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증권가 잰걸음...워라밸 기대 속 우려도

기사등록 2018/06/24 06:00:00

【서울=뉴시스】이국현 김형섭 이진영 장서우 기자 = #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해 간밤 세계 증시 상황을 분석해 투자 전략을 세워 사내에 전달한다. '아침 장사'를 해야 하는 만큼 새벽 출근은 불가피하다. 일찍 나왔다고 해서 퇴근이 이른 건 아니다. 평소 오후 6~7시에 회사를 나선다. 또 이슈가 터지면 야간근무나 주말 근무도 자주 한다.

그러나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 장시간의 근로 시간이 줄고 일하는 스타일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 애널리스트는 "내부적으로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인데 현재 일하는 방식으로는 주 52시간 근무 체제에서 같은 질의 결과를 내기 힘들다"며 "필요 없거나 중복되는 일을 없애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돈을 굴리는 증권맨들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오는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은 주 52시간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 증권업계는 은행·보험·카드 등의 업종과 함께 금융업의 특성을 반영해 내년 7월까지로 도입이 유예됐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여유를 부리기보다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반대하기보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여기는 것이다. 또 이참에 업무 처리 방식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계기로 만든다는 각오다. 다만 일반 제조업과 달리 투입한 시간에 비례해 업무 성과가 올라는 구조가 아니고, 개인의 성과가 임금에 곧바로 직결되는 만큼 기계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리서치, 전산, 외환, 영업, 자금 부문은 업무 특성상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는 데는 더욱 고민이 필요하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증권금융,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등 기관 3곳은 이미 임직원들의 초과 근무를 적극적으로 제한해 온 만큼 도입으로 인한 변화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증권금융은 52시간 근무제를 올해 6월부터 시범 운영에 돌입했고, 내달 1일부터는 전격 시행에 들어간다. 부서 내 회의나 방문협의를 자제하는 집중근무제와 연장·휴일 근로 사전승인제, 유연근무제 등을 기존에 운영해온 만큼 내달부터 52시간 근무제를 전격 도입하더라도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거래소는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관련해 현재 따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없다. 이미 2013년부터 근무시간이 초과되면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시간외근무시스템'을 도입해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오전 9시~오후 6시 정시 근무시간을 기본으로 추가로 4가지 방식으로 출퇴근 시간을 변경 적용해 유연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도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비롯해 조기퇴근제, PC오프제를 이미 도입해 적용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적인 내용은 현재 노사가 협의 중이며,  조만간 시행 시기를 포함해 구체적 시행안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금융투자업계 기관들과 달리 증권사들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시대를 맞기 위한 준비에 분주하다.

KB증권은 연초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위해 노사가 설문조사 및 논의를 시작, 오는 27일부터 전사에 PC오프제와 유연근무제를 시범 운영한다. 본 시행은 올 하반기로 조기에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KB증권 관계자는 "시범 실시를 통해 수정·개선 사항을 노사가 함께 고민할 예정"이라며 "선진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 기업문화와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이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이달부터 유연근무제를 도입, 사실상 내달부터 52시간 근무제도 시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과급 비중이 높은 메리츠종금증권은 근로시간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이 크지 않게 조직을 운영해온 만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메리츠종금증권 관계자는 "근로시간은 개인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며 "PC를 강제로 끄는 등 전근대적 방식보다는 근무시간에 집중해 일하도록 기업 문화를 바꾸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자기자본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도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적극적이다. 내달부터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해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본격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자산관리(WM) 및 복합점포(IWC)의 영업직원은 정시출퇴근, 업무직원은 시차출퇴근제를 적용할 예정이다. 본사는 팀별 업무 성격에 따라 정시출퇴근, 시차출퇴근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의제를 물리적 근로시간 축소에 그치지 않고 자율과 신뢰에 기반한 성과 중심의 기업문화가 정착되는 계기로 활용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NH투자증권은 각 부서의 근무시간과 형태를 파악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52시간 근무제 조기 시행을 포함해 도입 시기를 고민 중이다. 단기적인 프로젝트 진행하거나 야간·저녁 근무가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일부 직무에 대해 탄력근무제, 시차출퇴근제 등의 유연근무제를 도입한다는 그림을 그렸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2014년부터 PC오프제를 시행했고, 금요일을 가정의 날을 지정해 직원들이 오후 5시에 퇴근하도록 하고 있다"며 "정시퇴근 문화가 잘 정착돼 있어 52시간 근무제도 잘 안착할 것으로 본다"라고 전했다.

