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히로시마 원폭투하 73주년…피폭자들 "평화헌법 포기 절대 안돼"

기사등록 2018/08/06 08:29:36

원폭 투하 73주년 히로시마 나가사키 현지 취재

한국인 피해자 실태조사 여전히 미흡

"원폭 피해가 평화헌법의 토대, 갈수록 잊혀져 안타까워"

【히로시마=뉴시스】 조윤영 특파원 =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자원봉사로 12년째 히로시마 원폭 당시를 설명하고 있는 미토 코세이(三登浩成)씨가 지난 7월 20일 1945년 8월 6일 원폭 투하로 무너진 히로시마 돔에 대해 말하고 있다.  2018.08.06yuncho@newsis.com
【히로시마=뉴시스】 조윤영 특파원 =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자원봉사로 12년째 히로시마 원폭 당시를 설명하고 있는 미토 코세이(三登浩成)씨가 지난 7월 20일 1945년 8월 6일 원폭 투하로 무너진 히로시마 돔에 대해 말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73년 전 이날 히로시마(広島)에 떨어진 원자폭탄(원폭)은 약 1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히로시마 전체 인구는 35만 명이었다. 이로부터 3일 뒤 나가사키(長崎)에도 원폭이 떨어져 약 7만 4000명이 희생됐다. 이러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희생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전쟁하지 않는 나라'를 명기한 '평화헌법'이다. 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내각은 헌법 개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원폭의 비극이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 또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모습을 전한다. <편집자주>
 
【히로시마·나가사키=뉴시스】 조윤영 특파원 =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먼저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가르치는게 우선이다. 그래야 후손들이 자국의 역사를 스스로 평가하고 더 나은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자원봉사로 12년째 히로시마 원폭 당시를 설명하고 있는 미토 코세이(三登浩成)는 "일본 학교 내 원폭 교육이 점차 축소되고 있다"고 우려하며 이같이 말했다.

 고교 영어교사였던 그는 정년퇴임 후 매일 아침 원폭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글과 사진을 붙인 자전거를 타고 히로시마 평화 기념공원으로 나선다.  히로시마 원폭 참상을 전하는 평화기념자료관의 전시도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전시물을 빼버리는 등 점차 원폭교육이 축소되는 현실에 직접 나서야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생존 피폭자 수도 갈수록 줄어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비극을 직접 전달할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감도 한 몫 했다.

 미토씨는 피폭자 건강수첩을 갖고 있다. 1945년생인 그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어머니 뱃속에 있었지만 태아 피폭자로 인정받으면서 건강수첩도 발급받았기 때문이다. 피폭자 건강수첩을 갖고 있으면 일본 전역 어디서든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가족 중 피폭자 건강수첩을 갖고 있는 경우 결혼을 꺼리는 등 차별을 받기도 한다.

 지난 7월 20일 히로시마에서 만난 기자에게 그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순간 지옥으로 변한 사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잘 알려야하고, 이러한 비극을 만든 미국에게도 사과를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토씨는 "왜 일본이 이런 일을 당했는지, 일본이 당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는지도 함께 알려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인한 한국인 피해자는 2만여명인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현재까지 파악된 것은 2734명"이라며 "아마도 당시 성을 바꾸 한국인이 많아 정확히 파악되기 어려운 것 같다"고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현재 히로시마평화공원 위령비에는 지난 1년동안 사망한 12명의 피폭자를 포함해 총 2746명의 한국인 피폭자 명부가 봉납되어 있다.

【히로시마=뉴시스】 조윤영 특파원 = 1970년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건립했으며 매년 8월 초 위령제를 연다. 1945년 8월 6일 원폭 투하로 인한 한국인 피폭자는 약 2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8.08.06yuncho@newsis.com
【히로시마=뉴시스】 조윤영 특파원 = 1970년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건립했으며 매년 8월 초 위령제를 연다. 1945년 8월 6일 원폭 투하로 인한 한국인 피폭자는 약 2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email protected]
미토씨는 "한국인 희생자 대부분은 당시 강제 징용 등으로 일본에 끌려온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1970년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건립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로 안내하기도 했다. 여기서는 매년 8월 초 민단 주최로 위령제가 열린다.
 
 그는 최근 일본 내 학교에서 원폭에 대한 역사 교육이 축소된 데 대해 "당시 일본정부의 책임까지도 말해야하기 때문에 일본 국민의 희생에도 눈 감아버린 것"이라며 "요즘 학교에서는 역사가 아닌 년도만 가르치고 있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히로시마 직전 방문한 나가사키시의 원폭자료관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에게 방문 소감을 묻자 '오랜만에 친구들과 견학을 나와서 즐겁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토씨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희생을 토대로 만들어진 평화헌법을 절대 개정해서는 안 된다"며 "이미 집단자위권 법안이 통과되면서 평화헌법의 의미도 많이 흐트러졌다고"고 비판하기도 했다. 

 나가사키 출신의 피폭자 우치노 세츠오(内野節雄) 역시 "평화헌법을 개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2살이었던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 소금을 사러 간 어머니가 인근 방공호에 자신을 두고 간 덕분에 직접적인 원폭 피해는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자신을 찾으러 온 어머니는 다른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가는 짧은 거리에도 살려달라는 아우성이 거리에 가득했다고 설명했다. 집에 두고 갔던 우치노씨의 형과 여동생은 쓰러진 집에 깔려있었다.

 이같은 원폭 투하에 대한 이야기는 입을 꾹 다물고 지내시다 20년이 지나서야 꺼냈을만큼 상처가 깊었던 우치노씨의 어머니는 계속 병치레를 하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는 "원폭이 얼마나 비인도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며 "어머니의 경험을 비추어보면 죽을 때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충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화헌법은 이러한 나가사키, 히로시마의 희생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가사키=뉴시스】 조윤영 특파원 = 지난 7월 19일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서 고령의 자원봉사자가 젊은 청년들에게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18.08.06yuncho@newsis.com
【나가사키=뉴시스】 조윤영 특파원 = 지난 7월 19일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서 고령의 자원봉사자가 젊은 청년들에게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나가사키 평화추진협회 계승회 멤버이기도 한 우치노씨는 미토씨와 마찬가지로 어린 후손들에게 철저하게 역사교육을 해야한다며 피폭 생존자가 줄어드는만큼 피폭 역사도 잊히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 국민이 책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들(군인)도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한 것인만큼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자체 역시 중앙 정부의 정책과 선을 분명히 긋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우에 도미히사(田上富久) 나가사키 시장은 "정부와는 스탠스가 다르다"고 강조하며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이루기 위해 리더쉽을 발휘해서 핵무기 보유국과 비보유국의 가교 구실을 하겠다고 했는데도 (일본 정부가) 핵무기금지조약의 협상회의도 불참하는 것은 피폭지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평화헌법 개정과 관련해선 "국민의 생각이 헌법의 베이스가 돼야 한다"며 "전쟁 경험이 헌법의 기초가 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반대하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수해 복구로 참석하지 못한 마츠이 가즈미(松井一實) 히로시마 시장을 대신해 기자회견을 한 히로시마시청 관계자는 원폭 교육 및 핵무기와 관련된 정부 정책에 대해 "여러 건의를 하고있지만 지자체로서의 한계도 있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1박 2일동안의 나가사키·히로시마 프레스투어 기간동안 현지 주민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원폭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되며, '피폭자가 있는 시대'의 끝을 대비해 역사의 기록과 계승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과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희생이 평화헌법의 원점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선 연임이 거의 확실해진 아베 총리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헌법 개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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