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학 사형 선고됐지만…사형제 존폐 '뜨거운 감자' 여전

기사등록 2018/02/22 14:02:31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중생 딸의 친구를 추행한 뒤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가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21일 오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02.2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중생 딸의 친구를 추행한 뒤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가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21일 오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02.21. [email protected]
사형 찬성 측 "죽음 외 다른 단죄 수단 없어"
반대 측 "오판 가능성, 정치적 악용 고려해야"
한국, 사실상의 사형폐지국...집행 어려울 듯

【서울=뉴시스】이예슬 안채원 기자 = 중학생인 딸의 친구를 유인해 성추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이영학(36)에게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살인에 더해 미성년자인 딸을 범행에 가담시키고 아내에게도 성매매를 종용하는 등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이영학의 만행이 알려지면서 사형을 선고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행까지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도 팽배하다.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지만 이영학과 같은 흉악범이 등장할 때마다 단죄의 의미로 사형을 집행해야 된다는 의견과 인간의 존엄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일반 여론을 보면 사형제에 대한 찬성 의견이 높다. 지난해 11월 리얼미터·CBS가 성인 511명을 대상으로 사형제도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95% 신뢰도 수준, 표본오차 ±4.3%포인트)한 결과 사형 집행에 찬성하는 응답은 52.8%로 집계됐다. 반대한다는 의견은 32.6%, 사형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9.6%로 조사됐다.

 법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사형 집행에 찬성하는 응답이 과반이 넘었다. 한국법제연구원이 판사, 검사, 변호사 등 1012명을 대상으로 한 법전문가 법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9.2%가 사형집행에 찬성했다. 특히 조사에 응답한 검사 76.7%가 찬성의 입장을 나타냈다. 변호사는 50.9%, 판사 46.7% 순이었다.

 연구원은 "설문이 사형제도의 유지나 폐지가 아닌 '집행' 자체에 대한 찬반을 묻고 있어 과반 이상의 응답자가 찬성한 것은 상당히 놀랄만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형의 집행이 필요하다는 측에서는 특히 미성년자 등을 상대로 한 잔혹범죄의 경우 사형 말고는 죗값을 치를 만한 다른 형벌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 흉악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들의 생명유지를 위해 국민의 혈세가 쓰이는 것에도 거부감이 크다. 사형수 한 명 당 쓰이는 예산은 연간 2000만원 수준이다. 현재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는 사형수는 모두 61명인데, 이들을 위해 매년 12억원이 넘는 돈이 쓰인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사형이 선고됐어도 집행까지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란 게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집행된 것은 1997년 12월30일이 마지막이다. 연쇄살인범으로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유영철과 강호순 등도 교도수에 수감돼 있다.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나라를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하는 국제앰네스티의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이에 속한다. 사형제 폐지는 전세계적 흐름으로 2016년 말 기준 세계 198개국 중 104국이 사형을 폐지했다. 한국처럼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는 37개국이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적 위상 등을 고려할 때 이영학의 경우에도 집행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그래도 국민 다수가 사형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인 만큼 선고하되 집행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사형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오판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보복 감정을 앞세워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완전 폐지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생명을 국가가 부여하지 않았는데도 이를 거두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경시하는 태도라는 지적도 있다.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사형제 폐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을 보다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인 2009년 부녀자 8명을 납치·성폭행하고 살해한 강호순의 항소심에서 사형을 선고한 인물이다.

 이 위원장은 "사형제 폐지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사생결단식 대결의 정치문화를 상생의 문화로 바꾸는 출발점"이라며 "모든 사람의 인권과 생명이 존중받는 인권국가임을 나타내는 가장 강력한 징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사형수 신분으로 교도소에서 계속 복역하는 것 자체도 고통스러운 일인데 형벌로서는 사형 집행 못지 않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며 "문명 국가에서 비용 떄문에 사형을 집행한다는 것도 야만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중생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씨가 조사를 받기 위해 15일 오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2017.10.15.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중생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씨가 조사를 받기 위해 15일 오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2017.10.15. [email protected]

 사형 존치가 범죄를 줄이는 예방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찬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법무부는 사형제의 존재가 위화력이 있다는 면에서 존치를 주장하지만 학계에서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며 "제도의 유무와 관계 없이 범죄는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사형집행국에서 폐지국이 됐을 때 사건이 급증하지 않았다는 것도 통계적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사형수 수감 비용이 사회적 낭비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흉악범을 사회와 격리시킴으로써 얻는 혜택이 있는 만큼 의미 있는 지출이라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연간 행정비용 2000만원이 아까워 사람을 죽이자는 것인데 생명과 돈이라는 가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국가가 범죄자를 교도소에 복역시킴에 따라 시민들이 그들과 격리되는 효과가 있는데 무조건 돈이 아깝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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