삼성증권은 PC오프제와 유연근무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해 유연근무제를 적용하는 것을 저울질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조기 시행을 목표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관련 태스크포스(TF)팀을 가동 중이며, 자율출퇴근제 등 유연근무제를 시범 실시 중이다. PC오프제 도입도 고민 중이다.

하나금융투자는 사무금융노조에서 52시간 근무제 도입 시범 증권사로 지정됨에 따라  수요일과 금요일엔 오후 5시 퇴근을 독려하고 있다. 해외증권실은 근무시간이 가변적이어서 탄력 근무제 적용을 계획 중이다. 탄력 근무란 오후 5시에 퇴근 못 하고 7~8시까지 일하는 경우 다음 날 출근 시간을 늦춰주는 유연근무제 중에 하나다.

하나금융투자 관계자는 "오후 5시가 되면 부서장들이 퇴근을 독려하고 노조도 회사 돌아다니며 퇴근했는지 여부를 점검한다"며 "52시간 근무제를 기다렸다는 듯이 정착이 잘되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나금융투자는 내년에는 지주사와 함께 PC오프제도 함께 도입할 것이라고 전했다.

IBK투자증권은 다음 달부터 유연근무제 등을 시범 실시하고 향후 추가로 PC오프제 등 다양한 방안을 단계적으로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자료: 각 사
자료: 각 사
대만계 증권사인 유안타증권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적극적이다. 유안타증권은 연내 시범 도입해 내년 초까지 제도를 안착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내달부터 시차출퇴근제를 시행하고, 유연근무제, PC오프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투자증권은 다음달부터 PC 오프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오후 5시면 PC가 자동으로 꺼지게 된다.

이 밖에 교보증권, SK증권, 한화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등 중소형사들은 선제적으로 주 52시간제 도입에 나서기보다 추이를 보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렇게 대다수 증권사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안착시키기 위해 적극 나서는 것은 물론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사회적 변화를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증권업의 특성상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또한 업무 특성에 따라 섬세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일자리 창출 효과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우선 52시간 근무제 적용에 어려움이 있는 부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A 증권업계 관계자는 "출퇴근이 정해져 있는 공장 근무 등 제조업과 달리 증권업에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는 데는 조율해야 할 어려움이 많다"며 "가령 저녁 약속이나 외근이 잦은 영업 분야는 근무시간을 일괄적으로 자르기 쉽지 않아 증권업계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시의성에 맞춰 리포트를 작성해야 하는 애널리스트, 야근이 많은 외환딜러, 전산 부분 등도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애로점이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B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는 24시간 자금 결제가 원활히 이뤄져야 하는데 고객, 기관 등이 저희 업무 시간에 맞춰 결제를 해주는 게 아니다"며 "재경부 등 자금 결제를 맡고 있는 부서도 52시간 근무제를 원안대로 적용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주 52시간 체제에서 비상 상황에 어떻게 인력을 운영할지에 대한 고민도 나왔다. C 증권사 관계자는 "전산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 근로시간이 초과한 근로자라도 즉각 장애 복구 업무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며 "그에 따른 주 52시간제 위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라고 밝혔다.

52시간 근로제가 법적으로 제약 사항이 과도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D 증권사 관계자는 "부서별 특성에 따라 특정 시점에 업무가 몰리거나, 연장근로가 불가피한 경우가 있어 다양한 유연근무제 도입이 필요한데 법에서 허용하는 유연근무제의 방식에 제약이 많다"며 "이 때문에 부서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유연근무제 도입에 한계가 있다"라고 토로했다.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업무 강도만 높아지고 회사가 인력 충원에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F 증권사 관계자는 "불필요한 업무 제거, 업무 효율성 개선 등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임직원의 인식 개선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만큼 초기에는 업무는 그대로인데, 근무시간만 단축해야 하는 문제가 우려된다"라고 설명했다. 또 "회사에서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인력 확충을 고민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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