협연보다 리사이틀을 선호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리사이틀은 잘못하면 책임이 제게만 있잖아요. 근데 운이 좋게도 (쇼팽) 콩쿠르가 끝나고는 큰 타협을 안 해도 됐던 거 같아요. 요즘에는 행복하게 연주하고 있습니다."
연주하는 악기는 다르지만, 정경화는 조성진이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오래 전부터 그의 멘토였다. 정경화의 소개로 피아노 거장 라두 루푸에게 조언을 청할 수 있었고, 역시 정경화의 소개로 쇼팽 스페셜리스트인 케빈 케너로부터 레슨도 받았다.
이런 정 지휘자가 조성진을 극찬했다는 얘기다. 정경화는 "연주자들 사이에는 연분이 있는 것 같아요. 원해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안 되죠. 성진이는 3년 동안 300회 공연하는 스케줄이 꽉 차 있는데 잘 맞았죠."
반면 정경화는 올해 말까지 예정된 연주를 마치고 "앞으로 당분간 안식을 해야겠다"고 했다. "2개월 동안 몸이 약해졌어요. 음악을 떠나는 것은 아니에요. 귀는 계속 열어둘 겁니다."
조성진은 이런 정경화를 지혜롭다고 여겼다. 그에게 지혜롭다는 것은 '무엇을 해야 될 지를 정하는 것보다 무엇을 안 해야 할 지를 아는 것'이다.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3년 동안 가장 힘든 것이 '거절'이었어요. 원치 않거나 하면 안 될 거 같은 일은 거절했죠. 지금까지는 사고 없이 잘 한 거 같아요."
두 사람의 연주와 호흡은 여름 덩굴처럼 엉켜 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노년과 젊음, 정열과 열정, 여유와 감성 등 언뜻 얽히지 않을 듯한 요소들로 가득함에도 그렇다. 이제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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